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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잡담] 남자의 머리카락

  • 12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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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저씨’같지 않은 원빈의 짧은 머리부터 ‘미소년’다운 현빈의 긴 앞머리까지, 만화적인 웨이브의 장근석부터 현실적인 개성이 넘치는 류승범의 웨이브까지, 남자들에게 헤어는 이미지의 90%를 결정한다. 때로는 비밀스러운 신성불가침의 블랙 벨트이기도 한남자 머리카락의 신호와 암호.

남자 배우들과 인터뷰 촬영을 진행하면서 가장 난감할 때는 헤어 스태프를 정해야 하는 순간이다. “내 머리는 예민해서 절대 아무나 못 만집니다!” 연령과 미모를 불문한 남자 연예인들의 신조다. “나더러 우주복 입고 광대춤을 추라고 해도 하겠어요. 하지만 머리카락은 안 돼. 내버려두세요.” 그 저항감은 실로 대단해서 현장스태프들이 손을 못 대도록 미용실에서 머리카락을 완벽하게 세팅 후 촬영장으로 들어오기도 한다. 톱스타일수록 머리카락 사수 의지는 더욱 삼엄하다. “매니저! 나 머리 하고 온다고 얘기 안 했니?” 드라이어를든 헤어 디자이너 앞에서 당황해서 외치는 소리. 그들은 자신의 두발을 신성불가침 그린벨트 지역으로 선포하는 것으로 이미지 변신을 시키려 드는 패션 권력자들에게 대항한다. 그래서 남자 배우와의 촬영은언제나 신경전으로 시작하기 일쑤. “제가 드린 시안대로 머리 하고 오신 거예요?” “왜요? 그럼, 이게 그냥 온 거 같애? 뱅상 카셀 같잖아?” 일부러 목에 핏대를 세워 초반에 기선을 제압하려 드는 모델 출신 배우 S. 스타일에 대해 별 까탈을 부리지 않는 명배우 K도 ‘뱀파이어’ 캐릭터를 소화한 후 〈보그〉 촬영에서 머리를 올백으로 세팅하자 이마에 선명한 내 천(川) 자를 그렸다. 〈트와일라잇〉의 로버트 패틴슨을 예상했는데, 〈흡혈 형사 나도열〉이 됐다는 게 이유였다.

“남자 배우들은 성향이 더 여자 같아요. 여배우는 대장부가 연예인을 하는데, 남자 배우들은 소심하고 감정이 여린 사람이 배우가 되죠. 그들에겐 머리카락 한 올이 3.8선 경계보다 중요해요. 여배우들처럼 다양한 스타일에 대한 경험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죠. 큰 변화를 줄수 없는 짧은 머리카락이라 머리 모양으로 얼굴형이 더 규정돼서 그렇기도 하구요.” 헤어 스타일리스트 유다는 대부분의 남자 배우들이 여배우들보다 보수적이며, 대중들이 원하는 스타일을 하기 보다 자신이거울을 봤을 때 바라는 모습을 고집한다고 말한다. 얼마 전 정치인을연기한 배우 C의 경우만 봐도 그 세심함의 깊이가 어느 정도인지 알 수있다. 드라마 캐릭터를 위해 일주일에 한번씩 미용실에 와서 헤어 커팅을 했던 그는 1~2mm의 차이도 섬세하게 지적했다. 헤어 디자이너는 마치 성형외과 의사가 라인을 만들어내듯, 머리카락 한 올에 집중해야 했다고. 그 스타일의 목표가 딱딱하고 정직한 40대 정치인 머리에 불과했는데도 말이다.

“남자들은 주로 한 사람에게 오래도록 자기 머리를 맡기는 습성이 있어요. 머리카락에 신뢰와 충성이라는 감정을 부여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오랜 친분이 아니면 변화를 요구하기 쉽지 않죠.” 포레스타 정재명 원장의 말이다. 마치 대통령과 이발사가 몇십 년을 함께 동행하듯. 반면 미용실에서 만들어준 2 : 8 가르마를 고수했던 중견 배우 N은촬영장에 동행한 부인의 응원으로 〈보그〉의 헤어 스태프가 스타일을 뒤집어 완성하자 스스로가 가장 먼저 놀라워했다. “런던에서 공부했다구요? 와~! 내 머리카락이 이런 성질이 있을 줄은 몰랐어요. 전화번호 줘봐요.”

얼마 전 ‘장윤주와 친구들’ 컨셉으로 촬영에 임한 뮤지션 정재형도 헤어 변신에 있어서 굉장히 열린 자세로 임했던 경우. 앞가르마에 단 발 머리를 하고 있던 그는 개그맨 이봉원을 빼 닮은 ‘정봉원’이라는 별명에 난감한 웃음을 짓곤 했는데, 헤어 스타일리스트가 〈스위니 토드〉의 이발사 컨셉으로 화려하게 앞머리를 변신시키자 스타일리시한 캐릭터가 됐다. “평소에 숱이 너무 많아서 옆머리 안쪽을 밀고 있었는데, 그게 촬영 과정에서 더 드라마틱한 느낌을 준 것 같아요.” 비슷한 헤어 스타일이라도 배우와 탤런트, 아이돌 가수의 느낌은 달라진다. 태양이나 재범이 선보였던 모히칸 스타일은 세련미보다는 과감한 개성의 돌출이 목적이다. “아이돌 가수는 컨셉추얼 한 걸 좋아하죠. 한 시즌 확실하게 무대 조명에서 시선을 사로잡고 튀어야 하니까요. 영화 배우들은 조명의 톤도 어둡고 클래식한 편이에요. 헤어 컬러도 그에 따라 짙은 갈색에 블랙으로 무거운 느낌이죠. 송강호나 설경구 같은 배우의 헤어는 잘 바뀌지 않잖아요. 탤런트들은 스타일적으로 밝고 머리카락의 양도 가벼운 느낌이에요. 배용준의 밝은 바람 머리, 이민호의 파마 머리, 윤상현의 아줌마 머리를 봐도 알 수 있듯이 영화 배우들보다 자유롭고 트렌디하죠.” 정재명 원장은 요즘엔 원빈 스타일과 현빈 스타일이 유행이라고 부연한다. 〈아저씨〉에서 원빈이 보여준 헤어는 윗부분을 짧게 쳐서 남성미가 넘친다. 막 자른 듯 거친 느낌을 주지만, 힘과 에지가 넘치는 시크한 스타일이다. 결코 ‘ 아저씨’ 들은 소화하기 힘들다. 반면 〈시크릿 가든〉에서 현빈이 보여준 스타일은 앞머리로 이마를 덮고, 귀를 판 부드러우면서도 깔끔한 미소년 스타일. 머리카락이 이마를 덮느냐 마느냐는 남자들의 인상을 크게 바꾼다. 이마가 드러나면 마초적인 남성미가 강해지고, 머리카락으로 이마를 덮으면 멜로적인 무드가 강해진다. 요즘엔 여자 친구의 손에 이끌려 이마를 덮은 ‘현빈’ 스타일로 변신하는 남자들이 대세다.

나는 초기에 어린 아이돌 가수의 헤어 스타일을 보는 것이 무척 곤혹스러웠다. 일본의 스트리트 패션과 만화캐릭터에 영향을 받은 ‘H.O.T’ ‘젝스키스’ ‘동방신기’의 머리는 내 눈에는 마치 불가사리나 멍게, 해파리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최악의 머리는 서태지 였어요”라고 헤어 스타일리스트 김정한은 회상한다. “레이어드가 너무 심하고 염색도 끔찍했죠. 하지만 요즘은 동방신기조차 헤어가 굉장히 단정하고 하이패션적인 느낌으로 진화하고 있더군요.” 스포츠 스타도 머리카락으로 어필하고 싶어 하는 무대 체질이긴 마찬가지. 드넓은 스타디움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표현하기 위해, 혹은 상대편에게 으름장을 놓는 신체 일부의 변형으로, 혹은 팬 서비스의 일환으로 과감한 염색과 사자 갈기 같은 웨이브를 선보이는 경우가 흔했다. 안정환의 파마 머리와 이천수의 금발처럼. 국민 남동생인 수영 선수 박태환도 얼마 전에 이벤트적인 성격으로 붉게 염색한 귀여운 헤어 스타일을 선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진정한 남자다움은 동물 세계에서처럼 뿔이나 갈기를 앞세우는 쇼적인 과시보다는 결국 무심한 댄디즘에서 나온다고 믿는다. 도복을 입을 때나 수트를 입을 때나 항상 짧은 검은 머리카락을 반듯하게 빗어 넘긴 격투기 선수 추성훈처럼.

남자들에게도 나름대로 머리카락에 대한 로망이 있다. 남자들이 꼭 한번쯤 하고 싶어 하는 헤어 스타일은 ‘반—1cm가 될까 싶을 정도로 머리 길이를 약간만 남겨둔 스타일’과 긴 머리다. ‘반삭’은 특히 헤어로 얼굴이나 두상을 수정할 필요 없는 완벽한 꽃미남 스타들이 외모 힘을 과시하기 위해 한번쯤은 거쳐가는 스타일. 반삭을 훌륭하게 소화하기 위해서는 외모, 머리숱, 패션 스타일에 대한 기본이 탄탄해야 한다. 영화 〈정사〉에서 미니멀한 스타일링과 함께 반삭을 선보인 이정재, 〈해안선〉에서 미쳐가던 장동건, 〈우리형〉의 문제아 원빈, 〈사랑〉의 주진모, 〈비열한 거리〉의 조인성, 송승헌, 천정명, 장근석 등 꽃미남 배우들 역시 한번씩 반삭을 통해 오로지 두상과 빛나는 이목구비를 자랑한 바 있다.

“긴 머리가 어울리는 남자 배우는 많지 않아요. 변화에 대한 로망으로 긴 머리를 했다가도 곧 다시 본래의 클래식한 머리로 돌아오는 경우가 대부분이죠. 일종의 회귀 본능인 셈이에요”라고 헤어 스타일리스트 유다는 남자들의 보수성을 지적한다. 〈메리는 외박중〉에 나오는 장근석처럼 만화 주인공 같은 곱상한 이목구비가 아니면 긴 웨이브를 소화하기는 어렵다는 것.

나는 가끔 전인권의 머리가 지금도 헝클어진 긴 파마 머리일까를 생각해본다. ‘들국화’의 리더이던 시절 전인권은 그 흐트러진 파마 머리만으로도 굉장한 포스를 내뿜었다. 그가 만약 머리카락을 잘랐다면 그건 마치 가수가 목소리를 잃은 것 같은 느낌일 것이다. 그런데 왜 요즘엔 로커 김종서나 신성우, 〈부활〉 김태원의 찰랑거리는 긴 생머리를 보면 시대착오적이고 안쓰러운 느낌이 드는 걸까. “우리나라에서 나이든 로커가 멋있긴 쉽지 않아요. 보통 나이가 들면 여배우들도 생머리대신 웨이브를 해요. 생머리는 얼굴의 주름을 돋보이게 만들거든요”라고 헤어스타일리스트 김정한은 말한다. 황미나의 만화 〈비천무〉에나오는 자하랑 같은 외모가 아닌 다음에야 긴 생머리 남자는 청학동에서 외출한 도령처럼 보이기 십상이다.

작품 속에서 내가 기억하는 최악의 머리는 이준기와 이범수다. <왕의 남자〉에서 그토록 청순하고 아름답게만 보였던 이준기가 여성적 이미지를 등에 업고 드라마 〈마이걸〉에서 일본 스트리트풍의 레이어드가 심한 장발을 선보였을 때는 그 극단적 팬시함에 손발이 오그라들었다. 반면 이범수는 캐릭터를 위해 이미지를 희생한 경우. 〈태양은 없다〉에서 이범수가 이정재를 잡으러 다니는 사채업자로 분했을 때 했던 가운뎃 가르마의 단발머리는 키 작은 이범수를 거의 난쟁이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그 뒤로 이범수를 볼 때마다 그 단발 머리가 생각나 웃음이 비어져 나왔다. 그리고 가장 애처로워 보였던 머리는 <레슬러〉에서 퇴역 레슬링 선수로 나왔던 미키 루크의 그것. 〈나인 하프 위크〉에서 그렇게 섹시했던 미키 루크가 숱도 없는 샛노란 단발 웨이브로링 위로 나동그라질 때 만감이 교차했다. 카리스마 넘치는 동충하초헤어로 〈올드보이〉의 캐릭터를 소화했던 최민식이 〈악마를 보았다〉에서 비만한 올백 웨이브 헤어의 살인마로 변신했을 때도 마찬가지.긴 머리, 단발 머리, 파마 머리, 바람 머리… 그동안 수많은 남자 스타들이 다양한 헤어 스타일을 선보였지만 그 중 많은 헤어 전문가들이 꼽는 헤어 스타일 킹은 류승범과 강동원이다. “개성과 위트가 있고 패션 감각까지 뛰어나죠. 머리와 옷이 항상 완벽하게 매치되는 몇 안 되는 남자 패셔니스타들이지요. 약간 긴 머리로 스스로 변화를 주도해나가는 느낌… 헤어 스타일로 자신을 완성했다고 할 수 있죠”라고 순수의 이순철 원장은 평한다.

할리우드 배우 중에 헤어 스타일에 따라 다양한 매력을 발산하는 이는 단연 브래드 피트. 〈가을의 전설〉이나 〈트로이〉에서 긴 머리를 휘날리며 말을 타고 칼을 휘두르는 브래드 피트를 보는 건 여자로서 황홀한 광경이다. 또 〈미스터 앤 미세스 스미스〉와 〈오션스 트웰브〉에서 삭발보다 조금 긴 일명 ‘반삭’ 머리를 한 브래드 피트는 지극히 모던하고 세련된 남성미를 보여준다. 반면 〈번 애프터 리딩〉에서의 촌스러운 부분 염색, 올백 헤어를 한 멍청한 브래드 피트를 보면 헤어 스타일이 남자를 저렇게 망가뜨릴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반면 넓은 이마에 작고 또렷한 이목구비를 지닌 조니 뎁은 콧수염과 턱수염, 흘러내리는 웨이브 헤어로 무슨 배역을 맡든 자유롭고 히피적인 매력을 발산한다. 머리카락을 깨끗이 넘기고 이마를 드러낸 모습이 아름다운 남자는 역시 량차오웨이(양조위). 〈화양연화〉나 〈색, 계〉에서 치정에 얽힌 우유부단하고 나쁜 남자를 연기하는 올백의 량차오웨이는 〈무간도〉에서 기름진 앞머리를 드리웠을 때보다 훨씬 매혹적이다.

남자가 나이 들면서 멋있으려 해도 머리카락이 관건이다. 오랜만에 동창회가 열리면 남자들은 가장 먼저 서로의 머리를 바라본다. 머리가 빠졌나, 안 빠졌나는 서로의 파워 게임이며 젊음의 척도. 머리숱의 양과 헤드라인의 깊이는 돈이나 권력보다 더 직접적이다. 얼마 전탈모가 될까 불안해 하는 30대 록 뮤지션 남자가 대머리 아버지를 방 문해 머리카락의 상실을 시간의 흐름에 따른 인간적 성숙으로 받아들이게 되는 〈머리카락〉이란 제목의 프랑스 영화를 보았다. 어릴 때 내아버지는 흰머리를 뽑을 때마다 행여나 검은 머리카락이 함께 뽑혀나갈까 예민해 하셨다. 아버지는 카멜색 모직 코트를 입고 듬성듬성 난머리카락에 포마드 기름을 발라 정수리를 덮도록 가지런히 빗으면 외출 준비 끝이었다. 그 아버지와 발가락조차 닮지 않았던 오빠가 어쩔수 없는 아버지의 핏줄임을 드러낸 것도 역삼각형 뒤통수에서 시작된선명한 탈모 자국에서였다.

“요즘 남자 패션 피플들은 피부보다 탈모 관리에 더 신경을 써요”라고 헤어 스타일리스트 김정한은 말한다. “외국인들은 탈모를 자연스럽게 생각하고, 스킨 헤드도 섹시하다고 생각하거든요. 테니스 선수 안드레 아가시도 카리스마 넘치고, 헤드라인이 깊이 파인 주드 로도 섹시하잖아요. 하지만 우리나라 남자 연예인들은 일단 머리를 심으려고 들죠.” 온몸이 우성인자인 W도 항상 문을 닫고 미용실 스태프에게만 머리를 맡겼는데, 한때 그가 ‘대머리 끼’가 있어서 그렇다는 소문이 파다했었다. 그가 대머리인지는 알 수 없지만 날이 갈수록 헤드라인은 점점 더 M자가 선명해졌다. 그러던 어느 날 W가 이마 위로 풍성한 머리를 쏟으며 놀랄 만큼 젊고 빛나는 얼굴로 브라운관에 나타났다. 머리카락을 심은 것이다. 하지만 헤드라인에 심은 머리는 방향을 잡을 수 없기 때문에 스타일의 변화도 줄 수 없다. W는 그래서 20대 시절로 회춘한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남녀노소 막론하고 자연스러운 흰머리는 그 어떤 스타일과도 견줄 수 없는 중년의 매혹을 더한다. 나훈아와 이문세의 은은한 흰 머리와 수염은 50대 이상의 남자도 섹시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지 않던가. 적당한 숱과 함께 남자의 자연스러운 은발은 그가 머리카락뿐만 아니라 자신의 삶조차 은은한 향을 잃지 않도록 관리했을 것 같은 믿음을 주는 것이다.

http://www.style.co.kr/beauty/b_view.asp?c_idx=010201000000281&menu_id=0107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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