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마음이 복잡하네요. 그래서인지 죽음에 대한 생각을 자주 합니다. 막연히 '죽고싶다'는 생각이 아닌, 진짜 말 그대로 죽음 자체에 대해서요.
어릴때부터 전 꽤나 똑똑한 편이었습니다. 특히 수학을 잘해서 경시대회에서 상도 여러번 탔었고, 고1때 어느 대학 교수님의 도움을 받아 논문을 쓰기도 했습니다. 장학퀴즈에 나가기도 했고, kbs의 어느 토론 프로그램에 패널로 출연하기도 했습니다.(물론 이런것들은 제가 잘났다기보다 우연히 기회가 저에게 주어진 것이겠지만요) 대인관계도 원만해서 반장을 놓친적도 없고, 학생회장도 했었고요. 운이 좋아 보통은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첫사랑과 3년이 넘는 연애를 했었고, 이후로도 고맙게도 애틋한 사랑을 몇번 했습니다.
잘난척같지만, 과거에 저의 자신감과 자존감이 어떠했을지를 말씀드리고 싶어서 쓴 것이니 그냥 그렇구나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재수없다고 하셔도 할말은 없고요ㅎ
탈모는 22살때부터 조금씩 인지하기 시작했습니다. 아마 21살때부터 시작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그리고 23살때부터 약을 먹기 시작해서, 27살인 현재까지 약 4년을 넘게 먹었네요. 처음 약을 먹을때, 부작용에 대해 겁도 많이 냈고 두피관리센터에 헛돈을 쓰기도 했었죠. 그때부터 자존감 충만했던 제 인생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내면이 중요하다고는 하지만 20대인 저에게는 외모가 더 중요했습니다. 빠지는 머리만큼 자신감도 떨어져갔죠.
약을 먹은 후로는 이미 조금 파인 m자부위 외에 다른곳은 거의 정상화되어서 누구도 저에게 탈모에 관해 이야기하지 않앟지만, 저 스스로는 늘 위축되고 신경이 쓰였습니다. 그때부터 연애도 힘들어지기 시작했죠. 남자는 자신감이라는데 전 그게 부족했으니까요. 그래도 약을 먹고 3~4년간은 크게 신경쓰지 않았습니다. 연애보다 중요한 일들이 항상 눈앞에 있었거든요. 그리고 탈모도 약의 효과로 거의 티나지 않을 정도가 되니 그저 가끔 머리가 빠지는지 확인해보는 정도였습니다.
그리고 작년에 학교를 졸업하고 소위 말하는 '사'자 직업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 순간만큼은 탈모고 뭐고 세상이 제 것 같았죠. 한동안은 즐거웠습니다. 머리도 빠지지 않는듯 하고, 소개팅을 해도 절반정도는 여자쪽에서 먼저 애프터가 오는 식이었죠. 돈을 벌게되고 시간적 여유도 생겨서 학생때는 못했던 각종 취미생활도 하기 시작했고요.
그런데 그것도 얼마 지나지 않아, 어느 순간부터 머리가 다시 많이 빠지기 시작했습니다. 마치 약을 먹기 전, 그때로 돌아간듯이요. 기분도 그때와 같아졌습니다. 아직 누가봐도 탈모라고 느끼지는 못하지만, 머리를 감을때마다 수십가닥씩 빠지는 머리를 보면 앞으로의 미래가 불안하기만 합니다. 프로페시아에서 아보다트를 번갈아가며 먹기 시작하고, 3개월 전쯤 m자부위에 1500모정도 모발이식도 했습니다. 하지만 머리는 여전히 많이 빠지고있고, 이제 더이상 해볼것도 없기에 점점 좌절감이 깊어집니다.
마음에 여유도 사라지고 조급해져서 올 초에도 귀엽고 예쁜 여자친구를 떠나보내고 말았네요. 오빠다운 모습을 보여주고 살펴줬어야 했는데 그러기엔 제가 너무 마음이 작아진 것 같습니다.
오늘, 몇주 전 소개팅했던 여성분과 3번째 만남을 갖고 돌아왔습니다. 밝고 좋은 분이고 먼저 또 만나자고 이야기도 해주셨는데, 저는 문득문득 위축이 됩니다. 돌아오면서 인사하는데, 20대의 나이에 벤츠를 타시더군요. 예전같으면 높은 자존감에 이러지 않을텐데 오늘은 왠지 그것을 보면서도 위축이 되더군요. '나 따위가, 나중에 머리가 더 빠지면 멋도 없어질 사람이..저런 여자와 계속 만날 수 있을까. 나중에 상처받지 않을까'라는 생각과 함께요. 그래서 오늘 마음이 더 심란하고 복잡해졌네요.
제가 사는 궁극적인 목표, 혹은 이유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습니다. 두가지 결론을 냈는데, 하나는 '사랑'이고 하나는 '자존감'이었습니다. 탈모는 정확히 이 두가지를 무너뜨리네요ㅋ
행복은 '현재 어떤 높이에 있느냐'가 아닌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이냐'가 더 크게 결정하는 것 같습니다. 비유하자면, 그래프의 y값보다 기울기가 중요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그런데 제 인생의 기울기는 아래로만 향해 가는듯합니다. 그래서 자꾸 이런 생각을 합니다.
'사랑한다면 그들처럼'이라는 영화를 보면 여자가 행복한 순간에 강물에 뛰어들어 죽음을 맞이합니다. 행복한 기억을 마지막 기억으로 남김으로써 인생을 완성하려 했던 것이지요. 그 영화를 보면서 꽤나 합리적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어차피 나의 인생이 앞으로 내리막을 걸을 것이라면 그나마 행복이 남아있는 지금 죽음을 택하는게 낫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해 보았습니다.
물론, 저는 당장 죽지는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생각을 오랫동안 더 하게 될 것 같기도 합니다.
22살이전의 삶이 '사는 것'이었다면, 그 이후의 제 삶은 '버티는 것'이 되어가는듯 합니다. 다행히 제가 버티는 것 하나는 타고나게 잘합니다. 하지만 이렇게 오랜 시간을 버티다보니 이제 슬슬 지쳐가는것 같기도 합니다. 무너진 자존감을 오랫동안 바라보는건 책상 앞에서 버티며 공부하는것과는 또 다른 차원의 고통이더군요.
격려나 위로를 받기 위해 쓴 글은 아닙니다. 여기계신분들은 모두 아픔을 갖고 계신 분들이고 저보다 더 큰 고통이 있으신 분들도 계실텐데 제가 나약함을 핑계로 위로를 구걸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다만, 복잡한 마음에 어딘가 말을 풀어내고 싶은데 비슷한 아픔을 갖고계신 분들께 이야기해보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제 글을 읽고 힘이 빠지는 분들이 있을까 걱정이 되기도 합니다. 절대 이 글 때문에 기운을 잃거나 하지는 않으셨으면 합니다. 같은 탈모를 겪는다 하더라도, 모두가 같은 생각을 하는 건 아니니까요.
생각보다 글이 길어졌네요. 횡설수설하며 주저리주저리 쓴 글인데 다 읽으셨다면 죄송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네요. 편안한 밤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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