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발이식은 최종 결과가 1년 후에나 최종 확인이 되기때문에 심고나서 관리가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수술 후 자신의 상태를 회원들에게 진단받고 수술 후 관리나 사례별 생착, 추가 보완 방법을 카운셀링 받는 공간입니다.
모발이식 관련 의사들도 케이스를 공부하기 위해 방문 하는 이곳, 전세계에서 가장많은 임상자료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수술을 준비중인 누군가에겐 가치를 표현할 수 없는 의미있는 기록을 남겨주신 모든 선배님들께 감사드립니다.
수술 후 포토자료를 남기는것은 '환자 힘'이기도하며 향후 예상할 수 없는 수술결과에 대한 강력한 보험입니다.
아무도 해보지 않은 새로운 방법으로 정수리를 공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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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술방식
비절개
이식량
8000모
(4000모낭)
수술경과일
250일
연령대
비공개
수술범위
O형
위 사진들은 모발이식 직후부터 장장 8개월간의 모발의 자라나는 과정을 개인소장용으로 보관하고 있던 것을 공개하는 것이다. 이것 또한 그동안 쭈욱 내 후기를 보아준 대다모 회원들에게 바친다.
그리고 국내 그 어떤 병원에서도 내 사진을 도용하여 마치 자신들의 병원에서 시술하여 이런 결과가 나온것처럼 홍보한다면 가만 있지는 않을 것이다...........
<터키에서 1차 때 수술하지 않았던 정수리 부위에 대한 색다른 2차 수술을 하기로 결심하다>
8개월가량 터키에서의 1차 수술결과를 쭈욱 지켜보던 나는 또 다른 결심을 하였다. 그것은 터키에서의 1차수술시 전혀 손대지 않았던 정수리부분 또한 수술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내 머리를 이 정도까지 풍성하게 해줄 수 있는 중개업자(터키 테페센타)라면 충분히 믿고 맡길 수 있겠다라는 확신이 섰기 때문이다. 이렇듯 1차 터키수술에서 손을 대지 않았던 정수리 부위의 수술을 하기로 용기를 낼 수 있었던 것은 사실 엉뚱한 데 그 이유가 있었다. 그것은 바로 테페에서의 1차 수술이 내 기대 이상으로 너무 잘되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잘될 줄은 몰랐었다. 1차 국내수술의 실패를 맛보았던 나로서는 그게 그거지 라는 식의 마음으로 반신반의 터키에서 수술을 했던 것인데 이렇게 좋은 결과를 얻을 줄은 몰랐다. 그러다보니 터키 1차수술을 했던 부분이~ 수술하지 않았던 정수리 부분에 비해 너무 두드러지게 풍성해져 상대적으로 수술을 하지 않았던 정수리 부분이 너무 비어 보였던 것이다.
그냥 이대로 두면 나중 남들이 볼 때, 마치 내 머리의 모양이 마치 새집을 머리에 틀었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머리 주변부는 빙 둘려 무성한데,정 가운데(정수리)부위는 비어 보인다 말할 것이 뻔하기에 시간이 더 가기 전에 이렇게 과감히 ( 2차 정수리 )수술을 결정하게 된 것이다.
;;;;;;;;;2차 수술을 내심 결정하면서도 사실 무엇보다 걱정했던 부분은 바로 경비 부분이었다.
한번이 아니라 두 번째 하는 수술인지라 1차 수술비와 2차 수술비까지 합치면 1년 안에 지출하는 금액으로는 꽤 만만치 않게 지출하게 되는 수술비와 더불어 또 들어가게 될 비행기 비용과 기타 경비들을 생각하니 앞이 캄캄했다.
하지만 이대로 미루고 있을 수만도 없었다. 내 생각은 아주 단순하다.
머리카락은 심어만 두면 그 다음은 시간이 흐르면 자라나는 것이고, 돈은 벌면 되지만 머리카락은 심는 그 때부터 자라나기 시작하니 우선 모발이식부터 해야 되겠다는 결정을 한 것이다. 하지만 이래저래 돈 들어갈 곳이 많은 지금, 한번에 그 많은 경비를 충당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결국 고팀장님에게 떼를 쓰기로 했다. 어떻게든 이번 수술경비를 좀 낮춰주십사 하고 말이다. 하지만 그게 그렇게 간단한 문제는 아닌 듯 싶었다. 고팀장님과 현지 가이드겸 책임자인 민철씨가 받을 수익금을 안 받으신다 하더라도 현지 의료진들과 병원측에 지불할 금액은 없애기가 힘들다 하셨다. 어떤 식으로든 조금이나마 낮춰보려 애쓰겠지만 눈에 띌 정도까지는 낮추기가 힘들 것 같다 어필을 하셨다.
사실 고팀장님에게 말하기 전에 내 나름대로 계산해본 수술비 금액이 있었는데 1차 수술 후 내 나름대로의 판단으로 추측했던 2차에 들어갈 예상 수술비는 다음과 같은 전제 하에 예측해본 것이었다.
1> 이번 내 머리 상태로 보아 2차 정수리 부위 수술이고, 1차 터키수술시 사실 많은 양을 뽑아버려 3000~4000모 낭정도는 뽑지도 못할 테니 많으면 2000~1000모낭정도라 여기고
2> ✹ 1차수술 (이틀 수술)과는 달리 수술받는 날짜도 하루면 가능할 것 같았고 (우리나라도 인건비로 치면 하루만 지불하면 되는것처럼 의료진들과 병원측에 지불할 금액도 1차수술의 이틀보다는 절반으로 감해질것이라 예상)
3> ✹ 머무는 시간은 최대한 단축하면 가능할 것 같았고 (나중 안 사실이지만 숙비는 고팀장님의 발빠른 대처로 병 원 안이 아닌 더 나은 환경의 투룸식의 빌라 같은 곳에 마련되어 있었다.,즉 숙비 부분은 비용이 절감되기에 충분)
4> ✹ 비행기삯은 1차수술때도 수술비와는 별도였으니 포함시키지 않는다면
1차수술 때(이틀수술)에 3600유로(우리나라돈 약 500만원)가 들었으니 이번 2차수술(하루수술)은 2000유로 전,후(2000~2600유로 우리나라돈 약 270만원~360만원)정도의 비용이 드는 것이 일반적으로 에이전시(중개업)측에서 제시하는 공식적인 2차수술 비용이 아닐까 짐작했었다. 물론 모낭수에 따라 조금은 차이가 있겠지만 말이다.
게다가 고팀장님에게 공식적인 2차수술비 (예측가격 2000~2600유로)보다 조금 더, 아니 아주 많이 낮춰주셨으면 하고 떼를 써본 이유는 나름 이유가 있어서였다.
그것은 1차 터키수술 후, 고팀장님이 내게 안부 전화를 해 오셨을 때 내게 말씀하시기를 벅수씨가 대다모에 쉼 없이 올려왔던 후기들의 진실성을 보아주신 많은 대다모 회원들이 테페를 더욱 신뢰하게 되었다 고 하시면서 내게 하셨던 또 한가지 말씀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언젠가 고팀장님이 내게 주신 전화내용가운데 <나중 만약 한번 더 수술을 하시게 되면 벅수님은 그때
비행기삮만 부담하시면 그 외에는 최소한의 경비로 거의 비용부담없이 수술받으실 수 있도록 하겠다~!>
라고 말씀하셨었기 때문이다.
사실 나는 한 것이 없다. 내가 한 것이 무엇인가. 아무것도 없다.
단지 내게 시술되었던 기록을 남겨둔다는 마음으로 거짓없이 있는 그대로, 보이는 대로, 꾸밈없이 사진만 찍어 올렸을 뿐인데 그것이 있는 그대로를 보아주는 많은 대다모 회원들에게 좋게 보였다는 것이 감사할 따름이다.
게다가 그것이 나를 이렇게 행복한 결과로 이끌어준 테페센타에 간접적인 도움까지 줬다는 점은 내 나름대로도 흐뭇할 뿐이다. 왜냐면, 나는 내 후기에 그 어떤 기교도 부리지 않고 있는 그대로 사실만을 올렸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작 2차수술을 하려고 마음먹다보니 그때 고팀장님이 내게 해 주셨던 그 약속이 자꾸 떠올라 그 약속을 믿고 매달려보기로 한 것이다.
다른 이에게는 2000~2500유로에 해 줄 2차 수술일테니 내게는 혹시 무료??.. 나중 안 것이지만 이것은 내 착각^^) 이거나 아니면 한 800~1000유로(한국돈 70만원~100만원)으로 해 주실려나????????????내가 꿈도 컸나보다.
말도 안되는 꿈을 꿨더니 머리가 아팠다. 아니 어쩌면 TEPE 측의 표현으로 내 후기가 그렇게 테페측에 도움이 많이 되었다고 하니 정말 그렇게 도움이 많이 되었다면 무료도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욕심에 테페측의 정성(?)을 지켜보고자 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결국 그 허황된 꿈의 결과는 고팀장님의 답변에서 깨졌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봐도 고팀장님 나름대로는 최선을 다해 최소의 경비로 수술받도록 노력해주신 것 같다. 다른 사람들에게 말할 2600유로보다는 더 낮춰주시기로 한 것이다. 어차피 내가 아쉬워서 하는 수술이니 더 달라고 해도 지불해야할 입장에 뭐라 말하겠는가. 그냥 감사할 뿐이었다. 이렇게 경비부분이 어느 정도 결정되고 나니 또 다른 고민이 드러났다. 그것은 수술시기였다.
고팀장님과 의료진들은 아직은 2차수술을 하기에는 너무 이르니 수술시기를 좀 늦추자고 하였다. 아직 자라날 머리카락이 더 있고 , 탈모될 모발이 어느 정도 더 탈모된 후 그 빈자리를 보고 모발이식을 시행하자는 의견이었다. 하지만 내 의견은 달랐다.
실제 내가 고대표님에게 보낸 메일내용은 다음과 같다.
///////////////////////////////////////////////////// 고대표님께............
제가 고대표님에게 의료진들에게 일반적인 상식과는 반대되는 수술을 말씀드려달라 부탁드리고자 합니다.
일반적인 모발이식 수술은
뒷머리의 상태를 어느 정도는 보존하기 위하여 뒷머리에 어떻게든 평균정도의 모발은
남겨두고자 하는 마음으로 수술에 오르고 환자들도 그러기를 바랄 것입니다.
한마디로 완전히 정수리 부위를 다 덮지는 못하더라도 뒷머리도 어느 정도는 남기기
위해 무리하게는 뒷머리를 뽑지 못한 채로 수술을 시행해야 하기 때문에
저같은 경우에는 사실 기대에 훨신 못 미치는 모발이식이 될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러니 고대표님,
저는 그렇게 하지 마시고 제가 다 감수할테니 의료진들에게 뒷머리가 아니라 먼저 제
정수리 부위의 탈모정도를 살펴보고 그 탈모부위를 채우는데 필요한 모낭수를 짐작한
후에 그 필요한 모낭만큼을 뒷머리와 옆머리에서 인정사정없이 무조건 뽑아 달라 말씀
해주십시오. 한마디로 뒷머리 상태에 따라 뒷머리에 조금이라도 모발을 남겨두고자 아
끼는 마음으로 어설프게 뽑지 마시고 윗머리에 필요한 모발을 체크하여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뒷머리에서 그 필요한 모발수만큼 왕창 뽑아 버리라는 것입니다.
저는 어떤 각오도 하고 있냐면요,만약 그렇게 해서 뒷머리가 거의 없어진다면 차라리
수술로 인해 휑하니 비어버린 뒷머리쪽을 바리깡으로 삭발하고 다닐 마음도 있습니다.
그러니 이런 제 의사를 반드시 현지 의료진들에게 알려주셔서 두려움없이 수술할 수 있
도록 해 주세요. 제가 선택한 것이니 제가 누구 탓을 하겠습니까. 걱정 마시고 꼭 그렇게
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니 그곳 의료진들에게 이렇게 말씀해주세요~!
●" 이번 수술을 시행할 때
지금 현재 벅수님 정수리 부분에 아직 많은 머리카락들이 밀도있게 배열되어 있지만
너무 가늘고 자라나질 않아 사진상으로 보아도 휑하게 찍히니 그냥 그 자리에 머리
카락이 없는 민머리라고 생각하고 현재 정수리 부분에 존재하는 탈모가 진행중인
약한 모발들이 다쳐 빠지는 한이 있더라도 탈모예상 모발 옆쪽으로 슬릿을 내어 최대한 이식하세요."●
////////////////////////////////////////////////////////////////////////////////////////////////////////
라고 편지를 드렸던 것이다.
수술시기도 몇 달 뒤로 늦추지 않고 앞당겨 하고자 했던 것은 다른 분들과 다르게 나는 유전성 탈모여서 빠질 부위를 미리 예측할 수 있는 경우이기에 다른 분들처럼 탈모가 더 진행될 때까지 조금 더 기다릴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그저 가족력을 살펴 탈모예상부위만 예측하여 그 자리가 몇 년 후 어차피 머리카락이 나중 다 빠져 민머리가 된 상태라 상상하면서 1차 수술때처럼 촘촘하게 슬릿을 내어 심어두기만 하면 나중 시간이 흐른 후 그 이식한 부위에서 이식한 모발은 자라나고 어차피 빠질 그 자리 모발들은 다 빠져나가 결국은 이식모들만 남아있게 될 것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현재 빠지지 않고 남아는 있지만 어차피 빠져버릴 머리카락들을 아깝다 생각하지 않고 그냥 그 위에 덮어씌우듯이 모발이식을 해 달라고 고팀장님에게 부탁했던 것이다. 일반적으로 현재 나 있는 모발을 다치지 않게 하면서 그 옆에 심는 모발이식과는 완전히 다른 차원의 무모한 듯 보이지만 내 스스로의 판단으로는 가장 좋다 여겨지는 방법으로 시술해주시기를 부탁드렸던 것이다. 고팀장님도 처음에는 자꾸 만류하셨지만 이런 내 뜻을 꺽을 수 없음을 아셨는지 나중에는 내 이 의견을 최대한 수용해 주셨다.
그 후 수술을 준비함에는 거침이 없었다. 1차수술 때 준비해보았던 것들이 있었기에 어려운 점은 크게 없었다. 일사천리로 수술 스케쥴을 잡았고 너무나 감사한 것은 테페측에서 이모저모 내게 신경을 많이 써 주신 점이다. 수술 일정도 내 의사에 따라 최대한 맞춰주셨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남은 것은
그동안 1차 수술은 몰라도 2차 수술까지 해외로 가는 것에 대해 반대해오던 집사람을 설득하는 것이었다.
한 번의 수술로 끝날 줄 알았는데, 또 같은 과정을 거치려하는 나를 집사람의 입장에서는 이해하기가 힘들었던 것.
집사람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에는 내 편에 서 주었다. 다 이해한 것은 아니지만 그저 믿고 따라주련다라고 말해 주었다. 고마웠다. 그 어떤 것보다도 집사람의 그 마음은 내게 용기가 되 주었다.
월말이라 이래저래 돈 나갈 곳이 많아 힘든 시기지만 수술을 늦추고 싶지는 않았다. 왜냐면 수술을 마치고 나면 그때부터는 시간이 흐르면 되어지는 것들만 남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인생을 살다보면 먼저 해야할 일과 나중 해야할 일이 있다. 지금 내게는 이 수술을 하는 것이 먼저 해야할 일이었던 것이다. 수술을 결정하고 수술날짜를 잡고, 비행기표를 예약하고, 비자를 챙겼다. 드디어 2차 터키수술의 준비가 다 갖춰졌다.~!
터키로 2차 수술을 받으러 떠날 모든 채비를 하고 고팀장님에게 메일 하나를 보냈다.
그렇잖아도 고대표님이 낮춰주신 수술비 때문에 내심 테페 측에 죄송스럽고 고마운 마음을 지니고 있었던 터라 고팀장님에게 출국하는 날에는 공항에 나오지 마시라고 했다. 출국절차와 기타 터키에 도착해서의 절차만 알려주시면 나 혼자라도 갈 수 있다라고 메일을 드렸다. 왜냐면 처음 수술도 아니고 두 번째, 그것도 테페측에 드릴 수술비를 다 주고 하는 수술이 아니라서 미안해서였다. 내 수술비를 어떻게든 낮춰주시고자 고팀장님과 민철씨의 이익배당금까지 없는 것으로 해가면서 낮춘 수술비를 지불하고 하는 수술이라서 솔직히 내 입장에서는 염치도 없었을 뿐더러 그런 입장에서 공항에까지 배웅 나와 달라는 것이 괜히 죄송스러웠기 때문이다. 어쨌든 고팀장님이 메일로 알려주신 대로 출국수속을 혼자 밟았는데 출국과정은 생각보다 번거롭지 않았다. 간단한 몸 검사를 하고 출국을 기다리며 다시 찾은 인천공항 대합실은 1차 수술때와는 사뭇 기분이 달랐다. 한밤중 인천공항 대합실. 9개월만에 또 다시 같은 이 자리에 앉아 있다니.... 하지만 1차 수술때의 내 마음이 불안, 초조, 의심이었다면 이번은 희망이었다. 대합실에 앉아 개그콘서트를 보며 웃고 있는 내 모습이 여유로와 보이기까지 했다. 그렇게 오른 비행기. 첫 비행 때 그렇게 길게 느껴졌던 시간이 이번은 그다지 길게 느껴지지 않았다. 또한 비행기 내 공간도 그다지 좁게 느껴지지 않았다. 역시 첫 번째보다는 두 번째가 여유로운가 보다.
12시간 이상을 날아 그렇게 도착한 터키공항.
그곳에 미리 나와 있던 픽업담당자인 터키 택시기사분을 따라 택시에 올라 1시간가량을 달려 현지 담당자인 민철씨가 있는 숙소를 찾으려 애썼지만 택시 운전자가 지리를 잘 모르는지 한참을 헤맨 후에야 비로서 민철씨를 만날 수 있었다. 민철씨를 따라 숙소에 가니 1차 수술때와는 다르게 숙소가 완전히 바뀌어 있었다. 일반 가정집처럼 편안한 숙소로 말이다. 그 숙소는 평상시에는 민철씨가 거주하는 집으로서 방이 2개 있는데 각 방마다 침대가 2개씩 있었다. 나같은 환자들은 그 2개의 방 중 한 방을 사용한다. 환자분들이 수술 전과 수술 후 지내기에 편안한 방으로 꾸며져 있었다. 환자들의 수술 전과 수술 후의 휴식을 위해 테페 측에서 얼마나 신경을 쓰고 있는 지 알 수 있었다.
수술 받을 환경의 이런 많은 변화 또한 환자들의 심적 편안함까지 고려하는 에이전시측의 노력이 녹아 있었음을 나는 알 수 있었다.
대부분 이렇게 환경을 바꾸다보면 거기에 들어가는 비용은 고스란히 환자들에게 부담되어짐으로 수술비가 급상승하게 되지만 테페는 달랐다. 어떻게든 수술비를 올리지 않는 범위 내에서 최대의 시설과 서비스를 제공하고자 애썼다.
그것 또한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병원 내에 숙소가 있을 때에는 이런 저런 행동에 제약이 있을 수 있음을 염두에 두고 이번에는 그냥 가정집처럼 편안한 빌라 식의 숙소를 따로 운영하고 있다 하였다. 하지만 사실 내 개인적으로는 1차수술때 묵었던 병원에서의 숙소가 나로서는 지내기가 더 좋았던 것 같았다. 여기는 아무래도 개별숙소다보니 식사때마다 일일이 식사를 준비하는 것도 그렇고, 테페 담당자인 민철씨에게만 식사준비를 맡기는 것이 여간 눈치가 보이는 게 아니였다. 몸은 편한데 마음은 무척 불편했다.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내 개인적인 것이고 다른 분들은 편하리라 본다. 하지만 솔직히 민철씨는 무척 힘들 것 같아 보였다. 말이 쉽지 오는 환자마다 매 끼니를 준비하는 것이 간단하지 않기 때문이다. 여자도 아닌 남자의 몸으로 식사 준비하는 것이 쉬울 리 없었다.
병원 또한 내가 1차 수술을 하던 장소가 아닌 다른 종합병원으로 옮겼다고 했다.
원래 1차 수술 때에는 도착한 날 바로 수술에 들어갔었는데, 이번은 간호사 한분이 집을 이사하는 일이 생겨서 자리를 비우는 바람에 사정상 하루 쉬고 다음날 수술에 들어간다고 말해주셨다. 그리고 예상한대로 하루만 수술을 하면 ,수술은 끝나고 그 후에는 휴식을 취한 후 귀국하게 된다고 일정을 알려 주셨다. 그렇게 터키에서의 또 다른 밤이 시작되었다. 밖에서는 개가 짖는다. 터키의 개는 그 소리부터가 다르다.
텅~! 텅~! 하며 짖는다.
....................................................................
다음날, 드디어 수술에 들어갔다. 수술에 들어가는 과정이나 끝나는 과정은 터키에서의 1차수술과 동일했다. 단지 이번 2차수술은 정수리 수술이라서 1차수술과는 다르게 엎드린 자세로 시술을 받았다. 그러다보니 완전 납장이가 되어 엎드려 있었고 오금이 저려 수술 중에도 쉼없이 몸을 꼼지락거렸다. 목도 아팠다. 높은 베게를 턱으로 받치고 엎드려 있다보니 뒷목이 부러지는 줄 알았다. 그런 나를 위해 잠시 후 간호사 분들이 베개를 조금 길게 뽑아 내가 고개를 파묻을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주고 나니 좀 살것 같았다. 저녁이 다 되어서야 끝난 수술은 성공적이었다. 정수리 부위에 이식된 모낭 수는 2080모낭이라고 말해주었다. 기대 이상으로 많은 수였다. 감사했다. 이렇게 되면 터키에서 받은 1,2차 수술을 통해 총 모발이식된 모낭수는 6000모낭이 넘는다. 내 수술은 내 개인적으로 아주 만족스러웠다.
수술은 무사히 마쳐졌고 다시 숙소로 돌아온 나는 잠시 자리에 앉아 안도의 숨을 쉬었다. 지금 이 자리에 앉아 있는 것이 마치 꿈 같아서였다. 1년 동안 쉼 없이 달려온 듯한 과정들이 꿈 같아서 , 순간 그동안 긴장하였던 모든 것들이 풀어져 내리는 것 같았다.
오늘 수술방법은 전적으로 내 고집(?)스런 요구사항대로 시술되어졌다. 어쩌면 아무도 해보지 않았던 시도였는지도 모른다, 의료진 쪽에서는 선뜻 권하지 않는 방법을 나는 요구했고 의료진들은 나의 긴 설득을 통해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시술해주었던 것이다. 앞서 말했었지만 내가 요구했던 시술은 다음과 같다.
...........................일반적인 모발이식은........................................................
현상태의 탈모상태를 보고 이미 탈모된 부위를 중심으로 앞으로 진행될 탈모부위를 예측하여 기존모들을 최대한 다치지 않게 하는 범위 내에서 그 사이 사이에 슬릿(심을 자리)을 내어 발취한 뒷머리쪽의 이식모들을 그 자리에 심는다.
하지만 내가 요구한 수술 방법은
나는 유전적인 탈모이니, 내 아버지의 탈모상태를 통해 앞으로 나 또한 어떻게 탈모가 되어질지 예측이 충분히 가능하므로 그 탈모될 부위를 미리 싸인펜으로 그려 이발기로 그 자리를 완전히 민머리처럼 민 후, 그 자리에 이미 아무 머리카락도 없다고 여기고 그냥 민머리 위에 슬릿을 내듯 심을 자리를 내어 촘촘히 이식해달라 요구했던 것이다.
게다가 나는 이미 국내 1차, 터키 1차 수술을 받느라 뽑을 머리를 거의 다 뽑아버렸기 때문에 더 이상 뽑을 머리가 거의 없을테니 원래 채모에 사용하는 뒷머리 자리에서 무리하게라도 뽑아달라 했다. 그렇게 하면 뒷머리는 완전히 휑해지겠지만 상관하지 않겠다고 했다. 내가 말한대로 수술을 하고나면, 뒷머리는 대머리식으로 되고 윗머리 쪽은 무성해지는 머리상이 될 것임을 알면서도 내가 이렇게 하기를 원한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그것은 머리는 아래부분이 아닌 윗부분이 무성해지면 전체적으로 다 덮어진다고 여기는 아주 간단한 생각에서이다.
이런 결단을 하게 된 데에는 어릴 적 아무도 쉽게 경험하지 못한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중 1 때인가?
이발소를 갔는데 그 당시 나보다 형인 듯 보이는 사람이 나보다 앞서 머리를 깍고 있었다. 그 형이 머리를 깍을 자리에 앉자 이발사 아저씨가 그 형에게 어떻게 머리를 깍아줄까를 물었고, 그런 이발사 아저씨의 질문에 대한 그 형의 답변 내용은 너무나 충격적, 아니 엽기적이라는 표현이 맞다. 그 형은 이발사 아저씨에게 말하기를 뒷머리쪽을 들춰 완전히 절반정도 밀어버리고 대신 윗머리는 자르지 말고 그 삭발된 뒷머리부위를 덮어달라 말하는 것이었다.
너무나 황당한 요구였지만 본인이 요구하니 이발사 아저씨는 너 마음대로 해라라는 식으로 요구대로 해 주었고, 그 형이 나갈 때 뒷머리를 보았는데 전혀 그 안쪽이 삭발된 듯 보이지 않았던 기억이 내게는 있다.
즉, 내 머리 또한 뒷머리쪽은 다 뽑혀 삭발된 듯 되더라도 윗머리만 풍성해진다면 덮여 결과적으로는 성공할 수 있으리라는 확신이 있었기에 그렇게 요구했고 그렇게 수술은 진행됐고, 수술은 끝마쳐졌다. 무모하리만큼 상식에서 벗어나는 방식의 모발이식이었지만 내 요구대로 진행해준 민철씨와 의료진들에게 다시 한번 감사드린다. 수술 후 숙소에 들어온 나는 빌라와 같은 민철씨의 숙소에서 휴식을 취하기 시작했다. 민철씨가 식사 때마다 준비해 준,
터키식 스프와 한국김치, 밥 등을 통해 나는 마치 집에서 지내는 듯한 편안한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집안의 모든 잡다한 일들은 민철씨가 다 도맡아 해 주었고, 나는 미안함을 느낄 정도로 가만히 있었다. 음식준비도, 설거지도 모두 민철씨가 도맡아 해주는 바람에 부담스럽기까지 했다. 그러다보니 나도 민철씨 몰래 이것저것 내가 도울 일을 찾아 민철씨 몰래 해버리기도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전기시설같은 것도 내가 전기를 만질 줄 알기 때문에 설치해 드릴 것이 많았었는데 장비도 도구도 재료도 없어서 아무것도 해 드리지 못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지내는 동안 군것질거리가 없어서 아쉬웠다. 하루 종일 같은 공간에 남자 둘이서 보내는 것이 그리 쉽지만은 않았다. 텔레비전도 나오지 않았다. 하긴 나오면 뭘하나. 알지도 못하는 터키어만 흘러 나올 테니 말이다. 그래도 나오면 <아리랑 채널>을 통해서 한국말이라도 듣고 싶었다. 챙겨갔던 컵라면 6개와 햇반 6개를 민철씨와 같이 나눠 먹다보니 3끼니 후엔 바닥이 나 버렸다. 이럴 줄 알았더라면 넉넉히 준비해 올걸 그랬다. 그래서 넌지시 한국음식을 살 수 있는 마트가 있는지 물었더니 있긴 있는데 비싸다고 했다. 하여튼 군것질거리가 없어 입이 무척 궁금했다. 수술 받으러 가실 분들은 부식거리를 많이 가져가셔야 지내기가 편할 것이다. 그것도 혼자 것만 챙겨가면 안되고 민철씨 것까지 2배로 챙겨가야 함께 나눠먹으며 배 따뜻하게 지낼 것이다. 같은 공간에 머무는데 혼자서만 먹을것을 빼서 먹을수는 없지 않은가. 머무는 시간을 평균 5일정도 잡고 하루 3끼*2인분*5일=30개 컵라면 30개, 햇반30개면 둘이 계속 한국 컵라면과 햇반 먹을 수 있고, 그 절반 가져가면 몇일은 터키 음식, 몇일은 한국 음식 먹으면 되고, 이것저것 귀찮으시면 아무것도 가져가시지 마시고 그냥 터키 음식만 먹다 오시면 된다.
민철씨는 젊은 사람인데도 꿈이 많았다. 그래서 나름 이야기도 많이 나누고 대화를 통해 공감되는 부분도 많이 찾게 되는 시간을 보내다보니 1차수술 때 처음 만났을 때보다는 더 친근하게 느껴졌다.
어느덧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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