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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잡담] 지난 시간들을 정리해 보자면

  • 7년 전

  • 1,383
6
30대 후반의 탈모 18년차 남자사람입니다.
그냥 오랜만에 카페 들어온 김에 어느 덧 옛 생각이 나서 글 써보게 되네요.

처음 탈모인가 인지했던 것은 19살 정도였던 것으로 기억납니다.
지금도 그럴지는 모르겠지만, 그땐 두발단속이 심해서 고등학생때까지 늘 스포츠 형태로 자르고 다녔는데
이마 양 끝이.. M자도 크로캅처럼 멋있게 직선으로 올라간게 아니라, 양 귀퉁이를 쥐가 파먹은 것처럼 숱이
없는 것입니다.

그 무렵만 해도 같이 놀던 남자여자 여섯 일곱이서 늘 일년에 한번씩은 여행을 갔는데요.
한번은 강원도 어디 계곡으로 여행을 갔던 적이 있습니다. 미친듯이 물놀이 하고 사진도 찍고 했는데요.
나중에 돌아온 후 사진을 인화해서 봤는데 말입니다. (디카 자체가 없던 시절입니다.)
진짜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 두려움.
다 같이 계곡에서 물놀이를 했는데, 다른 친구들은 다 멋지고 단정하게 머리카락이 젖어있는데
저만 두피가 훤히 다 비치면서 이마는 양 귀퉁이는 위로 올라가다 못해 아예 뒤로 넘어가려 하는겁니다.

이렇게 20대도 채 되기 전에 탈모에 대한 두려움을 얻게 되었습니다.
교복을 입은 채로 강남의 클리닉 (피앤씨 인터내셔널, 스벤슨) 같은데 가서 상담도 받아보고
당시에 탈모쪽으로 좀 유명했던 황성주원장도 만나서 상담도 받아보고 했습니다.
(물론 지금생각하면 도움되는 내용 전혀 없습니다. 다 인터넷에 치면 나오는 이야기, 고민을 거듭하다
여기저기 정보를 모아본 여러분이라면 누구나 다 알만한 그런 이야기들뿐이었네요.)
다존활기찬이라고 무슨 먹는 탈모약. 획기적인 발명 어쩌고 하는 신문광고에 혹해서 전화까지 해봤고요.
(이 역시 지금 생각해보면 터무니 없는 과대광고였네요.)

20살

대학생이 되고선 아예 탈모에 대한 스트레스가 극에 달해서
미용실도 가지 않고, 제 스스로 바리깡을 사서 머리를 6mm로 밀고 다녔습니다.

이때 성격도 참 많이 버렸습니다. 원래는 타고난 순둥이였는데 말이죠.
오랜만에 만난 부모님 친구분들이나 친척어른들은 아무 생각없이
"쟤 벌써부터 머리 빠지네."
"야~ 넌 어떻게 머리 벗겨지는 것도 니 아빠랑 꼭 닮았냐." 이런 소리를 했었고,
전 그럴때마다 눈을 부라리고 안 그래도 그것때문에 스트레스 받으니 그만 하시라며 대들었던 기억이 나네요.
농담 안하고 그땐 진짜 탈모 문제로 놀리면 사람도 죽일 수 있을거란 객기를 품고 살았습니다.


22살.

아예 강박증 수준입니다. 걸어다니는 사람들 머리숱 밖에 안 보입니다.
남자고 여자고 사람이 지나가면 얼굴이랑 몸매를 보는게 아니라 머리숱만 봅니다.
박수홍, 최민용, 설기현, 박지성, 홍경민 이런 사람들이 세상에서 제일 부러웠고요.
누가 날보고 연예인 누굴 닮았다 했을때, 아무리 못생기고 추남으로 유명한 연예인을 대더라도
머리숱 많은 사람이었으면, 그저 고맙게 느껴졌었습니다.
박지성이나 설기현을 닮았다 하면 너무 고맙고 기분이 좋았지만,
주드로를 닮았다면 두들겨 패고 싶었달까요.ㅎㅎ

사람이 아니라 지나가는 개만 봐도 털밖에 안 보였습니다.
한번은 친구녀석 코카스파니엘을 같이 산책시키다가, 제가 넋놓고 개를(사실은 개 털을) 쳐다보고 있으니
친구가 이상하게 왜 그러냐고 물어본 적도 있습니다.

자살생각까지도 했었고요.
여자같은건 사치라 생각하고, 평생 쏠로로 산다는 마음으로 살아야겠다 했습니다. 22살의 나이에요.
나도 내가 이렇게 싫은데, 누가 날 좋아해줄 수 있겠냐. 20대 초반에 대머리가 되고 있는 인간을...
뭐 엄청 비관적이었죠.
(그런데 아이러니하게 그 해 겨울에 여자친구가 생겼었네요.)

23살.

역시 당시 대다모 골수회원.
그리고 절대 손 댈 용기가 나지 않던 프로페시아마저 사먹게 되었습니다.
먹는 약에까지 손대게 된 건 여자친구 때문이었죠.
너무 소중한 사람인데, 초라한 대머리 남자친구가 되어주는게 너무 미안하게 느껴져서
조금이라도 더 멋진 남자친구가 되어주고 싶어서...
당시 그 사이트의 글로는 5년이 한계라 했습니다. 초반에는 효과가 좋지만 점점 효과는 떨어지고
몇 년 정도 지나면 거의 효과 보는 느낌이 없을거라고..
아... 그 사이트에 그런 글도 참 많았습니다.
10년 내에 탈모 정복될 거라고....
.
.
.

그리고 지금 현재 14년째 피나스테라이드 복용중. (프페에서 프로스카 쪼개먹기로 바뀌긴 했지만요.)
그리고 탈모 정복은 개뿔. 탈모는 여전히 불치병입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않는......
그래도 프카덕택인지.... 아직 완전 완전 대머리는 되지 않고 지내고 있네요.
그리고 제가 미술쪽 계열이라 20살때부터 머리통 색만 바꿀 수 있다면 삭발을 해도 충분히 폼나고 괜찮게 살텐데...라는
생각을 늘 해왔는데, 최근에서야 smp두피문신이라는 기술이 나왔네요. 저의 두뇌가 시대를 엄청나게 앞서 갔었나봅니다.

결혼하면 탈모따윈 아무런 고민거리가 안될거라고 생각했었지만, 아직 결혼은 못했고요. 계획도 없습니다.
그런데 인생사가 억수로 운 나쁘게 꼬여서 그렇지 탈모 때문은 아닙니다.

그리고 탈모 고민은 이제 많이 안하고 삽니다. (완전히 없어졌다면 거짓말이겠지요.)
머리카락이 많아졌다거나 탈모가 고쳐졌다거나 상태가 좋아진건 절대 아니죠.
누가 봐도 탈모인이긴 하지만 그럭저럭 유지는 하며 살고 있는 정도.
그냥 나이를 먹어서 해결되었습니다.
20대 초반엔 탈모라는 아픔을 겪기엔 너무나도 어린 나이였지만
30대 후반이 된 지금은 충분히 탈모가 와도 어색하지 않은 나이니까요.

어린 시절엔 머리숱이 너무 많아서 감당이 안되던 놈들. 아무리 물에젖어도 절대 두피를 볼 수 없던 축복받은 친구들이
오히려 지금은 저보다 더 심각한 탈모인이 되어있는 예도 많고요.

지금도 연락이 되는 몇 안되는 친구중에, 제가 정말 끔찍하게 부러워했던 친구가 있습니다.
부러워했던 이유는 뭐긴 뭐겠습니까 머리숱 때문이지.
전 탈모 이전에 그냥 기본적으로 숱 자체가 없는 인간입니다.
제 숱이 침팬지나 돼지라면, 그 친구 숱은 북극곰이라고 보면 될 겁니다.
그런데 지금은 저보다 그 친구 탈모가 훨씬 심합니다. 원체 숱이 많으니 탈모부위가 더 두드러지네요.

전 흰머리도 많습니다. 중딩때부터 반에 유난히 새치 많은 애들 한둘은 있었지요.
제가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그래도 염색도 못하고 지냅니다. 가뜩이나 연약한 두피, 독한 염색약에 악영향 받으면 탈모에 더 안 좋을까봐.....
게다가 이발 할 때마다 깎을 때마다 완전 밀다시피 해서 염색하는 의미도 없는 것 같고요.
오히려 요샌 탈모보다 이놈의 흰머리가 더 싫습니다.

그래도 앞으로 나이들수록 흰 머리가 나도 그럴만한 나이가 되어가고, 이것이 주는 스트레스도 줄겠지요.
탈모가 그러했듯이..

나이먹는다는 것이 이거 하난 긍정적이네요.

그냥 지금 상태입니다.


혹시라도 공감해주시는 분들이 있을까봐, 긴 글 하나 남겨봤습니다.
아마 20대 초반의 어린 분들이면, 저때 저와 같은 심정으로 사시는 분들도 계실것 같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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