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술 좀 마셨습니다.
어젠 친구가 마스터로 있는 카페모임이었습니다. 저도 처음으로 그들을 만나러 가는 것이었죠.
중요한게 남자는 거의 없고 여자만 무쟈게 많은 모임이란 것입니다.
비율로 따지자면 2:8정도의 비율이랄까.
그렇기에 가면서 내내 신경쓰인게 사실입니다.
지하철의 까만 차창으로 비치는 내 머리.. 분명 정상인거 같은데 양쪽 귀퉁이가 허옇던 것이 왜 이렇게 짜증이 나고 열받던지......
애들이 내 머릴 보면 뭐라고 생각할까? 내친구 선배냐고 물어보면 어쩌지?
지하철타고 가는 시간 40분 내내 그 걱정뿐이었습니다.
젠장..... 사람의 첫인상의 90%이상은 외모로 결정되잖아요. 그리고 그 외모의 많은부분을 차지하는것이 머리카락이고.....
그러니 처음 첫인상을 심어주게되는 나로썬 휑한 m자 탈모가 엄청난 걱정이었죠.
처음에 자리 앉아서도 대충 통성명 하고 그랬지만 어딘가 모르게 자꾸 자신이 없어지더군요.
당연히 머리 때문이죠. 자리도 바로 불빛아래 -.-
그런데 술이란 놈이 거하게 들어오다보니까 그런 생각이 사라지더군요.
정말 신기했어요. 술을 먹으면 먹을수록 머리에 대한 걱정과 부담을 잠시나마 잊게 되었으니까요.
나중엔 정말 아무런 부담없이 떠들고 있는 날 볼 수 있었죠.
아무도 신경을 안쓰는거 같았어요. 오직 나한테 술 먹이는거만 관심있고, 머리엔 신경 안쓰더군요.
아래는 어떤 애와 이야기한 내용입니다.
"너 전에 잠깐 보지 않았었어?"
-"그치. 종로에서 15분간 잠깐?? 앗. 그런데 넌 그게 기억나냐?"
"기억나지. 너 그날 정장입고 왔었잖아."
-"아~ 맞다 그날나이트 가는 날이었거든."
"ㅋㅋㅋ . 정장 잘받던데. 지금은 몸이 더 커진거 같다."
-"하하. 그래? 내가 좀 살이 찐거 같어?"
"아니 살찐게 아니고, 어깨 넓어져서 몸매가 더 남자다워졌다고." (어머니~~ 3개월 운동한 보람이 여기서 느껴졌어요.)
-"고맙다."
"그런데 왜 머리는 안길러?"
여기서 전 식은땀이 주르륵 흘러내렸습니다. 뭐라고 해야하나, 뭐라고 해야하나. 솔직히 말해야하나. 안돼 그렇게 솔직해질 필요는 없어.
그래서 전 한마디로 웃어 넘겼죠.
-"으응.^^ 난 머리 기르기 싫어!!"
그러니까 별 태클없이 미소로 넘겨주더군요.
웃고 떠들고, 웃고 떠들고...... 알콜의 힘이었던가, 나의 말빨도 평소보다 훨씬 셌답니다.
머리에 대한 걱정이 그렇게라도 잠시 사라지니 너무나 행복했습니다.
그 중에 우리동네 사는 여자애도 하나 있었어요. 그래서 같이 좌석버스를 타고 같이 왔죠. 술 잘 하지도 못하는데 너무 무리해서 먹었더니 졸리더군요. 하품을 연속으로 하니깐 졸리면 자라면서 내 목을 자신의 어깨로 끌어당기더군요. 반항할새도 없이 그렇게 그녀의 목에 파묻혀버렸죠. 샴푸한 머리카락내음....... 진짜 정신이 몽롱해져 오더라고요.
밖엔 비가 왔어요. 그애가 우산을 안가져와서 같이 버스에서 내려서 내가 집까지 데려다주게 되었어요. 이때부터 가관이었습니다. 한 우산 아래 꼭 붙어서 걷다보니 어느새 내가 뒤에서 오른손으론 우산을 들고 왼팔로 그애를 꼭 껴안고 걷고 있더라고요.
"추워?" "아아니~~~" "ㅋㅋ 그런데 너 왜 떨어?" "떨다니.....내가?" "지금 떨잖아~ ㅋㅋ" "그러냐?" "여기다 손 넣어^^."
그러더니 자신의 점퍼소매를 늘어뜨려 내 손을 그 안에 넣더군요. 그리고 그안에서 손을 꼭 잡아주더군요. 그러고선 서로 나지막하게 얘기하고 키득거리고 낄낄거리고 웃으면서 밤거리를 걸었죠.
[따뜻했습니다.. ㅠㅠ 진짜... 나 머리 빠지고 나서.. 다시는 이런 일은 없을 줄 알았는데..
머릿결,..향기,...좁은어깨,...가녀린 몸,
이젠 여자란 존재는 나한테 떠났다고, 나한테 가망없다고, 그렇게 생각했는데..
함께 붙어있으니 이렇게 따뜻하구나.]
그렇게 서로 찰싹 붙어서 그녀의 아파트 앞까지 갔습니다. 그애는 버스비로 쓰라면서 내 손에 1000원을 쥐어주더니, 버스가 오니까 잘가라면서 뛰어들어갔습니다.
푹 자고 오늘아침에 일어나 생각해보니까 웃음만 나오네요.
어제 처음본 앤데, 같이 그러고 다니다니..
남들이 봤으면 완전 오해했겠고, 만약 모임의 친구가 봤다면 이건 진짜 스캔들인데..
그래도 기분은 좋았어요.
술을 마셔서 서로 좀 과감해진거라지만, 그래도 나에대한 인상이 좋았다는 거니까요. 그러니까 그렇게 해줬던 것일테니까요. 그냥 고마울뿐이랍니다. ^^
마지막에 가서 내용이 좀 이상(?)해졌는데 제가 말하고픈것은 이겁니다.
다른 분들도 용기를 얻었으면 해요. 남들이 보는것과 내가 보는것은 틀리니까요. 내가 보기엔 내 모습이 너무나 초라하고 볼품없고 타인에게 안좋은 인상만 줄 것 같지만... 날 좋게 봐주는 다른사람들은 그렇게 생각 안해줄 수도 있잖아요?
너무 큰 기대는 하면 안되지만, 너무 비관적일 필요도 없는거 같아요.
모두들 힘냅시다. 아직 우린 젊잖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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