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술방식 비절개
- 이식량 6000모 (3000모낭)
- 수술경과 700일
- 연령대 30대중
모발이식은 최종 결과가 1년 후에나 최종 확인이 되기때문에 심고나서 관리가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수술 후 자신의 상태를 회원들에게 진단받고 수술 후 관리나 사례별 생착, 추가 보완 방법을 카운셀링 받는 공간입니다.
모발이식 관련 의사들도 케이스를 공부하기 위해 방문 하는 이곳, 전세계에서 가장많은 임상자료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수술을 준비중인 누군가에겐 가치를 표현할 수 없는 의미있는 기록을 남겨주신 모든 선배님들께 감사드립니다.
수술 후 포토자료를 남기는것은 '환자 힘'이기도하며 향후 예상할 수 없는 수술결과에 대한 강력한 보험입니다.
야수의심장. 국제결혼하러 터키갔다가, 모발이식한놈 - 2년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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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개월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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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보통의 하남자와 다르게 겁이 별로 없다.
한판 사는 인생 맛있고 찰지게 살아야한다는, 개떡같은 철학을 가지고 남들이 안해보는건 다해보고 살아왔다.
평생 등산도 안해본 놈이 히말라야를 가겠다며 9일동안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를 가는가 하며,
다들 더럽다며 손사레치는 ‘인도’ 여행을 한달씩 두번이나 땡기고 왔다.
아마 10년전에 유튜버를 했다면, 빠니보틀이 되었을지도 모르르는, 난 진정한 ’무장색 패기‘를 지닌 놈이라 자부하며 살았다.
하지만 나의 호기로운 패기는 발끝부터 머리끝까지 차오르는 테스토스테론에게도 영향을 주었는지, 20살이 되던 시점부터 급격히 까맣고 기다란 머리털을 앗아갔다.
그때부터 내 몸속에 피나스테리드라는 약을 퍼나르고 언제나 머리는 미녹시딜을 쳐발랐다. 마치 약에 절여진 인간으로 10년 넘게 산 기분이었다.
그렇게 32세. 보통의 하남자와 다르게 나는 터키여자와 결혼하기 위해 비행기를 탔다.
사진 한장 보고 여신의 강림이라며 일주일 뒤 출발하는 비행기 티켓을 질러버리며, 역시 스스로 상남자라며 만족감에 휩싸였다.
문제는, 그 여신과 5번을 만났지만, 난 대화가 통하지 않는 상대에게 사랑을 느낄 수 없는 하남자에 불과했다.
하지만 다시금 어떻게든 무장색 패기를 두르며 한 짓이, 근처에서 제일 유명한 병원으로 달려가 바로 당일 탈모수술을 한 것이었다. (하남자들아. 고민할 시간에 행동하는 것이 진정한 상남자의 인생이다)
6000모, 그냥 태어났을때 머리가 없던 부분까지 다 심어달라고 했다. 터래기. 그깟 터래기 몇개만 더 있으면 기분이 좋을것 같아 그냥 이마 절반을 머리카락으로 덮었다.
어차피 빠지면 민머리로 살아갈 생각이고, 기껏해야 300만원 되는 돈으로 인생 망하지 않는다는 각오같은 것이 곁들여지면 이런 용기로 살 수 있는 것이다.
아무튼 그렇게 머리의 뒷판과 앞판에 따끔한 마취를 하고, 몇가닥 옮겨심는 과정을 보다가 잠들었다. 그리고 반대로 돌아눕고 또 잠들었다.
그렇게 모발이식이 끝난다. 별 감흥은 없고 그냥 누가봐도 민머리 조폭같은 느낌이다. 그렇게 40도가 넘는 한여름의 터키여행을 일주일 하고, 그냥 돌아오기 아쉬워 부다페스트에서 광란의 파티를 즐기고 한국에 돌아왔다.
어느덧 2년이 지나가는데, 이제는 내가 모발이식을 한건지 아니면 그냥 원래 내 터래기가 이만큼 있던것인지 나 스스로도 구분을 하지못한다.
작년, 머리카락의 풍부함에서 나오는 자신감과 상남자의 본능은 나를 오사카로 이끌었다. 그리고 지금의 여자친구인 아야짱을 얻었다. 국제결혼도 남자라면 한번쯤 해보면 좋을것 같아 한국으로 오라고 꼬시지만, 사실 우리는 아직 대화도 파파고로 하고있다.
아무튼 필자가 말하는 바를 잘 생각해보길 바란다. 용기가 바꿔주는 남자의 인생에 대해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내가 첫 글을 쓰고, 적어도 50명은 나에게 연락이 왔다. 모두 전화 한통 한통 해가면서 금전적 이득같은것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용기를 북돋아 드리려 애썼다.
하지만 그 어느 누구도 결국 터키로 가지 않았다. 한국에서라도 모발이식을 했더라면 당당하게 살아가셨을 분들이 절반은 됬을텐데, 그조차도 결과는 알 수 없다.
아무튼 영상이랍시고 유튜브도 찍어두었으니 참고하길 바란다.
https://youtu.be/bBOaqedlke0?si=oCD49H6YNsplijmN
그리고 나에게 연락을 한다면, 나의 시간과 정성을 투자하는 것을 감안하여 정말 직접 가서 머리를 심을 간절한 사람들만 연락하길 부탁한다.
한판 사는 인생 맛있고 찰지게 살아야한다는, 개떡같은 철학을 가지고 남들이 안해보는건 다해보고 살아왔다.
평생 등산도 안해본 놈이 히말라야를 가겠다며 9일동안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를 가는가 하며,
다들 더럽다며 손사레치는 ‘인도’ 여행을 한달씩 두번이나 땡기고 왔다.
아마 10년전에 유튜버를 했다면, 빠니보틀이 되었을지도 모르르는, 난 진정한 ’무장색 패기‘를 지닌 놈이라 자부하며 살았다.
하지만 나의 호기로운 패기는 발끝부터 머리끝까지 차오르는 테스토스테론에게도 영향을 주었는지, 20살이 되던 시점부터 급격히 까맣고 기다란 머리털을 앗아갔다.
그때부터 내 몸속에 피나스테리드라는 약을 퍼나르고 언제나 머리는 미녹시딜을 쳐발랐다. 마치 약에 절여진 인간으로 10년 넘게 산 기분이었다.
그렇게 32세. 보통의 하남자와 다르게 나는 터키여자와 결혼하기 위해 비행기를 탔다.
사진 한장 보고 여신의 강림이라며 일주일 뒤 출발하는 비행기 티켓을 질러버리며, 역시 스스로 상남자라며 만족감에 휩싸였다.
문제는, 그 여신과 5번을 만났지만, 난 대화가 통하지 않는 상대에게 사랑을 느낄 수 없는 하남자에 불과했다.
하지만 다시금 어떻게든 무장색 패기를 두르며 한 짓이, 근처에서 제일 유명한 병원으로 달려가 바로 당일 탈모수술을 한 것이었다. (하남자들아. 고민할 시간에 행동하는 것이 진정한 상남자의 인생이다)
6000모, 그냥 태어났을때 머리가 없던 부분까지 다 심어달라고 했다. 터래기. 그깟 터래기 몇개만 더 있으면 기분이 좋을것 같아 그냥 이마 절반을 머리카락으로 덮었다.
어차피 빠지면 민머리로 살아갈 생각이고, 기껏해야 300만원 되는 돈으로 인생 망하지 않는다는 각오같은 것이 곁들여지면 이런 용기로 살 수 있는 것이다.
아무튼 그렇게 머리의 뒷판과 앞판에 따끔한 마취를 하고, 몇가닥 옮겨심는 과정을 보다가 잠들었다. 그리고 반대로 돌아눕고 또 잠들었다.
그렇게 모발이식이 끝난다. 별 감흥은 없고 그냥 누가봐도 민머리 조폭같은 느낌이다. 그렇게 40도가 넘는 한여름의 터키여행을 일주일 하고, 그냥 돌아오기 아쉬워 부다페스트에서 광란의 파티를 즐기고 한국에 돌아왔다.
어느덧 2년이 지나가는데, 이제는 내가 모발이식을 한건지 아니면 그냥 원래 내 터래기가 이만큼 있던것인지 나 스스로도 구분을 하지못한다.
작년, 머리카락의 풍부함에서 나오는 자신감과 상남자의 본능은 나를 오사카로 이끌었다. 그리고 지금의 여자친구인 아야짱을 얻었다. 국제결혼도 남자라면 한번쯤 해보면 좋을것 같아 한국으로 오라고 꼬시지만, 사실 우리는 아직 대화도 파파고로 하고있다.
아무튼 필자가 말하는 바를 잘 생각해보길 바란다. 용기가 바꿔주는 남자의 인생에 대해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내가 첫 글을 쓰고, 적어도 50명은 나에게 연락이 왔다. 모두 전화 한통 한통 해가면서 금전적 이득같은것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용기를 북돋아 드리려 애썼다.
하지만 그 어느 누구도 결국 터키로 가지 않았다. 한국에서라도 모발이식을 했더라면 당당하게 살아가셨을 분들이 절반은 됬을텐데, 그조차도 결과는 알 수 없다.
아무튼 영상이랍시고 유튜브도 찍어두었으니 참고하길 바란다.
https://youtu.be/bBOaqedlke0?si=oCD49H6YNsplijmN
그리고 나에게 연락을 한다면, 나의 시간과 정성을 투자하는 것을 감안하여 정말 직접 가서 머리를 심을 간절한 사람들만 연락하길 부탁한다.
모발이식 포토후기
모발이식 포토&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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