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살 때였을 거예요. 학교에서 친구가 제 머리를 보더니 속이 휑하다 그러더군요.
어렸을 때부터 이마가 좀 넓긴 했지만 모발이 워낙 굵고 숱이 많았었기에
친구가 그냥 농담을 한 거라고 생각했었죠.
그런데 언젠가부터 거울을 보면 엠자 부위가 유난히 휑해 보이더라구요.
지하철 역에서 내려서 학교까지 걸어가는 길에 바람이 많이 불었는데
건물에 들어가자마자 화장실로 직행해서 머리를 매만지는 게 습관이 되어버렸어요.
탈모에 대한 인식이 전무했기 때문에 술도 많이 마시고, 담배도 피고...
자주 모자를 쓰고 다니다가, 언젠가부턴 과감하게 스포츠 머리로 자르고 다녔습니다.
당시엔 그래도 탈모가 심하지 않았을 때라 짧게 자르니 좀 낫더군요.
졸업을 하고... 직업상 새벽 늦게 잠드는 경우가 잦아지면서 불규칙한 생활을 한 탓인지
담배도 끊고, 술도 거의 마실 일이 없었지만 20대 후반에는 탈모가 제법 진행됐어요.
가족여행에서 찍은 사진들을 보면 누가 봐도 탈모. 그때부터 사진 찍는 것도 꺼려하게 되었죠.
엠자 부위는 물론 정수리까지... 말 그대로 대머리가 되어가는 중이었어요.
어느 날 거울을 보다가 아... 너무 짜증이 나서 가위로 전부 잘라버렸습니다.
전기 면도기에 달린 작은 바리깡으로 손질을 하긴 했지만 머리꼴이 말이 아니었죠.
바리깡을 하나 구입해서 제대로 밀어버리고... 그 후론 계속 집에서 반삭을 했어요.
집에서 혼자 일하는 터라 별 고민은 없었습니다.
모자를 쓰지 않고 나가면 아무래도 사람들의 시선이 신경쓰이긴 했지만요.
지루성 두피염이 있어서 머리를 감아도 개운치 않았는데...
그땐 정보가 없어서 그냥 체질 탓만 하고 있었네요.
그러다 얼마 후 아버지가 회사에서 듣고 오셨다며 병원에 가보라고 하셨습니다.
이 지역 탈모인들 사이에서는 제법 알려진 탈모 전문 병원인데...
샴푸, 바르는 약, 프로페시아 해서 어마어마한 비용이 들었지만 효과는 좋았습니다.
두피 상태도 몰라보게 좋아졌고... 간만에 느꼈던 그 상쾌함에 당장이라도 머리가 날 것 같은 기분.
아니나 다를까 몇 주 지나지도 않아서 잔털이 나기 시작했어요.
원래 팔에는 털이 없었는데, 팔은 물론 등까지 잔털이 나고...
이마 라인은 원래 넓었던 제 이마보다 오히려 더 내려온 느낌이었고 실제로도 그랬던 것 같아요.
거의 95프로 이상 회복되었던 것 같습니다. 탈모라는 생각이 전혀 안 들었습니다.
다시 머리를 길러 미용실에 다니기 시작했고 자신감도 많이 늘었어요.
그러다 병원에 대한 신뢰가 깨져버린 계기가 몇 가지 있는데...
의사한테 등, 팔에 난 털에 대해 얘기했더니 바르는 약이 튀었겠죠 하며 무성의한 대답을 하더군요.
냄새나 색으로 봤을 때 미녹시딜 성분의 약인 것 같은데 너무 비싸게 팔아먹는 게 아닌가 싶기도 했고
약이 튀면 얼마나 튄다고 등, 팔 전체적으로 잔털이 났겠다 하는 생각도 들었어요.
무엇보다 머리가 다시 나게 된 주원인이 프로페시아-프로스카가 아니었을까 싶은데
그 바르는 약 덕분이라고 딱 잘라 말하니
그때부터 의사가 하는 모든 말들이 순수하게 들리지 않더군요.
그래서 남은 약으로 사나흘에 한 번씩 복용했고, 약이 떨어진 다음에도 병원에 가지 않았습니다.
머리는 거의 회복을 한 상태였기 때문에 한동안은 괜찮았어요.
자신감도 회복한 상태였기 때문에 나름 긍정적인 마인드로 버텼습니다.
이 생각은 지금도 변하지 않았는데... 저는 제가 대머리라서 떠날 여자보단 대머리라도 남아줄 여자가
더 좋은 여자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결혼만 하면 약은 복용하지 않을 생각이구요...
약 끊고 1년이면 성분이 다 빠져나간다지만...
행여 남아서 미래의 아기에게 영향을 주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는데,
현실적으론 당장 결혼이 문제라는 게 아이러니라면 아이러니더군요.
아무튼 몇 달 후부터 머리가 조금씩 빠지는 게 느껴졌고, 이마라인도 꾸준히 올라가기 시작했어요.
이미 탈모인의 운명을 받아들였고 빠지면 밀어버리면 된다는 입장이지만
이게 또 그날그날 기분에 따라 변하네요.
주변에 탈모인 친구라도 하나 있으면 순응하겠는데
주변 사람들은 다들 왜 그렇게 머리 속이 빽빽한 건지...
그리고 인터넷에서 당장 프로페시아 먹으라는 탈모인들의 글을 볼 때마다
제가 지나치게 긍정적이거나, 안일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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