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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폐업에 관한 조선일보 사설입니다.

  • 26년 전

  • 948
0
[사설] 해결의 시간 얼마 남지 않았다

의료계의 집단폐업이 국가위기로 번지고 있음에도 정부는 한심한 대책과 공연한 엄포로 일관하고 있고 의료계는 좀처럼 고개를 숙일 것 같지 않아 과연 사태가 수습될 수 있을지 아득하다. 엊그제 보건복지부 장관은 의약분업이 정부의 준비가 매우 미흡한 상태에서 시작됐다고 솔직히 인정했다. 그럼에도 김대중 대통령은 사태를 ‘법과 원칙’에 따라 처리하라고 법무장관에게 지시했다. 주무장관이 인정했듯이 이번 사태는 정부가 준비안된 상태에서 정책을 도식적으로 집행했기 때문에 일어난 것인데, 이제와서 미비한 ‘법과 원칙’만 강조하는 것은 자칫 무리를 일으킬 수 있다.

사태가 악화되자 정부는 처방료 63% 인상, 전공의 보수 인상 등 의사들을 달래기 위한 ‘당근’을 허겁지겁 내놓았다. 그러면서 정부는 파업이 장기화하면 의료시장을 개방하는 등 특단의 조치를 세우겠다고 한다. 그러나 이 또한 정부가 문제의 근원을 아직도 파악하고 있지 못함을 보여주는 것이다. 상황을 이 지경까지 몰고 간 원인 중 하나는 정부가 의사들의 주장을 ‘집단이기주의’라는 한가지 측면에서만 바라보고서 일을 일종의 세몰이식으로 밀어붙이려 했기 때문이다. 의료계 일각에서는 이 미비한 의료정책을 ‘의료사회주의적’ 발상으로 보고 있다는 설명도 있다. 의사들은 또 현 제도하에서는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마찬가지라는 절박감에 빠져 있다고 한다. 바로 이점에서 이제는 어떤 대책도 필요없다는 냉소적 분위기가 팽배해 있다.

엄포겠지만 정부가 의료시장을 개방하는 등 특단의 대책을 세우겠다는 것도 생각해 볼 문제다. 왜곡된 의료체계 때문에 병원이 도산하고 의과대학도 병원증축을 기피하는 것이 현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의료시장을 개방한다는 것은 황당한 이야기다. 오히려 국내의 우수한 의료인력이 조국을 등지고 취업이민을 나갈 것이다. 그렇다면 정부가 말하는 의료시장 개방은 제3세계 의사들을 취업연수생으로 받아들이겠다는 것인가. 의료정책 담당자들의 ‘수준’을 잘 보여주는 대목이라 하겠다.

이제 사태를 해결할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정부는 지금까지의 의료정책 추진방식의 과오에 대해 진심으로 자괴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의사들 역시 격앙되고 자포자기한 감정을 접고,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환자들 걱정을 해야 할 것이다. 오늘 죽어도 의사는 의사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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