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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uck탈모] 탈모, 벌써 일년

  • 8년 전

  • 1,060
4
원래 저는 머리숱이 풍성한 편이었습니다.
머릿발이 세서 좀 가라앉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기도 했구요.
아버지가 탈모시지만 탈모로 진지하게 고민한 적은 없었네요.
염색은 하지 않았지만 파마나 매직은 자주하는 편이었습니다.
왁스를 많이 사용하기도 했는데, 머리를 감지 않고 그대로 잔 적도 제법 있었던 것 같습니다.

올해 초, 아마 1월 즈음이었을 겁니다.
무심코 머리를 말리다가 뭔가 이상한 기분이 들더군요.
앞머리가 갈라진 것 같은 느낌.
그때 조심스레 앞머리를 들춰봤었지요.
왼편을 치켜 올렸을때는 아무런 이상이 없었습니다.
오른편을 들춰보니 누가 제 머리를 파먹었더군요.
그때부터 탈모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나봅니다.

처음엔 인정을 하기 어려웠습니다.
탈모는 나이 지긋한 분들이나 겪는 노화의 과정이라고 생각했으니까요.
머리가 빠지고 있다는 사실도 인정하기 어렵지만, 나이가 들었다는 걸 인정하기 어려웠나봅니다.
그래서인지, 나중에 독이 되어 돌아올 자기최면에 의지하고 말았습니다.
'스타일링의 문제일거야.', '가르마를 바꾸면 괜찮겠지.', '얼마전에 매직을 한 게 풀리면서 이렇게 됐나 보다!'

그렇게 스스로를 속이며 지내다, sns의 옛 셀카를 보게 되었네요.
숱이 더벅한 것이, 앞머리는 갈라지지도 않고 빡빡한 지난 날의 나.
바로 거울을 보았지요. 분명 머리가 빠진 것입니다.
사실 알고 있었지만 애써 외면해오던 진실을 스스로 목격하고만 것입니다.
'빠졌구나!'하고 인정하고 나니, 한동안 '머리가 다 벗겨서 두피에 바람이 통하는 듯'한 신경증을 앓았습니다.
며칠동안 마음을 추스리니 현실을 좀먹던 중증탈모의 백일몽은 가셨습니다.

가까운 피부과를 찾아가 진료를 받아보아야겠다고 마음 먹었습니다.
마음 먹은 것과 달리 머리의 일로 병원을 찾는 것은 대단히 큰 각오를 필요로 하는 일이었습니다.
병원의 문턱을 넘으면 접수대의 간호사가 물을 것입니다.
"어떻게 오셨나요?"
저는 이 말을 할 용기가 없었습니다.
"탈모.. 탈모 때문에 왔습니다."
분명 간호사는 아무렇지도 않을 것입니다. 나는 그에게 그날 내원한 수많은 이들 중 하나요, 그의 업무의 일부에 불과할 것입니다.
하지만 용기가 필요한 것이 어찌 간호사의 문제일까요?
줄어든 머리숱과 함께 작아진 나의 자존감이 가장 큰 문제이겠지요.
이처럼 가소로운 시뮬레이션을 하며 병원가기를 차일피일 미뤘습니다.

샤워를 하다가 희뿌연 수증기 사이로 거울에 비치는 내 앞머리를 보았습니다.
어릴적 샴푸로 솜사탕같은 거품을 피우며 장난쳤던 그 머리는 이제 없었습니다.
물먹여 뒤로 젖힌 앞머리는 천갈래, 만갈래 갈라져있고 가닥가닥 얇았습니다.
이젠 용기가 필요했습니다.

어렵게 병원의 문턱을 넘어 접수대로 나아갔습니다.
"탈모 때문에 왔는데요."
그토록 망설였던 순간인데, 정말 허무하게도 별 일 없었습니다.
"접수 되셨구요. 잠시 기다려주세요."
무미건조한, 사무적인 태도의 간호사는 모니터만 응시하고 있었습니다.
아무도 비웃지 않았습니다. 아무도 수근거리지도 않았구요.
분명 내 사뮬레이션엔 없던 것입니다.
세상은 내 머리 사정에 관심도 없는데 나만 나를 옥죄이고, 괴롭히고 있었던 것입니다.

진료시간은 금방 지나갔습니다.
"두피 온도가 높으니 관리를 좀 할 필요가 있겠다."
"얇은 모발이 꽤 있지만 정상범주에서 크게 벗어난 것은 아니다."
"정수리에 비었다고 느끼는 부분은 미녹시딜을 사용해보라. 처방전없이 구입이 가능하다."
"먹는 약은 원하면 처방해주겠다. 단, 1년 정도는 꾸준히 복용해야 효과가 있다."
접수대에서 진료비 오천원을 치렀습니다. 결국 경구약은 처방받지 않았습니다.
다만 약국에 들러 마이녹실 1통을 사서 버스에 올랐습니다.

마이녹실을 바른지 한달이 넘었습니다. 당연한 일이지만, 아직 가시적 성과는 없습니다.
계절이 내 남은 머리를 다 가져 가려하는지 머리가 무던히도 빠집니다.
저는 이제 다른 병원에 가서 한번 더 진료를 받으려 합니다.
이번엔 먹는 약도 꼭 받아올 참입니다.

...
새벽에 두서 없이 쓴 글입니다. 제가 뭔 소릴한 건지 저도 모르겠네요...ㅋ;
각설하고, 혹시 아직도 병원 가기를 망설이는 분이 계신다면 제 글이 조금이나마 용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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