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발이식은 최종 결과가 1년 후에나 최종 확인이 되기때문에 심고나서 관리가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수술 후 자신의 상태를 회원들에게 진단받고 수술 후 관리나 사례별 생착, 추가 보완 방법을 카운셀링 받는 공간입니다.
모발이식 관련 의사들도 케이스를 공부하기 위해 방문 하는 이곳, 전세계에서 가장많은 임상자료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수술을 준비중인 누군가에겐 가치를 표현할 수 없는 의미있는 기록을 남겨주신 모든 선배님들께 감사드립니다.
수술 후 포토자료를 남기는것은 '환자 힘'이기도하며 향후 예상할 수 없는 수술결과에 대한 강력한 보험입니다.
(TEPE 테페 모발이식센타) 수술을 마치고 귀국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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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술방식
비절개
이식량
1000모
(500모낭)
수술경과일
9일
연령대
비공개
수술범위
A형
<수술후 9일째>
<수술후9일째>
드디어 귀국하는 날의 아침이 열렸다. 오늘은 별다른 스케쥴 없이 방에서 편히 쉬기만 하면 된다고 했다.
마침 어제 수술받으시고자 오신 <모자좀벗자>라는 아이디로 대다모내에서 활동하시는 분이 오늘 어제에 걸쳐 두 번째 수술이 있는 날이라서 수술실에 내려갔더니 이미 수술 진행 중이셨다. 이 분은 정말 특별하다. 나보다도 머리숱이 많으신데 어제는 얼마나 머리카락들이 자신이 이제껏 살아온 머리에서 떠나려하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는지 펀칭을 해 놓고도 데리고 나오지 못해 결국 그대로 남겨둔 머리카락이 아마 1000모정도는 될 것이다. 정말 정말 질긴 두피를 가지고 계셨다. 그래서 그런지 오늘은 간호사 분들도 반대편 머리카락들이 방심한 틈을 타 공격했는지 어제보다 1000모가량을 더 채취한 것 같았다. 어제는 많은 모발이 나오지 않아 조바심을 내시더니 오늘은 제법 많은 모발이 채취되셨는지 간호사분들도 본인도 안심하시는 것 같았다. 점심시간이 되어 함께 점심을 먹고 오후수술이 진행되는 동안에도 함께 좀 있다가 쉬려고 다시 방으로 돌아왔다.
방으로 돌아와 잠시 눈을 붙인 후 깨어보니 어느덧 귀국비행기를 타기 위해 터키공항으로 갈 시간에 가까워져 있었다. 그렇게 방에서 빈둥대며 쉬다가 터키에서의 하루가 다 가버렸다. 아~! 벌써 4일이 지나가버리다니, 시간이 정말 빠르구나 싶었다. 약간의 아쉬움도 있었지만 마음은 어서 빨리 귀국하고 싶었다. 그러다가 오후 늦게쯤 짐을 하나하나 챙기기 시작했고, 저녁6시쯤 나보다 뒤에 오신분의 수술경과를 보러 수술실로 내려가니 아직도 다들 한참 수술 중이었다. 오늘은 오후 2시 넘어서야 수술을 시작한 탓에 아마 내가 떠나고 나서도 수술은 밤늦게까지 행해질 것 같았다. 그곳에 1시간가량 더 머물러 있는데 한 간호사분이 내게로 와 머리에 로션을 발라주면서 조금 있다가 샴푸하면서 피딱지를 조금 씻어낼꺼라 했다. 나는 왜 로션을 바르나 했는데 로션을 미리 발라두고 1시간정도 지나면 굳었던 피응어리들이 로션으로 인해 탱탱 불어서 나중 샴푸할 때 잘 씻겨지는 원리라는 것을 뒤늦게 알았다. 샴푸하는 시간을 기다리는 동안 방에 올라가 짐을 다 챙겨 내려와 공항으로 떠날 채비를 하였다. 그리고 1시간후 쯤 수술방 옆 방으로 가서 샴푸로 머리를 헹궈주셨다. 간호사분이 주의사항을 알려주시는데, 말인즉, 앞으로 모발이 잘 자라나기 위해서는 가발은 절대 사용금지며, 모자도 안되며, 만약 그렇지 않으면 애써 심은 모낭이 죽어버리거나 모발이 자라나지 않을 수 있다 하였다. 그 말에는 전적으로 동의하면서도 난감했다. 그것들은 절대 지켜야할 사항임을 알기에 이걸 어떡하지 하면서 짧은시간 고민에 빠졌다. 나는 서비스업에 종사하기에 지금 이 수술한 모습 그대로는 장사를 할 수 없는 처지였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장사를 하지 않을수도 없고.... 참 난감했다.
하지만 궁하면 뚫린다고, 마침 내 눈에 간호사분들이 착용한 일회용 망사모자가 눈에 띄었다. 그래서 아하~! 저 일회용 망사모자를 쓰면 통풍도 잘 될테니 일단 수술한 모습은 손님들에게 보이지 않을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에 다급하게 손짓하며 지금 쓰고 있는 망사모자(일회용)를 몇 개 구해달라 부탁했다. 잠시 후 한 간호사분이 마치 하얀 새우깡같은 것 3개를 가지고 오더니 내게 주었다. 이게 뭔가 하고 보았더니 그것이 바로 내가 방금 부탁한 망사모자란다. 펼치기 전에는 그런 모습이었다가 펼치면 망사모자가 되는 것이란다. 그리고 더불어 붕대도 2개 부탁했다. 이제 준비가 다 된것 같았다. 집에 가서 그 망사모자를 쓰고 그 위에 붕대를 감고 가게에 나가 사람들이 왜 머리가 그러느냐고 이상하게 물으면 그냥 머리가 다쳐서 치료중이라고 둘러대기로 한 것이다.. 정말 이때 절실히 깨달은 것은 사업을 하든지, 직장을 다니던지 수술을 하기 전보다 더 걱정되는 것은 수술 후라는 것이다. 그 수술 후에도 예전과 다름없이 자신의 사업체로 복귀하기 위해서 넘어야할 산들을 생각하면 쉽게 삭발까지 해가며 모발이식을 감행하는 것이 얼마나 결정하기 힘든 것인가 깨달았다. 하지만 내가 그런 어려움을 감수하고서라도 간절히 얻고자 하는 것이 있다면, 이 모든 것들은 내가 당연히 감당해야 할 것들이었다. 또 어떤 식으로든 감당하고자 하는 마음이 생겨났다.
일단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까지만 이곳 터키에 오기 전에 미리 준비해왔던 모자를 쓰고 돌아가는 것은 괜찮죠 하며 의료진들의 이해를 구하고 모자를 쓴채 모두에게 아쉬운 작별인사를 하고 TEPE 담당자인 민철씨와 함께 공항으로 가 비행기를 탈 수속을 밟고 나혼자 안으로 들어갔다. 돌아오는 길이라선지 한국 사람들이 많았다. 비행기가 이륙하기 전까지 대합실에서 오고가는 많은 사람들 사이에 앉아 있으면서 마치 꿈을 꾸고 있는 듯 마음이 이상했다. 이곳에 뜻을 두고 날아온 것이 엊그제 같은데 이제는 그 계획했던 수술을 마치고 돌아가다니.....인천공항 대기실에서 창밖을 보며 흘렸던 눈물이 지금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는 터키 공항에서는 기대에 부푼 가슴으로 바뀌어 있었다. 잠시 후, 비행기에 사람들이 오르기 시작했고 비행기에 오른 나는 자리에 앉아 마치 익숙한 방에 들어선 것처럼 이곳에 올 때 비행기 안에서 취했던 것들을 하나하나 능숙한 손놀림으로 준비했다. 수건을 돌돌 말아 목 뒤에 바치고, 수건 하나를 더 청해 내 무릎에 덮고, 안전벨트를 메고 내 앞좌석 뒤에 장착된 텔레비전을 켜 가는동안 볼 영화를 골라두는 등 누가보면 마치 여러번 해외여행을 다니는 사람처럼 움직여졌다. 그러면서 속으로는 웃음이 났다.
.....참나, 내가 언제 비행기나 제대로 타 봤다고, 이륙준비는 잘하네..
스스로도 기가 막힌지 스스로를 향해 가소롭다는듯이 웃어졌다.ㅎㅎㅎ......
올 때는 생각보다 비행기 안이 지루하지 않았다. 먹을 것이 나오기 전에 미리 먹을것을 생각해 두었다가 요구하니 먹을 것을 남기는 일도 없었다. 비행기도 탈만 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비행기는 나를 태우고 터키로 날아갈 때보다 1시간 30분이나 더 빠르게 날아 한국에 10시간만에 도착했다. 아~! 드디어 돌아왔다... 정말 시간이 꿈같이 흘러갔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 긴 시간을 보내고 내가 바로 이곳 한국에 돌아와 서 있다는 것이었다. 기적이었다. 그리고 희망에 부푸는 순간이었다.
입국수속을 받고 짐을 찾는 시간이 길어져 용산역으로 가는 리무진에 오르는 시간을 놓쳐버렸다. 그러는 바람에 미리 집으로 내려가려고 예약해서 끊어놓았던 기차를 놓쳐버린 것이다. 저녁6시30분 가량 늦게 도착한 리무진을 타고 용산역으로 향하는 내 마음은 너무나 평온했다. 내 마음이 그래서인지 차창 밖으로 스치는 야경들 도한 정답게 여겨졌다. 용산역에 도착하니 8분차이로 내가 표를 끊어놓았던 기차는 이미 출발한 후였다. 다시 다음 기차편을 찾아 표를 끊고서는 집으로 전화하기 위해 공중전화박스를 찾아다녔다. 전에도 말했지만 나는 핸드폰이 없어서 말이다. 용산역 한 귀퉁이 편에서 공중전화박스를 찾은 나는 동전 2개를 넣고 집에 전화를 걸었다. 저녁 8시경이었다. 집사람이 전화를 받았다. 한국에 도착했다고 말하는 내 목소리를 듣는 집사람의 목소리도 가라앉은 듯 흥분돼 있었다. 곧 내려가겠다 하고 전화를 끊은 나는 먼저 놓쳐버린 기차 때문에 앞으로도 2시간가량 역에서 기차를 기다려야 했다. 너무 배가 고파 역 밖으로 나가니 역 앞에서 청년 3명 정도가 교회에서 나왔는지 노방찬양(복음성가를 길거리에서 키타치며 부르며 복음을 전파하는 것)이 한창이었다. 먹을 것을 사서 돌아오는 길에 그들에게도 간단한 먹을거리를 사다주고 가려는 마음이 생겨 서둘러 포장마차를 찾았다. 가까운 길거리 포장마차에서 김밥 한줄을 사고 아까 보았던 청년들에게도 먹을 것을 사 주려고 두리번거리는데 나를 둘러싼 사람들의 눈길이 이상했다. 아마 내 머리 뒤편에 모발이식으로 인한 흉터자국이 특이(?)해선지 이상해서인지 자꾸만 소리없이 흘끔거리며 보아댔다. 참 터키와는 다른 시선들이었다. 순간 모발이식을 하기 전 내 탈모를 향해 보내던 사람들의 시선을 회피했던 내 자아가 살아나 서둘러 그 자리를 떠났다. 아까까지 좋았던 기분이 삽식간에 가라앉아 버렸다. 하지만 전과는 달랐다. 내게는 희망이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그러지만;;;;;; 그렇다. 1년 후에는 , 그리고 2년 후에는....그리고 5년 후에는 ... 입술 사이에 살며시 미소가 떠올랐다. 그런 생각에 잠겨 길을 걷다보니 어느덧 아까 노래 부르던 청년들이 있는 곳까지 다다라 있었다. 괜히 그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조금만 더 참고 그 청년들에게 건넬 먹을 것을 사가지고 올껄 하는 후회가 밀려들었지만 발길을 돌리기에는 너무 늦었었다. 그렇다고 내가 사온 김밥 한줄을 내 놓기에는 내가 너무 배가 고팠다. 이기심인 줄 알면서도 그냥 그렇게 그들 앞을 미안한 마음으로 지나쳤다.
역으로 돌아온 나는 사가지고 온 김밥을 먹으려고 자리를 찾는데 다들 자리를 차지하여 앉을 자리가 없었다. 그러다가 한 자리가 남아 얼른 가서 앉았는데, 이런;;;; 내 뒤에 앉은 이들의 시선이 자꾸 내 머리로 향하는 것을 알고는 민망해 자리를 일어나 그냥 기차 안에서 김밥을 먹기로 하고 역의 가장 가장자리 사람들의 시선이 덜 닿는 곳만 찾아 돌아다녔다. 어쩌면 첫 번째 기차를 놓치고 이렇게 역에 잠시나마 머물게 된 것도 내게는 무엇인가 깨닫게 되는 시간인 듯 싶어 감사했다. 지금 내가 머무는 이 역에서의 기억을 잊지 않겠다. 지금 나를 향한 저들의 마지막 시선을 잊지 않겠다. 어쩌면 차후 나의 달라질 모습은 지금 내가 받은 이 기억이 있음으로 더욱 값지고 행복한 것으로 피어날 것이기 때문이다. 드디어 기차가 당도했고 기차에 올라 자리에 앉은 나는 내 자리 옆 아래에서 따스하게 올라오는 히터 기운에 몸을 기대고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이제 됐구나...............
또 눈물이 흘렀다.... 남들은 웃지만 나는 울었다. 아무도 모르지만 나는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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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 역에 도착했을 대는 새벽1시50분이었다. 다들 잠든 시간 차가운 새벽에 택시를 잡아타고 집으로 향했다. 캄캄한 골목을 접어들어 집 앞에 도착한 나는 잠시 어두운 골목을 밝히는 가로등을 보았다. 눈부시게 밝은 가로등.내 마음도 그러했다. 대문을 열고 집에 들어서니 그 새벽인데도 집사람은 잠자다가 대문 여는 소리에 잠을 깨어 나를 맞아주었다. 집사람은 내게 이번 수술을 할 수 있도록 마음으로 지원해준 사람이다. 집사람은 내게 <그러면 앞으로 당신 머리 위에 기적이 일어나는거야? 하며 되려 내 마음에 용기를 실어준 사람이다. 그리고 이렇게 아픔과 힘겨움을 참아가면서 그 먼 타국에까지 날아가 모발이식을 하고 온 나를 대단한 사람으로 보아주는 사랑스러운 사람이다. 그 누구도 절대 쉽게 하지 못할 것을 하고자 마음먹은 것만으로도 나를 높이 쳐주는 집사람인 것이다.
이번 수술은 내게 큰 의미를 가지고 있다. 긴 탈모인생동안 그 어디를 가도 나는 즐겁지 않았고. 항상 긴장되어 있었고 신경도 예민해져 있었으며 , 사람들의 시선이 두려웠다. 그 긴 시간동안 나의 내면에서 나를 괴롭히던 혹을 떼어낸 것이다. 감사했다. 그 긴 시간동안 그 가느다란 머리카락 하나하나를 웃음을 잃지 않고 심어주신 분들 모두에게 감사드린다.
힘들게 탈모인생동안 견뎌왔던 만큼, 이 분들을 기억하고 감사드릴 것이다.
내게 그 무엇보다도 희망을 가지게끔 해주신 이 분들에게 언제까지나 마음으로 감사할 것이다.
더불어 국내에서 출국 전, 나를 위로하고 용기를 북돋워주셨던 TEPE 고팀장님과
현지의 TEPE 민철군과
멘텔씨와 나와 함께 해준 두 간호사분께도 감사드린다.
지금은 집으로 돌아와 평상시와 다름없는 생활을 하고 있다. 나혼자 가게를 운영하기 때문에 처음에는 터키로 수술하러 가는 것 자체를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더 솔직히 말하자면 수술후 어떻게 삭발한 채로 가게를 하며 손님들을 대할지 걱정되었기 때문이다. 그냥 모자를 쓰거나 머리가 자라날 동안 가발을 쓰면 안될까 의료진에게 의뢰했었지만 절대 가발과 모자는 안된다고 했다. 나 또한 이번만큼은 반드시 득모하리라는 결심이었기에 그 말에 따르고 싶었다.
궁하면 뚫린다더니 기발한 생각이 떠올랐다. 역시 부딪치면 다 되는 것을 알았다. 하루정도 집에 쉬면서 고민하던 중에 시장에 나가 망사모자를 샀다. 일반 야구모자 같은 것인데 윗머리부분은 다 망사로 뚫려있어서 환풍이 기가 막히게 되기 때문에 모자를 썻다 하더라도 모자를 안 쓴 것과 다름없는 효과를 준다. 그리고 손님들에게는 사실대로 말하기가 민망해서 둘러대기를
<<<식당에 간 일이 있는데 갑자기 뒷좌석에서 펑하고 부탄가스가 터져 머리쪽이 화상을 입어
삭발한 채 연고치료중이라고 ,부득이 모자를 써서 죄송하다>>>
고 둘러댔더니 이게 웬일? 다들 걱정해주시면서 이해해주시는 것이었다. 요즘은 모자를 쓰고 가게에 나가 서 있는 것이 아무렇지도 않다. 그리고 모자 앞창이 너무 오리입처럼 튀어나왔길래 집에서 일단 모자 앞창의 겉천을 뜯어 그 속에 있는 속판을 꺼내 길이를 짧게 가위로 자른 후 다시 모자 천 속에 넣어 바느질하였더니 아주 앞창이 아담하고 귀여운 망사모자가 탄생하게 되었다. 나중 언제 이 모자도 사진으로 올리겠다. 나와 같은 고민으로 모발이식 후 사회생활에 두려움을 느끼는 이들에게 나의 이 모발이식 후 착용망사모자 경험이 용기가 되어드리고 싶다.
나는 내가 내 소중한 모발을 잘 심어달라고 맡긴 TEPE모발이식센타를 신뢰한다.
자신이 선택한 의료진을 신뢰하지 못한다면 어떻게 자신의 소중한 모발을 덥석 맡길 수 있겠는가. 물론 많은 이들이 결과가 나와 봐야 알지 그 업체가 신뢰가 갈만한지, 그럴만한 실력도 없는지 어떻게 아느냐고 하는데 다 맞는 말이다. 아직도 흘러야할 시간이 1년이나 남았고 1년이 지난 후에야 그 신뢰성에 대해서는 논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아는 한 가지는 모발이식은 그 모발이식을 행하는 의료진의 실력에 따라 그 결과의 성패가 나뉘어지지만 그보다 앞서는 것은 수술에 임하는 의료진들의 마음이라는 것이다. 의술이 아닌 인술을 행하고자 하는 마음이 담겨질 때 비로서 그 실력은 빛을 발하게 되는 것이다. 손 끝에서 나오는 수술이지만 정작 환자를 앞에 두고 그 환자의 환부를 향해 그 손가락을 능수능란하게 움직이는 의료진의 마음이 돈을 벌기 위한 행위가 아닌 환자를 위하는 마음으로 바로 서 있을 때 그 수술을 받는 이들의 결과 또한 좋을 것은 자명한 일이다. 국내는 절제술을 주로 행하며 일단 다량의 모낭과 함께 두피의 일부분을 벗겨내듯 잘라내어 여러 간호사들이 잘게 모발별로 잘게 잘라 준비한 후 식모기로 심다보니 모발을 나누려 자르는 과정에서 자주 모낭의 일부까지 잘려 그 모발이 식모기로 심겨진 경우 나중 모발이 자라지도 않을 뿐더러 염증까지 유발시키고 있기에 생착율이 저조하다. 하지만 절제술이 아닌 모발 하나하나를 펀칭작업을 통해 모낭과 함께 뽑아 일일이 슬릿 작업을 통해 심을 경우 생착율은 말로 할 수 없을정도로 높아지며 이식 전 모낭의 손상 또한 드문 경우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외수술을 통해서 간혹 실패사례가 드러나고 있다.
절제술이 아니기에 모낭이 다칠 확률도 낮은데 실패한다 ?
타인의 모발도 아닌 자신의 모발이기에 자신의 피부조직이 거부함으로 실패하는 것은 더더욱 아닐텐데 말이다.
그렇다면 그것은 모낭을 두피로부터 축출한 후, 다시 두피에 이식하기 전 거즈에 나열해 둘 때 오염되어 모낭이 이식 전부터 손상되어 있었거나, 모낭을 두피에 심을 때 자칫 핀셋으로 모낭 부위를 집어 모낭이 손상되었든지, 수술 후에 자신의 건강문제로 이식한 부위로의 혈액순환이 원활하지 못해 이식한 모낭들이 살아나지 못하고 죽게 되었다든지, 이식 후 자신의 모발을 관리함에 있어 청결하지 못해 모낭이 막히거나 오염되어 모발이 죽어갔다든지 하는 여러 경우가 있을 것이다. 아무리 해외에서 수술을 받았다 하더라도 그 결과만큼은 여러 경우의 수로 인하여 사람에 따라 다르게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다. 그 무엇이라도 그럴 수 있다는 것이지, 다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한마디로 아무리 같은 곳에서 수술한 환자들이라 하더라도 그 결과는 다 다르다는 것이다. 그러기에 많은 환자를 다루었다는 식의 수술횟수의 숫자적으로 우월한 것이 그 의료진의 수술을 받은 사람들의 결과가지 보장해주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또한 그것이 신뢰할 수 있는 기준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 또한 당연한 말이다. 그러기에 모발이식은 그 모발이식을 행하는 의료진과 업체의 본질적인 자세가 가장 중요한 성패를 좌우한다 할 것이다.
앞으로 매일같이 변화하는 내 머리카락을 이 포토후기에 계속 기재할 것이다. 처음 몇 달동안은 지금 빼곡이 심겨진 이 모발들이 다 빠질 것이다. 1차수술을 통해 이 과정을 다 알기에 처음 이식한 모발이 다 빠져버린다하더라도 오히려 기뻐할 것이다. 그래야 그 심겨진 머리카락이 빠진 바로 그 자리에 이제 새로운 모발이 자라날 테니깐. 그렇다 지금 우리에게 심겨진 모발은 이빨로 치면 유아치이다. 이 유아치가 빠지고 나면 영구치가 나올 것이다. 그러니 유아치가 빠졌다고 속상할 필요가 없다. 그러기에 아주 자연스럽게 후기 사진을 지속적으로 올릴 것이다. 초반기 탈락되는 것과 다시 나기 시작하여 득모하는 전 과정을 순차적으로 날짜에 상관없이 계속 올릴 생각이다. 1년 정도가 지났을 때, 대다모 회원 중 누가 됐던지, 내가 올린 글만 보더라도 머리카락이 처음 심겨진 모습에서 빠졌다가 다시 나는 과정을 여과없이 그대로 누구라도 볼 수 있도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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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발이식 포토&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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