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발이식은 최종 결과가 1년 후에나 최종 확인이 되기때문에 심고나서 관리가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수술 후 자신의 상태를 회원들에게 진단받고 수술 후 관리나 사례별 생착, 추가 보완 방법을 카운셀링 받는 공간입니다.
모발이식 관련 의사들도 케이스를 공부하기 위해 방문 하는 이곳, 전세계에서 가장많은 임상자료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수술을 준비중인 누군가에겐 가치를 표현할 수 없는 의미있는 기록을 남겨주신 모든 선배님들께 감사드립니다.
수술 후 포토자료를 남기는것은 '환자 힘'이기도하며 향후 예상할 수 없는 수술결과에 대한 강력한 보험입니다.
슬픈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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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술방식
비절개
이식량
8000모
(4000모낭)
수술경과일
40일
연령대
비공개
수술범위
O형
위의 사진들은 이번 터키를 통한 2차수술에 관한 사진들이다.
첫 번째 사진은~ 이번 2차수술을 떠나기 전까지의 내 머리의 변천사고
두 번째 사진은~ 수술 전 정수리 부위 탈모사진들을 다각면에서 찍어두었던 사진들이고
세 번째 사진은~ 터키에서 정수리 수술을 마친 직후 사진들이고
네 번째 사진은~ 무모하지만 내 주장대로 뒷머리를 최대한 뽑아 정수리 부위로 옮겨 심느라 그 누구보다도
심하게 비어버린 뒷머리 발취한 흔적사진들이다. 물론 이것은 순전히 내 주장대로 행해진 것이라
의료진들의 실수도 아니요, 나는 아주 만족한다. 그저 의료진들에게 감사드린다.
그리고 마지막 올려놓은 여러 사진들은 가장 최근까지의 내 정수리 모발이식 후 경과 사진들이다.
앞으로 당분간은 후기를 못 올릴 것 같아서 이렇게 마지막 사진까지 탈탈 털어서 올려두려 한다.
<누구나 겪는 일은 아니지만 누군가는 겪는 일이기에 더 큰 슬픔을 겪다..>
모발이식보다 더 힘들었던 귀국이었다.
그런데 이번 2차 터키 모발이식을 하러 간 여정에서 누구나 겪는 일은 아니지만 누군가는 겪을 수도 있는 일이 내게 일어났다. 그리고 그로 인해 어쩌면 모를 수도 있었던 것들을 느껴버려 더욱 가슴이 아프다.
내 글을 쭈욱 읽어왔던 사람들은 알겠지만 나는 아주 사소한 것들이지만 그 안에 담겨진 진심을 본다. 그 진심이 보이면 아무리 그 겉모습이 남이 볼 때 초라하더라도 개의치 않는다. 그 안에 담긴 진실이 그 모든 허물을 덮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와 반대로 모든 것이 완벽하고 화려하며 내게 전혀 손해가 없다 하더라도 그 안에 정성과 진심이 없다면 나는 그 모든 것들을 다 받았다 하더라도 만족하지 못한다.
이번 모발이식은......... 내게 그러했다.
나는 2월달에 갔던 1차 터키모발이식과--- 이번에 간 2차 터키 모발이식을 통해 내가 가장 원하던 모발이식을 했고 그 결과 또한 만족한다. 여행이 목적이 아니요, 모발이식이 주였던 나이기에 그것보다 더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
하지만 내게 또 하나의 선택이 있었다면 그것은 바로 <TEPE 모발이식센타>라는 에이전시를 택한 것이다.
만약 지금 다시 모발이식을 할 곳을 택하라면 나는 주저없이 <TEPE 모발이식센타>을 다시 선택할 것이다.
그만큼 테페는 내게 꿈도 희망도 심어준 곳이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이번 일은 더욱 가슴이 아프다.
사실 지금은 몸도 피곤하지만 마음이 더 피곤하다.
몸도 고생 중이다. 귀국하는 길에 너무 고생을 했기 때문인지 테페에서 2차 수술을 마치고 돌아온 지 몇일 되지 않아 <대상포진>이라는 병에 걸려 복부 쪽에 송곳으로 찌르는 듯한 심한 통증에 시달리고 있다. 면역이 약해지거나 스트레스 과로 등으로 오는 병이라는데 수많은 병에 걸려봤지만 이렇게 지독한 놈은 처음이다. 하지만 이럴수록 후기는 남겨둬야 할 것 같아서 집에서 남는 시간동안에 짬짬히 적어두었던 기록들을 올겨 적고자 한다.
...............
<귀국길>
드디어 귀국을 앞둔 날 저녁, 담당코디였던 멜템씨가 직접 숙소로 찾아와 샴푸를 해주고 머리를 말린 후 옷을 입고 평상시 폐가 좋지 않다던 멜템씨의 폐의 건강상태를 다시 한번 홍채를 통해 봐주었다. 그리고 나서 민철씨와 나는 멜템씨의 차를 타고 9시 넘은 시각 터키공항으로 향했다. 11시 50분경 비행기가 이륙하니 비행기가 뜨기까지는 아직은 2시간 가량이 남은 시각이었다. 탑승수속을 밟고 대합실에 기다리다보면 시간은 금방 흘러갈 것이다.....라는 생각으로 공항을 향해 가고 있었다. 공항으로 가는 길은 평상시와는 다르게 차가 엄청 막혔다. 우리나라로 치면 터키의 명절기간이라 그러하다 했다. 하지만 그래도 그렇게 늦지 않게 공항에 도착한 나는 민철씨의 안내를 따라 가방을 화물칸에 절차를 통해 싣고 탑승수속을 밟았다.
그런데............헉~!!!!!!!!!!!!!!!!!!!!!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 일어났다.
출국 수속을 밟고 탑승권을 받아 내게로 들고 오는 민철씨의 표정에는 뭔가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였다. 아니 지금 생각하면 당황한 것이 아니라 그저 생각지도 못한 일에 난처했었던 것 같다. 비행기 이륙시간이 갑자기 변동이 생겼다는 것이다. 아까 민철씨가 공항으로 떠나기 전, 숙소에서 공항 비행기편을 확인할 때는 아무런 변동이 없었는데 이곳 터키 공항에 와서 보니 비행기가 연착된걸로 변동되어 있다고 이야기했다. 한마디로 우리가 차로 숙소에서 공항으로 이동 중인 시간동안 이륙시간에 변동이 왔다는 것이다. 이런;;;;;; 변동사항은 다름 아니라 비행기가 뜨는 시간이 무려 6시간50분이나 연착되었다는 것이다. 원래 이륙시간보다 6시간 50분이나 더 지난 후에 비행기가 이륙한다는 것이었다. 연착 이유는 알지도 못했다.
그 당시에는 무슨 터키항공이 이런가 싶었다. 연착이 될꺼라면 적어도 몇시간 전에는 미리 통보를 해줘야지, 나처럼 공항에 오기 전 바로 확인했는데도 변동이 없었다는데 오는 도중 그 시간이 얼마 되지도 않는 사이에 갑자기 연착으로 바뀌는 항공이 대체 어디 있단 말인가. 그것도 기상이변 같은 이유라든지 이해할 수 있는 이유라도 있어야 하는데 날씨는 맑았다.
말이 쉽지 너무나도 긴 시간이었다. 원래 11시50분에 비행기가 뜨기로 되어 있었다. 그래서 이제 1시간 50분가량만 지나면 비행기에 올라 편안하게 잠자야지.. 하고 왔는데 6시간 50분이나 연착된다면
<1시간50분> + <6시간50분> = 총 8시간 40분을
내일 아침 7시까지 지금부터 기다려야 한다는 결론이 나왔다. 여덟시간 사십분 (8시간 40분) ? 헉~!!!!!!!!!!!!!!1
이미 한국 도착시간에 맞춰 용산역에서 집으로 내려갈 기차표도 끊어두었을 뿐 아니라 , 사실 이처럼 연착되어 비행기가 뜬다면 비행기가 인천공항에 도착했을 때는 한국시간으로 자정에 가까운 시간이라 캄캄한 한밤중이 되고 만다.
그 한밤중에 도착하게 되면 기차도 다 끊기게 되므로 서울에 아무런 연고도 없는 나로서는 서울역 근처에서 새벽이 될 때까지 첫기차 시간까지 또다시 6시간이나 기다려야할 상황에 봉착한 것이다. 게다가 요즘은 서울역 안에서 기다릴 수도 없기 때문에 서울역 밖으로 내쫒겨 기다려야 하는 상황을 피할수 없게 될 것이다.
발만 동동 굴렸다.
또한 집에서 기다리는 집사람도 이 사실을 모르니 어떻게든 알려야 하는데 핸드폰이 없는 나로서는 알릴 방법이 없었다. 핸드폰이 있는 사람들이야 상관없겠지만 나처럼 핸드폰이 없는 경우에는 공중전화를 통한 국제 전화라도 걸어야 하는데 사실 터키를 와보면 알지만 그게 말처럼 쉽게 공중전화를 이용하기 쉽게 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와 보면 안다. 그리고 집사람은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오면 받지 않기 때문에 나와 집사람만이 아는 신호로 전화를 해야만 받기 때문에 내가 직접 전화를 해야만 한다. 문제는 내게 핸드폰이 없다는 것이다. 너무나 당황스러웠다.
갑작스레 일어난 이 상황에 어떡해야할 지 몰라하던 나는 민철씨를 바라보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집에서 집사람이 걱정을 할텐데 어떡하면 좋겠느냐..../
나는 서울에 연고도 없는데 이렇게 연착이 된다면 서울에 자정 가까운 시간에 도착하게 되는데
미리 끊어둔 기차 표는 못쓰게 됐다 하더라도 어디에서 새벽까지 6시간동안 기다려야 할지 난감하다.....>
이같이 말하며 민철씨에게 내가 서울에 도착한 후의 일에 대한 난감한 점을 이야기하면 민철씨가 무엇인가 이 상황에 대해 적극적으로 대책을 마련해 줄꺼라 여겼기 때문이다. 한두시간도 아니고 무려 8시간에 가까운 시간동안 이제 수술을 마치고 귀국길에 오른 나같은 모발이식 환자를 그냥 놔두고 가지는 않겠지 하는 마음에서였다.
그런데...그런데,,, 민철씨는 아주 덤덤하게
< 이 공항에서 이륙시간까지 기다리셔야 되겠는데요?
그리고 서울에 도착하시면 고팀장님에게 연락을 해 보셔야 겠네요.>
라는 답변을 했다.
순간 나는 , 어?????????.....
하며 무척 당황스러웠다.
그건 바로 이 예상치 못한 비행기 연착 상황으로 인해 너무나도 당황하고 있는 나와는 달리 마치 이 상황이 자신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남의 일인것처럼 그저 덤덤하게 <이 공항에서 이륙시간까지 기다리셔야 되겠는데요?.> 라고 답하는 민철씨의 모습 때문이었다. 그것은 분명 내 입장에서는 섭섭한 부분이었다. 섭섭했다.
설사 민철씨는 그런 의도가 아니었다 말할지 몰라도 그 상황에서 나를 대하는 민철씨의 모습은 내게 너무나도 섭섭하게 다가왔다. 몇일동안이나 한 숙소에서 서로의 식사를 생각하고 걱정하며 챙겨줬던 사이 아니던가. 일과 손님의 입장을 떠나 일주일가량을 함께 지낸 사람인데 그 순간만큼은 너무나 차갑게 느껴졌다. 심지어 민철씨는 이 연착의 이유조차 알아봐주려는 모습도 없었다. 그렇지 않은가. 갑작스런 연착이라면 이유가 있을테니 통역이 안되는 나를 위해서라도 그곳 안내원들에게나 담당자들을 통해 내가 납득할 수 있는 이유라도 알아봐줘야 내가 당황하지 않을것 아닌가. 나는 터키어를 모르지 않은가???????? 하지만 민철씨는 그저 덤덤하게 나더러 이 추운 공항에서 그냥 기다리셔야 되겠는데요...라고 쉽게 이야기했다.
나는 분명 수술을 받은 환자였다.
두 발로 걸을 수 있어 남들에게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보이겠지만 삭발을 하고 마취를 하고 두피를 뚫고, 수술용 메스로 구멍을 내고 피범벅으로 수술을 마치고 이제 겨우 몇일 쉬고서도 혹 심겨진 머리가 잘 자라나지 않으면 어쩌나 싶어 너무 춥지도, 너무 뜨겁지도 않게 안정을 취해야할 환자 말이다. 그냥 이 먼 터키에 긴 머리카락으로 놀러 왔다가 다시 돌아가는 그런 일반인이 아니였었다. 그냥 놀러온 여행이었다면 하루를 공항에서 기다리라고 해도 섭섭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당황스러웠다. 섭섭했다. 서운했다.
그래서 수술받은지 한달이 지난 지금도 마음이 아프다. 지금 이 갑작스런 상황이 해결되고 안되고를 떠나서 같이 걱정해주고 같이 방법을 찾아주려고 하는 모습은 보여줘야 되지 않는가. 그렇지 않은가. 내가 지금 이 먼 타국에 와서 의지할 곳이 어디 있는가. 말 한마디 통하지 않는 이 터키에 그래도 용기를 내서 온 것은 그래도 이 먼 곳까지 수술을 하러 오는 우리같은 환자들을 출국부터 귀국까지 안전하게 안내하고 돌봐줄 민철씨같은 분들이 있어서 아닌가. 지금 이 상황. 민철씨 입장에서도 달리 방법이 없는 건 안다. 비행기가 연착된걸 민철씨 입장에서도 어쩌란 말인가. 물론 민철씨 입장에서도 아무런 책임이 없는, 순전히 갑작스런 공항 측의 돌발상황이지만 아직 회복되지 않고 휴식을 취해야하는 환자인 내 입장에서는 앞으로 이 추운 공항에서 혼자 남겨져 몇 분도 아니고 장장 8시간이 넘는 시간동안 추위와 싸우며 견뎌내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 얼마나 당황스럽겠는가. 그런데 민철씨는 나의 이런 마음과는 다르게 그저 나를 사무적인 일로 대하는듯 보였다. 적어도 그 상황에서 내가 느낀 것은 그러했다.
그 순간, 내게 비친 민철씨의 모습은 내게 닥친 갑작스런 이 상황 가운데 나와 잠시라도 함께 머무르려하기보다는 이제 나에 대한 의무는 다했으니 어서 빨리 이 공항에서 벗어나 자신의 일상으로 돌아가려는 사람처럼 보였다.
그 누가 어떤 변명을 한다 하더라도 적어도 내가 그 순간 느낀 느낌은 그러했다는 것이다. 말하지 않아도 느껴지는 것이 있다. 그건 진실이라는 것으로, 보이지 않지만 모든 것을 알게 해주는 능력이다. 난 지금껏 그 누구를 대해도 진실로 대하며 살아왔다. 그래서 그 누구보다 보이지 않는 마음을 보고 찾으려 애쓴다. 그런 내게 그날 저녁 민철씨의 마음은 그렇게 보였다.
그래서 그런 민철씨의 그런 태도는 나를 더 당황스럽게 만들었다.
한편으로는 민철씨의 그런 태도를 이해할 수도 있다.
터키에 머무는 동안 민철씨는 내 곁에서 약도 챙겨주고,식사도 준비해주고, 내 말벗이 되어준 사람이었다. 그렇게 나를 위해 나름 고생하다가 이제 나만 출국시키고 나면 혼자 편안히 쉴 수 있게 된 상황에 갑자기 이런 연착상황이 발생하였으니 민철씨 입장에서도 어떻게보면 나보다 더 난처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민철씨로서는 사실 자신의 의무는 다한 셈이었다. 공항으로 출발하기 전까지도 내 비행기 스케쥴을 확인까지 하며 연착되지 않았음을 확인까지 하고 공항으로 향했다고 말했다. 만약 민철씨가 사전에 그런 확인조차 안하고 공항으로 향했다면 그 책임으로 다시 숙소로 나를 데리고 돌아가 잠을 자게 한 후, 내일 새벽 비행기가 이륙할 시간에 다시 공항으로 데려다줘야 마땅하지만 비행기가 연착된 상황이 벌어진 것은, 우리가 함께 공항으로 출발하고 나서 우리가 공항에 도착하는 사이에 벌어진 일이었기에 민철씨의 책임은 더더욱 없다. 그 어떤 다른 에이전시들에게 부탁하는 것은 나의 이런 글을 읽고 그들은 마치 이같은 상황에서 다르게 환자를 대했을꺼라는 말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지금것 내가 접한 다른 에이전시들도 내가 아는 바로는 다를 바 없을 꺼라는 확신이니깐.
마음 같아서는 민철씨에게
<내일아침 7시에 비행기가 이륙하니깐 지금은 함께 숙소에 돌아갔다가 내일 아침 다시 공항에 오면 안될까요?>
라는 말이 목까지 올라왔지만
<공항에서 기다리셔야겠는데요?>라고 말하고 있는 민철씨를 바라보면서 차마 그런 말을 할 마음이 생기질 않았다.
어쨌든 그런 민철씨에게
<그러면 고대표님에게 지금 제 상황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도록 지금 전화라도 한통 연결해 주세요>
라고 부탁드렸다. 고대표님에게 미리 부탁드릴 것이 있어서였다.
그것은 내가 한국에 도착하면 바로 짐으로 내려가는 기차는 아니더라도 가장 빠른 시간 내에 집으로 내려갈 수 있는 기차표를 온라인상으로라도 예매해 주셨으면 하는 것이었다. 그러면 내가 한국에 도착해 그 기차예매내역만 고팀장님께 확인해 그 기차에 올라 집으로 내려간 후, 바로 고팀장님에게 기차삯은 송금해드리고자 했던 것이다.
그정도 편의는 봐주실 수 있겠지 싶어서 드린 부탁이었다. 하지만 그런 이유를 채 말하기도 전에 민철씨는 ...
그런데, 또 헉~!!!
민철씨는 전화기를 들고 머뭇거리면서 <지금 고대표님이 주무시고 계실텐데....> 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순간 나는 너무너무 당황스러웠다. 아니 그것보다도 부탁하려던 내가 오히려 미안해졌다.
말문이 막혔다.
민철씨는 덧붙여서 <제가 따로 고대표님에게는 이 상황을 말씀드려놓을테니 서울 가시면 고대표님하고 통화를 해 보세요> 라고 말했다... 말도 나오지 않았다.
지금 바로 이 상황이 바로 해결해야할 문제인데 이미 모든 상황이 끝나버린 후 ,서울에 가서 고대표님과 무슨 내용을 통화하라고 하는건지...... 사실 나는 이미 아무런 소리도 귀에 들어오지가 않았다.
기분이 이상했다.
방금까지 서로 같은 식탁 위에서 밥을 먹고 이야기했던 사람인데 지금 내 앞에 서 있는 민철씨는 내가 아는 민철씨가 아닌것 같았다 민철씨에게 <민철씨~! 민철씨 핸드폰으로 집사람에게 전화 한통 하면 안되나요>라는 말도 할 수 없었다.
나는 이래저래 다 체념하고 민철씨에게
<밖에서 멜템씨가 차에서 기다리니 어서 가세요.........>라고 말했다.
그러자 민철씨는 해맑게 웃으면서 <그럼, 안녕히 가세요~! 그리고 돌아가시면 연락 주세요~!>라고 황급히 공항을 빠져나갔다.
그런 민철씨를 한참을 멍하니~ 쳐다보았다.
그러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나는 그 차가운 공항에 홀로 남겨져 있었다.
너무 추웠다. 머리를 삭발해서인지 그 추위는 상상을 초월했다. 숙소에서 나올 때는 모자를 쓰고 나왔지만 혹 이 먼 터키까지 와서 심은 이식모가 죽을까봐 모자를 벗었기에 더 추웠다. 그냥 여행 온 것이었다면 그럭저럭 공항에서 8시간동안 시간을 보낼 수도 있었겠지만, 수술을 마치고 머리는 완전히 삭발된 상태에서 채취할 때 남은 상처와 심은 자리의 붓기가 아직 사라지지 않은 상태에서였는지 병실도 아닌 차가운 새벽 공항 대합실에서 8시간을 홀로 보내야 한다는 것은 그 추위가 공포스러울 정도로 엄습했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 견딜 수 없었던 건, 사람들의 시선이었다. 지나가는 사람들은 모두 나를 한번씩은 쳐다보고 지나갔다 .
그 순간~! 예전 사람들이 탈모인 나를 향해 멸시하듯 쳐다보던 시선들이 다시 살아났다.
순간, 잠시나마 민철씨가 야속했다. 내게 다시 이런 시선을 느끼게 만든 것 같아서 말이다. 이런 시선이 싫어서 이 먼 터키까지 온 것 아닌가. 사람들의 그런 시선들을 더 이상 받고 싶지 않아서 , 더 이상은 그런 고통 속에서 살고 싶지 않아서 어렵지만 용기를 내어 수술대에 올랐던 것 아닌가. 그런데...그런데...이먼 터키에 와서 그것도, 수술까지 마치고 돌아가는 이 순간 그런 시선을 느껴야 하다니... 자꾸만 아무런 죄도 없는 민철씨와 이 상황을 전혀 모르고 있는 고대표님까지도 야속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그런 마음 가지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그래도 내게 희망을 준 테페 아니던가.... 정말 안간힘을 쓰며 마음을 돌이켰더니 조금 기분이 나아졌다.
하지만 나는 사람들의 그런 시선이 계속되자 더이상은 그 자리에 있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 사람들을 한번씩 노려보고 자리에서 박차고 일어났다. 사람들이 다 싫었다. 그리고선 여기저기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하지만 어디든지 사람들이 있었다. 그리고 추웠다......
문득 집에서 이 상황을 모른 채, 왜 오지 않지? 하며 걱정할 집사람이 생각이 났다. 그래서 어떻게든 집에 전화를 하려고 방법을 찾았지만, 찾을 수가 없었다. 공중전화를 찾긴 찾았는데, 그 전화는 카드로 해야 한다는데 그 카드를 파는 곳에는 이미 사람이 없었다. 안내하는 공항직원에게 말을 걸어도 말이 통하지를 않았다. 핸드폰을 좀 빌려달라고 했더니 엉뚱한 금액의 돈을 요구했다. (참고로 나는 핸드폰이 없다) 오히려 그들은 내 머리를 보며 자기들끼리 뒤에서 히히덕거렸다. 민철씨가 옆에 있으면 통역이라도 해 줄텐데 .... 순간 또 서운했다. 그래서...그냥 집에 전화하는 것을 포기했다.
그러고 한참을 공항 여기저기를 헤맸더니 배가 고팠다. 먹을 것을 먹으려고 공항 내 식당들을 둘러보니 유일하게 먹을만한 게 패스트푸드점과 빵집이었는데 그것마저도 문을 닫으려고 의자를 올리고 있어 시도도 못해보고 체념했다.
그렇게 몇시간이 지났을까. 그런데 이상한 게 있었다.
1차수술 때는 공항 여기저기에 나같이 한국으로 돌아가려는 한국 사람들이 상당히 많이 눈에 띄였었는데, 이상하게 이 넓은 공항을 다 돌아다녀도 한국 사람이 하나도 없는 것이었다. <이상하다.. 나처럼 아무것도 모르고 공항에 왔다가 연착된 것을 알고 어쩔 수 없이 이 공항에 있는 사람이 한명이라도 있을텐데...> 하며 이리저리 아무리 돌아다녀도 결국 한국 사람은 없었다. 한국 사람인것 처럼 보이는 이들도 막상 가까이 가서보면 일본사람들과 중국사람들이었다.
무엇보다 나를 힘들게 했던 것은 추위와 잠이었다. 새벽 2시. 갑자기 지금쯤 숙소에서 따뜻하게 자고 있을 민철씨가 야속하게 느껴졌다. 아까 염치불구하고 같이 숙소로 돌아가 자고 다시 오면 안되느냐고 매달려라도 볼껄 그랬다.
체면 차리다가 얼어 죽을 것 같았다.
어디를 가도 따뜻한 곳이 없었다. 추우니 자꾸 소변이 마려웠다. 그러다보니 화장실만 수십 번을 들락거렸다.
그렇게 사람들이 별로 왕래하지 않는 구석 음지의 차가운 벤치에서 몸을 오그리고 잠을 청하던 나는 문득 좋은 생각이 들었다. 화 장 실~!
그렇다. 이 공항 내에서 가장 따뜻한 곳은 바로 화장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아까 그토록 줄기차게 드나들었던 화장실을 향했다. 그리고 비어있는 화장실 문을 열고 들어가 문을 잠그고 변기 뚜껑을 내리고 그 위에 앉았다. 그곳은 천국이었다...........
아까 민철씨에게 섭섭했던 마음이 한순간 녹아내렸다. 역시 인간이란 배 따뜻하고 등 따뜻하면 만사형통이라더니, 이제 등은 따뜻하니 마음이 편했다. 물론, 옆 화장실에서 수없이 많은 이들이 들락날락 하며 자신들의 배설물을 뿜어내고 물로 내려 보내는 소리와 냄새를 견뎌야 했지만 그 순간 그런 것은 상관없었다. 따뜻하면 됐지.............. 신발도 벗고 양반자세로 다리도 올리고 편안하게 잠을 청했다. 그렇게 자다 깨다를 반복하며 몇 시간이나 지났을까? 밖에 한번 나가보고 싶었다. 그래서 신발을 신고 밖을 나가니 어느새 출국수속이 시작되고 있었다.
벌써 새벽 6시가 다 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또 한가지 이상한 것은 어제 새벽에는 한명도 안 보이던 한국 사람들이 그제서야 여기 저기 공항 출구를 통해 한국 사람들이 하나 둘 들어오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어? 이 사람들은 왜 어제저녁 안보였었지? 이렇게 많은 한국사람들이 나랑 같이 비행기를 탈껀데 단 한명도 보이질 않았다니... 이상하다...이상하다... 어쨌든 그렇게 나는 출국수속을 마치고 비행기에 오를 수 있었다.
비행기에 올라 자리에 앉아 안정을 찾은 나는 그제서야 잠시 생각에 잠겼다.
사실 이번 수술은 개인적으로 내심 테페에 대해 미안함이 컷던 수술이었다. 테페 측에 큰 득도 되지 않는 그런 수술이었기 때문에 더욱 그러했다..........고팀장님과 민철씨에게는 아무런 득도 드리지 못했던 수술.
테페.... 고팀장님.....민철씨...................................
그런데 자꾸만 .........서러운 마음이 들었다.............
그렇게 연착된 비행기를 타고 한국에 도착한 시간은 한국시간으로 거의 자정에 가까운 시간이었고 이미 모든 지하철과 기차까지 끊겨 나는 오도가도 못하는 상황이었다. 자정이 되니 서울역 경비원들이 들어와 역에 있는 사람들을 하나 둘 밖으로 내보내기 시작했다. 나 또한 그 사람들과 함께 떠밀려 역 밖으로 나왔다. 갈 곳이 없었다.
지금은 자정인데 이 추운 곳에서 내일 새벽 6시까지 기다릴수는 없었다. 비행기 안에서 받은 비스켓 하나를 꺼내 입에 물었다. 그리고 무작정 걷기 시작했다. 그리고 혹 돌아오는 길을 잃을까봐 자꾸 뒤돌아보며 길을 익혔다.
이곳은 터키 공항에서의 추위하고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추웠다. 이번에는 실내도 아닌 아예 바깥 아닌가.
가만히 서 있자니 조심스러웠다. 모르는 곳이다 보니 사람들이 더 경계가 되고 더 조심스러웠다. 아니, 두려웠다 해야 맞다.
아주머니들이 하나 둘 달라붙어 자꾸 좋은 데가 있으니 가자고 했다. 좋은 아가씨들이 있다고 말이다. 그래서 용기를 내어 그 중 한 분에게 <어머니~! 이 근처에 pc방이 어디 있어요?> 했더니 친절하게 <저기 가면 있어, 저기로 가봐> 하며 친절히 가르쳐 주었다. 아마 그분들은 누가 <어머니~!>라고 불러준 적이 없어서인지 내가 건네는 <어머니>라는 말이 고맙고 좋았나보다
그렇게 나는 pc방을 찾아들어가 거기에서 5시간가량을 보내고 다시 역으로 돌아와 새벽기차에 오를 수 있었다. 물론 주말이라서 기차표가 없어 입석이었고 기차에서 6시간동안 서서 와야만 했다. 그냥 서 있기가 너무 힘들어 객차 사이의 빈 통로 바닥에 쪼그리고 앉아 잠을 청했지만 덜컹거리는 반동들 때문에 잠을 잘수가 없었다.
그렇게 나는 집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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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나는 심한 대상포진에 시달리고 있다. 아마 귀국하는 날 너무 힘들었나 보다. 마치 송곳으로 찌르는 듯 몸이 아프다. 대상포진의 증상이라고 한다. 말로만 듣던 대상포진에 걸리고 나니 여간 힘든게 아니다. 과로나 신경성, 면역이 떨어지면 걸린다고 하더니 내 경우에는 딱 맞게 걸린것 같다.
이번 2차 수술도 잘 되었다.
나름 만족한다. 그 결과는 1년정도가 지나봐야 알 수 있겠지만 신경쓰지 않는다. 의료진들도, 나로서도 최선을 다했으니 그 결과 또한 그냥 받아들일 것이다. 나의 탈모인생에 종지부를 찍게 해준 테페에 대한 감사함은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왠지 모르게 마음이 슬프다.
만약, 만약에 말이다... 만약 다시 터키에 가서 모발이식 수술을 받는다면 어디서 받겠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두말없이 <TEPE 모발이식센타>를 선택할 것이다. 내가 지금 느끼는 이 슬픔은 수술에 대한 불만족으로 느끼는 슬픔이 아니다. 내게 있어 테페에서의 수술은 만족도로 친다면 100% 이상이다
하지만 모든 에이전시(모발이식 중개업)들에게 부탁드리고 싶은 것이 있다. 우리 탈모인들이 해외에서 수술을 하고자 할 때는 국내수술과는 다르게 그 모든 과정이 단순히 수술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여긴다.
해외수술의 특성상 가는 과정 + 머무는 과정 + 수술하는 과정 + 돌아오는 과정
이 모든 과정이 필요하다.
이 중 수술하는 과정을 제외한 가고 오며 머무는 모든 과정은 에이전시들의 몫이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우리들이 지불하는 수술비에 포함되어 있는 에이전시들에게 지불하는 부분은 무의미하지 않은가. 그 모든 과정들이 만족스러울 때 수술은 성공적이라 할 수 있다. 어느 하나라도 부족하다면 그것은 팥이 빠진 붕어빵과 같다.
하지만 내 입장에서는 이 부분에 대해 이번만큼은 할 말이 없다.
왜냐면 이번 수술을 추진함에 있어 에이전시들에게 지불되어야할 몫도 한푼 드리지 못하고 치러진 비교적 저렴하게 받고 돌아온 수술인데 감사는 못할망정 오히려 <가는과정, 머무는 과정, 오는과정> 가운데 생긴 , 그것도 에이전시측에서 일부로 그런것도 아니고 공항측에서 흔히 일어나는 연착이라는 갑작스런 상황에서 생긴 힘들었던 일들에 대해 이야기한다고 하는것 자체가 오만불손한 행동이 아닌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 탈모인들이 바라는 건~!
그 무엇보다도 <아주 잘된 수술>이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하지만 그것과 더불어 얻고 싶은 게 있다.
그것은 다름아닌 사람들이 우리들을 탈모인들이 아니라 다른 이들과 평범하게 바라봐줬으면 하는 아주 작은 소망이다. 그 첫걸음은 바로 다름아닌 에이전시들이 우리들을 도와 내디뎌줘야 한다. 탈모인에서 비탈모인으로 거듭나고자 애를 쓰는 우리 탈모인들에게 지금껏 받아보지 못했던 따뜻한 시선과 위로의 말과 편안한 마음을 지니도록 배려해주셔야 한다.
따뜻한 말.. 생각지도 못했던 배려.... 이것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마법 지팡이다.
TEPE 의 고팀장님이나 민철씨는 내게 처음 보여주셨던 모습처럼 나의 이런 불평섞인 말조차도 겸허하게 받아들여
앞으로 더 나은 TEPE 의 모습으로 가꿔가는데 밑거름을 삼을 분들이라는 것을 알기에 감히 이런 글을 올린다.
그만큼 나의 TEPE에 대한 신뢰는 높다.
내가 지금 가슴이 슬픈 건 ~~내 마음을 움직였던 테페의 마법을 이번만큼은 보지 못하고 돌아와서이다.
그래서 가슴이 아프다.
당분간 후기는 올리지 않을 것이다.
누구를 위한 후기가 아니라 나를 위한 후기를 써내려온 나였기에
내 마음이 이토록 아픈 가운데 어떻게 후기를 쓸 수 있겠는가....
몸이 아프면 마음으로 일으키겠지만, 마음이 아프니 무엇으로 일으키겠는가...
사실 이번 일은 나처럼 모발이식을 받으러 해외로 갔다가 돌아오는 날
모든 모발이식 환자들이 겪게 되는 흔한 일은 아니다.
어쩌면 모발이식을 마치고 귀국하는 환자들에게 아주 드물게 일어나는 일일지도 모르기에 나같은 경험을 한 사람들 또한 극히 적으리라 본다. 그러기에 어쩌면 이번 일은 나만이 겪은 일일 수 있기에 대다모 회원들도, 에이전시 관계자 분들도 이런 부분의 고통을 호소하는 나를 유별나다고 여길지 모른다.
하지만 그것 아는가?
아무도~!!!!!!!!! 모르지만 적어도 그 자리에서 홀로 그 추위를 견뎌내야 했던 나는
내가 겪었던 고통의 긴 시간동안 다시는 겪고 싶지 않았던 사람들의 시선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어 한 자리에 머물지 못하고 결국은 홀로 아무도 보지 못하는 화장실 한켠에 숨어들어 그곳에서 얼었던 몸을 녹이고 있었어야 했다는 것을...
우리 탈모인들은 이 세상을 살면서 사람들의 이런 차갑고 비아냥거리는 시선을 피해
비양심적인 다수의 의사들의 농간에, 과장된 발모제의 효력에, 온갖 발모 샴푸와 영양제의 달콤한 유혹에,
바르지 않으면 빠지지만 바르는 동안만큼은 탈모를 막아준다고 하는 갖은 약들의 홍수 속에,
가발 뒤에서 소심한 듯 움츠리며 누구의 머리였는지도 모르는 수많은 거짓된 머리카락들이 심겨진 망사 하나를 바람과 빗줄기 속에서 혹시나 날아가고 떨어질까 손가락으로 부여잡으며 사람들이 없는 곳으로 도망하고 있는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다. 그러면서도 이를 지켜보는 이들 앞에 고개라도 들고 싶어서 말이다.
그런데도 그들은 귀신같이 우리에게서 무엇으로 가리고 살아가는지 잘도 찾아내는 세상이다.
그런 사람들의 시선을 다시 느낄 수밖에 없었던 바로 터키의 그 자리에서
나는 또다시 세상으로부터 도망하고 싶었다.
아무도 겪지 않았다고 무시해서도 안되며, 누구나 그런 상황에서는 그럴 수밖에 있느냐라고 방관해서도 안된다
왜냐면 그렇게 남의 일인 듯 보였던 일들이 적어도 탈모인인 우리들에게는 다름아닌 바로 내 모습이니깐. .........
아쉬움과 슬픔이 많이 남은 2차 수술이었다.
특히 슬픔이/...............
왠지 모를 슬픔이 자꾸만 가슴을 때린다.......
아마 그날 터키의 공항이 너무 추웠나보다...............
너무 너무 추웠었나 보다...내 마음이 시리도록...................
모든 수술사례는 해당병원의 지원이나 편의를 제공 받고 특정병원에 유리하게 작성 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습니다. 모든 성형수술은 예상치 못한 부작용의 가능성이 있습니다. 참고 자료로만 활용바랍니다. 본 게시물의 법적 권리와 책임은 게시자 본인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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