모발이식은 최종 결과가 1년 후에나 최종 확인이 되기때문에 심고나서 관리가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수술 후 자신의 상태를 회원들에게 진단받고 수술 후 관리나 사례별 생착, 추가 보완 방법을 카운셀링 받는 공간입니다.
모발이식 관련 의사들도 케이스를 공부하기 위해 방문 하는 이곳, 전세계에서 가장많은 임상자료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수술을 준비중인 누군가에겐 가치를 표현할 수 없는 의미있는 기록을 남겨주신 모든 선배님들께 감사드립니다.
수술 후 포토자료를 남기는것은 '환자 힘'이기도하며 향후 예상할 수 없는 수술결과에 대한 강력한 보험입니다.
(TEPE 모발이식센타 --터키이스탄불) 드디어 수술을 하는 첫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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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술방식
비절개
이식량
100모
(50모낭)
수술경과일
1일
연령대
비공개
수술범위
A형
<수술전사진>
<수술직후사진>
공항대기실에서 이런저런 생각들을 하다보니 어느덧 비행기시간이 다 되어버렸다. 저녁11시50분에 뜨는 비행기. 11시20분이 되니 사람들이 하나, 둘 비행기 타는 곳으로 줄을 서기 시작했다. 다들 나와는 다르게 즐거운 여행을 가는지 얼굴들은 상기돼 있었다. 그들의 들뜬 분위기에 섞여 나도 비행기에 올랐다. 일부러 비행기 맨 뒷좌석 창가 쪽을 택해 좌석을 예약한 나는 드디어 내 자리를 찾아 앉았다. 평일이라 그런지 비행기 안은 의외로 한산했다. 드디어 비행기가 아주 세게 달리기 시작하더니 잠시 후 이륙하였고 생각보다는 흔들림없이 위로 솟구쳐 올랐다. 기분이 이상했다. 내 옆에는 아무도 앉지 않았기에 자리는 무척이나 넓게 사용할 수 있었다. 그런데 터키항공의 스튜어디스들은 이상하다. 잘 웃지를 않는다. 자기들끼리 이야기할 때는 잘 웃다가도 손님들에게 말을 건넬때는 마치 싸움하듯이 말을 던진다. 원래 터키 말이 그런가? 하여튼 먹는 것을 준다는데 마다할 이유는 없어 고개를 끄덕이며 메뉴를 정했다. 그 중 한 스튜어디스가 내게 메뉴를 말하면서 <<보쌈?>>비슷한 발음을 하기에 그걸로 달라 하였다. 은박지로 싸여진 음식을 열어보고는 이런;;;; 내가 생각한 보쌈이 아니라 그 이상한 말랑말랑한 플라스틱 고물을 데쳐놓은것같은 음식이 나왔다. 몇 개 집어먹다가 포크를 내려놓았다. 하긴 지금 뭐 잘먹겠다고 관광가는 것은 아니니깐. 창밖을 내다보니 온통 까만 밤하늘에 아래쪽은 드문드문 불빛들이 보였다. 그리고 얼마후 다시 바다 위를 지나는지 아래쪽이 캄캄해졌다. 그러다가 나도 지쳤는지 잠이 들었다. 그리고 얼마나 지났을까, 잠이 깨어보니 아직 2시간도 채 오지 못했다고 앞좌석뒷면에 붙은 미니텔레비젼에 표시되어 있었다. 그렇게 자다 깨기를 수차례 하고 나니 곧 착륙한다는 방송이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왔다. 장장 11시간이 넘는 비행시간. 그 길고 긴 시간을 오직 득모하리라는 희망과 오기로 버텼다. 허리와 다리가 욱신거릴정도로 자리는 좁았지만 견뎌냈다.
드디어 이스탄불 도착.
나가는 사람들을 따라 출입구를 찾다보니 어느새 입국수속을 밟는 곳에 도착했다. 입국수속을 담당하는 사람들 앞에서 여권을 내미는데 모자를 또 벗으랜다. 하~! 참. 미치겠네;;; 대체 몇가닥 푸석거리는 머리는 왜 자꾸 보려 하는건지.. 나는 모자를 벗으면서 통하지도 않는 단호한 한국말로 <모발이식~!>이라고 큰소리로 말했다.
그것은 마치 여기도 그러느냐~!라는 오기 받친 어투였다.
순간 내 강한 어조에 내 여권을 보던 직원은 인상을 찌뿌렸다. 그래서 아예 손가락으로 머리카락 한 개를 뽑아 다시 내 머리에 심는 시늉을 하였더니 피식 웃어댔다. 그냥 나도 웃어줬다. 어쨌든 그렇게 입국수속을 밟고 밖으로 나오니 이미 모든 사람들이 다 빠져나가고 몇몇 사람들과 안내원들만 몇 서 있는 자리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아직 나를 마중나와야할 현지 TEPE담당자가 나와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곳에 서 있는 터키 안내원들(아저씨들)에게 통하지도 않는 바디랭귀지로 손짓, 발짓해가며 전화한번 할 수 있느냐고 부탁했더니 그 나라 돈으로 2리라를 달랜다. 확실하지는 않지만 우리나라돈으로 2500원(?)정도 되는 돈이다.
10유로를 주면서 거스름돈을 받고 그들이 말하는 2리라를 줬더니 자신의 핸드폰으로 미리 적어간 현지 TEPE 담당자와 통화할 수가 있었다. TEPE담당자는 죄송하다고 하면서 이렇게 비행기가 빨리 도착할줄은 모르고 자신이 숙소에서 출발이 좀 늦었다고 10분만 기다려달라 말을 하였다. (평소보다 비행기 도착시간이 약 1시간가량 앞당겨졌었던건 사실이다.)
하지만 30분이 넘도록 TEPE담당자가 오지 않기에 뭔가 잘못됐나 싶어 발을 동동 굴리고 있었는데 갑자기 저기 멀리서 누군가가 나를 향해 손짓을 하였다. 아까 내게 전화를 하게끔 해줬던 안내원이 이번에는 자기가 손짓,발짓을 하며 나를 이리 오라고 불러대고 있었다. 그래서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달려가보니 나더라 한마디로 이리로 쭈욱, 돌아서 저리로 쭈욱 가라는 신호를 했다. 고맙다고 말하고서는 그들이 말하는 대로 걸어갔다. 그리고 그 안내원들에게 고마운 마음이 들어 돌아보고 다시 인사를 했다. 그랬더니 그들도 마치 나를 원숭이보듯이 내 흉내를 내며 인사를 했다. 그렇게 서로 원숭이흉내내기를 3번(?)정도 했을까? 그냥 웃어주고 달려갔다. 달려간 그곳에는 세상에나;;;;;;; 다른 자동문의 출입구가 있었다.... 그렇다 나는 아직도 밖으로 나가지 않고 안에 있었던 것이다. 촌놈이 공항에서 내려본적이 있어야지 말이다. 가끔 스타들이 비행기에서 내려 나오면 사람들이 이름을 쓰고 흔들며 반기는 바로 그런 모습의 개찰구가 거기 있었다. 이런;;;;; 그리고 한참을 그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내 이름을 찾았지만 보이질 않았다. 그러기를 몇 분이 지났을까, 갑자기 누군가가 내 이름을 부르며 다가와 인사를 했다. 자신이 TEPE담당자란다. 그렇게 어렵게 상봉한 우리들은 밖으로 나가 미리 대기하고 있던 차를 올라타고 숙소를 향했다. 약30분가량 차가 도로를 달려가는동안 나는 뒷좌석에서 안도의 함숨을 내쉬고 있었다. 드디어 터키구나~! ...낯선 건물들과 밤야경을 스치며 차는 빠르게 달려갔다. 현지TEPE담당자는 능숙한 터키어로 기사와 이야기를 나누며 내가 어색한 분위기에 힘들어할까봐 간혹 말을 건네줬다. 어느정도 지났을까, 숙소에 도착한 내게 TEPE담당자는 방으로 안내했고 그 방에서 간단하게 앞으로의 일정을 안내받았다. 담당자는 내게 샤워를 한 후, 좀 주무시고 계시면 아침 10시쯤 수술 의료진과 함께 다시 오겠다고 했다. 나는 얼른 가방에서 준비해온 수술비를 TEPE담당자에게 먼저 건넸다. 왜냐면 내가 돈을 가지고 있으면 분실할까싶은 걱정이 돼서였다. TEPE담당자는 나중 줘도 된다고 한사코 말렸지만 나는 돈을 가지고 있는 것이 오히려 불안해 무조건 떠맡겨버렸다. 그렇게 TEPE담당자가 방을 나서고 나서야 침대에 털썩 주저앉아 안도의 함숨을 쉬었다. 다시 자리에서 일어나 창문에 늘어뜨려진 로만쉐도우를 걷으니 새벽녘 눈이 내리고 있었다. 한참을 밖을 내다보다가 옷을 벗고 샤워를 한 후. 잠이 들었다.(이스탄불 새벽5시경//한국시간으로는 낮 12시) 하지만 잠이 오겠는가. 선잠을 2~3시간 자고 깨어보니 방으로 식사가 왔다.(빵 한조각,쨈,버터,달걀,홍차)였다. 후덕한 영양사 아주머니가 가져다주는 음식치고는 정말 개미 밥상같았다. 하지만 우리 한국과는 다르게 이렇게 먹는 것이 터키식인가보다 했다. 정말 예전 어릴때 보았던 만화 <플랜더즈의 개>에 나오는 식사같았다. 그런데 삶은달걀색이 특이했다.. 껍질이 완전 하얀색~! 속은 여느 달걀과 똑같은데 겉껍질색만 달랐다. 하여튼 배가 고파 다 먹어치웠다. 식사 후 앉아서 의료진을 기다리고 있는동안 창밖에는 계속 눈이 내리고 있었다. 낯선 타국에서 보는 눈이 신기했다. 그러는 와중에도 마음 한구석에 걱정이 밀려들었다.
나는 국내에서 1차수술을 절개술로 받았었다. 혹 그로 인해 채취할 수 있는 모발량이 적을까봐 노심초사
하였다. 이 먼 길을 와서 고작 몇천모만 심는다면 이 고생이 다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어 걱정이 앞섰다.
하지만 한국의 tepe(테페) 고팀장 말처럼 모든 것을 의료진에게 맡기고 마음을 편하게 먹기로 했다.
그렇게 그 먼 타국에서도 한국의 tepe(테페) 고팀장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위로가 되고 힘이 되었다.
아침 10시쯤 되자 현지 담당자와 의료진이 함께 나를 찾아왔다. 의료진은 내 모발상태와 채취가능한 모발량을 체크했다. 그들의 말을 TEPE담당자가 내게 통역해주는데 그 내용인즉,
(다른 사람에 비해 내 두상이 상대적으로 작고 뒷머리 모양이 역삼각형 모양이라 모발량이 적은데다가
1차수술때 이미 많은 양의 모발이 뽑혀버려 그다지 많은 양은 뽑지 못하겠다)
는 결론이 나왔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안 심는게 아니라 내 머리카락이 없어서 많이 못 심겠다는데... 어쨌든 뽑을수 있는 최대한의 모발을 뽑아 밀도를 높이고, 차후 진행될 탈모부위를 채우기로 했다.
오전 10시경 드디어 시술이 시작됐다.
먼저 수술 전 내 머리 모습을 4각도에서 찍고 삭발을 하였다. 그리고 채모할 뒷머리부분을 표시하고 수술대에 누웠다. 먼저 마취를 하기 시작했다. 국내 1차 절제술을 받으면서 너무나 아팠던 경험이 있었던 나로서는 웬만한 통증은 다 견뎌낼 수 있었다. 마취를 하는 도중에도 자꾸 아프냐고 물어보는 의료진들에게 아무렇지도 않은듯 아뇨! 라고 대답을 해댔더니 이상한듯 고개를 가웃거렸다. 다른 사람들은 이정도면 아프다고 표시하는데 나는 아무 티를 안내니 이상했나보다. 그런데..정말 하나도 아프지 않았다. 아니 약간 따끔거리기는 했지만 칼로 절개를 해본 나니 그까짓 아픔은 아픈것도 아니였나보다. 오히려 그들의 놀라는 반응이 재미있었다. 마취가 끝탄고 드디어 모발을 채취하는 펀칭작업이 시작되었다. 샤프 끝처럼 생긴 자그마한 펀칭으로 채취할 머리카락에 펀칭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서 피를 닦는 거즈로 피를 닦으면 펀칭해놓은 머리카락이 저절로 두피 위로 올라섰다. 마치 두더지 게임에서 망치로 두더지를 잡으려고 하면 두더지 한 마리씩이 머리를 내미는 것처럼 펀칭해놓은 머리카락들이 하나둘 위로 고개를 내밀었다. 그렇게 고개를 내민 머리카락을 핀셋으로 집어 거즈에 하나하나 나열시키기 시작했다.
(이 모든 것들은 수술 당시에는 보지 못했으나 이틀 후 다른 분이 수술하시는 것을 곁에서 지켜보면서
알게 된 것이다)
그러기를 약 3시간가량이 지났을까.
그런데 아직도 펀칭과 모발을 뽑는 작업은 계속되고 있었다. 아침에 말하기를 내 두상이 작고 일차수술때 이미 많은 모발이 뽑혀 뽑을 머리가 많지 않다더니 아직도 뽑고 있다니....이렇게 오랜 시간동안 머리를 뽑는다? 이해가 되질 않았다. 아니 말이 안되었다. 3시간이 넘도록 아직까지도 채모를 하다니 ... 대체 얼마나 많은 양을 뽑길래 시간이 이토록 오래 걸린단 말인가.(국내에서는 절개식으로 했기에 채모시간은 비교할 수가 없다.)
약 3시간 30분이 다 지나서야 채모가 끝났다. 하지만 더 놀란건 내 뒷머리 전체가 아닌 정확히 뒷머리의 절반정도에서 채모를 했다고 했다. 그런데 3시간 30분?
총 2050모낭이었다.
오늘 채모한 모발을 가지고는 일단 머리의 앞부분을 다 채운다 말했고 뒷머리의 나머지 절반은 내일 다시 채모를 하여 앞으로 진행될 탈모부위를 다 덮겠다고 하였다. 첫날인 오늘 내 뒷머리에서의 채모량은 2050모낭이었으며 점심식사 후 머리 앞부분에 이식하기 시작한다고 알려주었다. 내일 도한 비슥한 양이 채모될꺼라고 미리 알려주기까지 했다. 이렇게 정확한 채모량을 어덯게 알려줄 수 있지 하며 의문이 들었지만 이내 곧 그 의문은 풀렸다. 채모가 끝나고 일어나 앉으니 내게서 뽑은 채모가 실린더컵에 적셔진 거즈 위에 하나하나 놓여 있는데 마치 줄을 지어 누워있는 작은 풀들처럼 촘촘히 놓여 있었고 같은 규격의 거즈마다 100개의 채모가 놓이게 된다. 그러므로 거즈수가 10개면 1000모고, 20개면 2000모인 셈이다.
내가 본 거즈수는 21개인데 그중 1개는 절반정도 찼으니 2050모인 셈이었다. 하지만 그 양은 어마어마 했다.
한국에서 1차수술을 받을때와는 비교가 안될 양이었다.
만약 내일 채모될 양까지 합치면 총 4000모 이상이 된다는 소리인데 이정도 양이라면 한국의 8000에서 9000모에 해당되는 양이다. 왜냐면 외국과 우리나라는 채모의 수를 세는 방식 자체가 다르기 때문이다.
외국은 한 모낭에 들어있는 머리카락 수와 상관없이 한 모낭 하나를 하나로 치는데,
우리나라는 모낭수와 상관없이 한 모낭에 머리카락 2개가 들어있으면 그것을 2개로 친다.
그러니 1000모낭을 심는다고 할 때
외국은 정확히 구멍 1000개에 1000번에 거쳐 1000개의 머리카락을 심지만,
우리나라는 대략 200~300번정도에 걸쳐 200~300개 정도의 구멍 속에 머리를 심고나면 그것으로 1000개를 심었다고 수학계산을 하는 것이다.
그러니 같은 1000모를 심었다 하더라도 국내에서 1000모를 심은 사람은 남들이 보았을 때 듬성듬성 300개가 심겨진 것으로 보이는 반면, 해외에서 시술한 사람은 같은 1000모를 심었다 할 때 빼곡이 1000개의 모가 심겨진 것으로 보이는 것이다. 그러니 그 촘촘한 밀도는 국내수술과 비교할 수가 없다.
나는 이제 국내에서도 1번 , 해외에서도 1년이 채 안되는 시기에 한번 ,각각 1번씩 수술을 해본 사람이 되었기에 이 차이를 누구보다 자신할 수 있다.
..................................
그렇게 채모를 끝낸 후, 점심을 먹기 전에 미리 오후에 머리카락을 이식할 부위에 초기 마취를 해두고서 통역해주는 최군과 나보다 먼저 와서 어제 수술을 마친 대다모 회원 한분과 함께 점심을 먹었다. 다들 처음 본 사람들이었지만 같은 아픔을 가지고 이 먼 나라에 와서인지 금방 친숙해졌다. 점심을 먹고 잠시 쉬고 나서 다시 수술대 위에 오른 나는 오전보다 더 편한 자세에서 그냥 누워 있었다.
드디어 오후 수술이 시작되었다.
오전에 채취한 모를 심을 홈을 내는 수술(슬릿?)이 시작되었다.
먼저 혹 슬릿작업시 머리뼈를 다치게 하면 안되기에 머리뼈와 두피 사이를 수액으로 채워 조금이라도 칼끝이 머리뼈를 상하게 하지 않도록 하는 작업이 시작되었다. 수액을 다 집어넣은 후 본격적인 슬릿 작업이 시작되었다.순간순간 찔리는 아픔이 있을 때도 있었지만 견딜만했다. 그런데 해외에서 머리를 심는 방식은 그 방법부터가 국내와 판이하게 달랐다. 국내에서는 식모기라는 도구로 머리를 심기에 한번 심은 자리 바로 밀접한 옆에는 모를 심지 못한다. 그래서 약간 떨어진 자리에 모를 심어야 하기에 밀도가 떨어진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아주 가느다란 네스(아주 가는 수술용 칼날)로 먼저 두피에 모를 심을 칼집을 낸 후, 심을 때에 가느다란 핀셋으로 그 칼집을 낸 자리에 모낭을 삽입시키는 방식으로 하기 때문에 밀도는 거의 환상적이 된다.
슬릿이 끝나고 본격적으로 모를 심는 수술이 진행되었다.
에이 설마 머리심는데 그렇게 일일이 심겠나 했다. 국내수술에서는 2시간도 채 안되는 시간에 끝나버렸으니 말이다,. 큰 기대는 안했고 호기심으로 지켜보기로 했다. 속는셈치고 누워 지켜보는데 이런;;;;;;;;;;;; 정말이었다... 얼마나 머리 심는 시간이 오래 걸리는지 수술을 받는 내가 의료진들을 말리고 싶을정도로 점점 내 발과 손이 저려오기 시작했다. 너무 오랜 시간이 걸리는 것이었다.
수술 도중에도 순간순간 내 상태를 물어보며 아프냐고 물어가며 수술은 차근히 진행되었다. 그런 세심한 질문 하나하나에도 마음이 놓였다. 감사하기까지 했다.
그런데 내가 깜박 졸았는지 꿈결에 갑자기 다리를 부르르 떨었나보다. 잠결에 그럴때가 있지 않은가. 그것을 보고 놀라 내게 괜찮냐고 묻길래 자다가 잠결에 그랬다고 하면 창피해서 그냥 다리가 저려서 다리를 한번 흔든거라고 얼버무렸다.
심고, 또 심고, 또 심고..................... 심어도 심어도 끝날줄을 몰랐다. 대체 언제까지 심을련지...나중에는 가슴이 답답하고 저려오면서 간지러워지기까지 했다..... 하지만 그래도 심고, 또 심고, 심어댔다... 그냥 포기해버리고 잠들어버렸다. 어느정도 시간이 흘렀을까. 나를 깨우길래 일어나 보니 간식을 먹자고 했다. 그래서 다 끝났나 보다고 수고했다 했더니.. 이게 웬걸. 300모정도만 더 심으면 된다고 싱긋 웃는데 질려 버렸다;;;; 간식을 먹고 다시 누워 이제 곧 끝나겠지 싶었는데 40분가량이 더 지난 후에야 끝이 났다. 곧 끝날꺼라는 말은 지켜지지 않았지만 내 개인적으로는 대 만족이었다.
오늘 모발이식은 채모하는데 약 3시간 30분/ 심는데 약 4시간30분가량으로 총 8시간가량이 걸렸다.
붕대를 감고 내 방으로 돌아온 나는 화장실에 가서 거울을 쳐다보았다. 그리고서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세상에....마치 가느다란 솔을 머리에 하나하나 박아놓은 것처럼 촘촘한 밀도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정말 이것이 사람의 손으로 심어진 머리란 말인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촘촘했다. 내 뒷머리와 다름없을 정도의 간격으로 촘촘히 박혀있는 머리카락들이 신기하기까지 했다.
이런 정도의 밀도라면 나중 발모 후 전혀 심은 티가 나지 않을 것을 1차수술 실패의 경험을 통한 노하우로 미리 짐작할 수 있었다. 소리없이 웃었다. 더더욱 놀란 것은 화장실에서 나와 베개를 베고 눕는데 뒷머리가 아프지않는 것이다. 수술 후 바로 누울 수 있다니;;;;
사실 1차 국내수술후에는 집에 돌아와 10일 이상을 뒷머리 봉합자국으로 인해 너무 아파 눕지 못하고 45도 기울기로 앉아서 잤기 때문이다. 그런데 수술 당일 바로 이렇게 누워 잠을 잘 수 있다니;;;; 신기하고 놀라웠다.
그렇게 수술첫날이 지나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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