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때가 생각나네요.
지방 대학 다닐 때 알고 지내던 친구가 있었습니다.
이 친구, 유전적 요인으로 입학 당시부터 누가 봐도 한눈에 알 수 있는 M자 라인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한국 사회 특성상, 간간이 자신의 외모에 대해 조금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기는 했지만, 항상 당당하고 밝고 적극적인 모습은 남자인 제가 봐도 멋져 보일 정도였습니다.
사람을 기분 좋게 해주는 언변 능력과 훤칠한 키, 헬스 트레이너를 형으로 둔 만큼 정말 잘 빠진 몸매(거의 남자 S라인급), 거기다 토익 900을 넘나들고, All A학점을 받을 만큼 나름대로 탁월한 능력의 소유자였죠.
전 정말 그렇게 생각했을 정도였습니다. 모든 것을 주려다, 하느님이 그래도 약간 양심의 가책을 느껴서 조금 모자라게 준 부분이 머리털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요..
어느 해 가을 학기 쯤에, 여자 후배 하나가 갑자기 휴학을 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학기 초도 아니고 학기 중간에 느닷없이 휴학을 하는 게 조금 이상했는데, 알고보니 이 친구에게 고백했다가 거절당한 후, 마음의 상처를 입었는지, 쪽팔려서 그랬는지... 학교를 나오지 않게 된 거였습니다.
어느 날, 남자 친구들끼리 술을 먹다가 누군가 이 친구에게 가볍게 묻더군요. 왜 거절했냐고..
이 친구가 의외로 진중한 얼굴을 하면서 한다는 얘기는,
"걔, 성격 좋고 사람들 배려하는 마음 있고, 능력도 괜찮은 것 같긴 한데 나, 키작은 여자는 관심 없어. 거기다가 나이가 얼만데, 아직도 여드름을 달고 다니냐. 같이 다니기엔 좀 그렇잖아. 니들 같으면 사귀겠냐?"
다들 술기운에 가볍게 맞장구 치는 분위기였지만, 전 그 순간 많이 씁쓸하더군요.
그 여자 후배, 비록 키는 자그만하고 여드름이 조금 나긴 했지만, 과의 간부로서 늘 열심히 뛰어다니면서 학생들 일일이 챙겨줄 정도로 자상하고 늘 기분 좋게 웃는 인상으로 사람을 대해주는 따뜻한 느낌의 여자였습니다.
이건 제 개인적인 견해만은 아니고 그 때 그 술집에 있던 남자 동기들이 모두 인정하는 사항이었죠.
물론 프로포즈를 거절한 그 친구 또한 사귈'여자'로서의 평가가 아닌 아는'여자'으로서의 평가는 상당히 후한 점수를 주더군요.
여자가 사귀자는 제안. 물론 자신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거절하면 됩니다. 사랑이 동정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잖습니까.
하지만 다른 이유가 아닌 오직 '외모'적인 요인 때문이라는 점, 그것도 자신의 의지와 노력으로 커버되는 것이 아닌 타고난 유전적 환경에 좌우될 수 밖에 없는 조건 때문에 이성한테 거절을 당하는 그 심정이 어떨까요?
더군다나 자신 또한 그 '유전적' 아픔을 이미 겪고 있는 바,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좀 더 타인에 대한 이해와 배려심이 큰 덕에
외모 이외 다른 방면에서 이성의 장점을 잘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믿고 있던 친구의 이런 외외성을 알아버리고 나니 너무도 씁쓸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결국 우리 또한 여자들의 '외모'에 대한 조건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구나.'
.아무튼, 이성을 사귈 때 기왕이면 아름답고 기왕이면 멋진 사람을 원하는 것은 인지상정 같습니다.
당장 이 글을 쓰고 있는 저 자신도 기왕이면 이쁜 이성이란 사귀었으면 하는 소망을 하니까요.
하지만, 만날 인연은 또 어떡해서든 이루어진다는 것을 믿습니다.
미천하기 그지 없는 제 지식으로 미루나, 하잘 것 없는 제 경험으로 미루어 보나요.
'대머리는 싫어'라고 외치는 여자들의 말에 너무 개의치는 마세요.
'못 생긴 여자는 싫어'라고 생각하는 우리들의 외침과 다를 바 없으니까요.
누가 알겠습니까?
그 '대머리'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남편이 되고, 그 '추녀'가 세상에서 하나뿐인 소중한 아내가 될 지...
그래도 전 대다모 가족들의 마음을 믿습니다.
자신의 아픔을 알기에, 타인의 아픔도 같이 느끼실 수 있다고. 그래서 정말 좋은 사람을 알아보고, 또 그 맘을 받아주실 수 있는 사람들이라는 것을요.
사람을 상당히 우울하게 하는 몇몇 기사들이 통계라는 이름으로 올라오는 것을 보고 마음이 불편해서 일기 느낌으로 적어봤는데, 쓸데없이 길어졌네요.
항상 건강하십시오.
ps. 대학 때 그 친구. 지금 공기업에서 나름 잘 나간다고 들었습니다.
결혼했냐구요?
소식통에 의하면 아직도 전지현급 '여자'를 원하는 눈높이 때문에 주변 사람들이 괴롭다고 합니다.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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