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펀글) 긴데여...우리들이 같이 고민해볼필요가 있을거 같아서여..

  • 24년 전

  • 1,327
0
.. 다름이 아니오라 제가 이렇게 약간은 당혹스럽게 글을 올린 이유는
저에게 일어난 요며칠사이의 기막힌 일을 제보하고자에 있습니다.


부족한 수면시간과 정신적인충격으로 인하여 제가 말하는것이 조금은 문맥이 안맞고 안 다듬어진 글 일 수도 있습니다.
다만 제가 확신하건데 제가 말하는 것엔 추호의 거짓도 없고 이 억울함을 호소할 때가 없는
힘없는 서민중의 하나로써 저에게 조그만 힘이 되주고자 함에 있어서입니다.


제 남동생은 이제 20살이 된 정대용이란 학생입니다.


학교졸업후 어려운 가정형편을 깨닫고는 스스로 학원비를 벌어보고자 신촌의 형.제.갈.비란 곳에서
1월달부터 아르바이트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는 그 특유의 성실함으로 말미암아 곧 형제갈비에서 직원으로 채용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비극은 지난 8월 22일날 일어났습니다.


그 날 아침, 제가 남동생을 마지막으로 본 가족이 될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정확히 제 남동생 정대용은


2001년 8월 22일 11시 50분


형제갈비에서 설치한 전혀 안전장치없는 화물용 엘레베이터에서 얼음을 꺼내려다가
그 곳에서 몸이 찢겨져 죽는 참상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그 안전장치가 없다고함은 고장난건지 원래부터 설치를 안 한건지 모르겠지만,
문이 열린채로 세상에 그 어느 승강기가 문이 열린채로 위아래층을 왔다갔다하는 것이 있겠습니까??


세상에... 그 곳에서 제 남동생은..


얼음을 꺼내려고 상체를 들이민순간 아래층에서 하강버튼을 눌러서 그만 고통속에서 죽어버리게 된 것입니다.


형제갈비측은 이미 그런 상태로 3년을 써왔던터라 이런 사고가 날 줄 몰랐다는 어처구니 없는 말로 대신하고
모든 죄를 밑에서 버튼을 누른 아이한테 뒤집어쓰고 도망가려는 식으로 하고있습니다.


정확히 제남동생의 사고사안은


얼음통의 입구 부분에 얼굴 복과 목부분이 찍혀 그 모서리부분이 살을 파고들어가
입에서부터 귓볼까지의 살을 찢어버린채 박혀버리고 그 입구부분의 닫힌 부분엔 심장이 찍혀
우심방이 파열되는 엄청난 고통을 겪게 된 것입니다.
그 사건을 목격한 측근의 말에 의하면 그당시 남동생의 두발은 공중으로 솟아있었고
가슴부분이 푹 패인상태로.. 사태를 깨닫고 기계를 스톱시키고 대용이를 꺼냈으나
그 때까지 의식이 조금있던 대용이는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되뇌이고는 그대로 의식을 잃었다고합니다.


(형제갈비측의 변명)
제가 22일날 당시 늦게 연락을 받고 병원으로 달려갔을 때 이미 남동생은
연세 세브란스 심장혈관센타 중환자실 집중치료실에 안치되어 있었고
면회도 되지 않는 상태였습니다.


그 때 형제갈비의 점장이란 사람이 나타나서 제게 하는 말이..


사고의 경위를 설명한다고 해놓고서는 남동생은 응급실에 실려와서
의사가 바로 보기 전에 의식을 잃었으며 충분히 엘레베이터에서 피할수 있었는데
자기가 스톱!하면 기계가 설 줄알고 바보처럼 거기서 스톱거리다가 죽음을 맞이했다는 것입니다.


아니 이런 어처구니 없는 말이 어디있습니까?


그 누가 승강기가 내려오는데 피할 생각없이 스톱,스톱만 되뇌이겠습니까?


언니가 그 날 저보다 일찍 도착하여 사고 조서를 쓸 때 같이 있던 남자애가 이미 대용이는 끌어내릴때 의식을 잃었다고 쓴 것을 목격했다했고,
나중에 작은아버지가 사고현장을 갔을때는 이미 엘레베이터에 안전장치를 고쳐놓은데다가 사건재현을 할 때
얼음통의 크기가 커서 머리위에 승강기 천장과 불과 공간이 얼마없음에 하강했을때부터 이미 얼굴이 눌려갔음을 확인했답니다.


(억울한 말들)
어제 형제갈비 점장에게가서 이 말을 따지니 형제갈비 점장은 그러더군요. 억울하면 119에게 물어봐라, 의사한테 물어봐라.


저는 할 말이 없습니다.


형제갈비에서 그들에게 돈을 먹인건지 모르겠지만..
또한 그런말이 위험한줄 알지만 어떻게 이렇게 진술이 엇갈릴수가 있겠습니까?


* 참고로 형제갈비는 연세대재단 후원회장이라고 합니다 *


(누나로써의 탄원)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간 22일 입원하고서 26일 새벽 사망할 때까지 오직 우리가족은 우리 대용이가 살아남길 빌었습니다.
오직 그것만 빌고선 다른 아무일도 안 한 채..
- 심지어 바보처럼 형제갈비를 고소하지도않고 우리 일가친척은 중환자실집중치료실 앞에서 하루 3번 10분 면회를 기다리면서
대용이의 구사 회생을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결국 의식은 돌아오지않았고, 링겔병은 7개 정도 투약하며 약으로 목숨을 부지하면서 살다가
결국 26일 오전 0시 45분 가족들의 원통한 가슴을 남겨놓고 죽어버리고말았습니다.


세상에.. 여러분!!
제 남동생은 죽을때 눈도 못감고 죽었습니다. 그 어린것이 얼마나 서러운지 한쪽 눈이 노랗게 썩어서
이미 눈인지 구별도 안되는 그런 두 눈을 뜨고는 죽은 것입니다.
이미 항문이 열려서 주먹이 왔다갔다할만큼 죽음을 준비하고 있는 몸에 비해서 그 넘은 그 질긴 목숨을 끊지못해서
25일 12시를 못 넘길 거라는 의사의 말에도 불구하고 계속 혈압 40/20의 혈압이라고 볼 수 없는 낮은 것으로 연명하면서
그 억울함에 쉽게 목숨도 안 끊어진 것입니다. 세상에 여러분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습니까?


사망 전 날인 25일 그 날 저녁 9시부터 의사는 갑자기 혈압이 떨어지기 시작했다고 우리보고 죽음을 준비하라고 했습니다.
비통한 마음에 죽음이 다가온 터라 가족면회가 허용이 되었습니다.
우리 가족이 들어가니까 그 때 혈압은 이미 40/20이였습니다.
세상에.. 그런데 어머니가..
"대용아, 엄마 버리지 말고 가지마. 부탁이야. 대용아 엄마,아빠버리지마.제발 살아줘. 대용아.."
하면서 엄마가 실신직전까지 가면서 울고불고 그 대용이의 형상이라고 볼 수없는 온통 찢겨진 몸과 얼굴과
갑자기 얼굴로 몰린 피 때문에 퉁퉁부은 얼굴을 마구 우시면서 쓰다듬으시니..
세상에 그 떨어지던 심박수가 올라가며 맥박과 혈압도 60/40까지 올라갔습니다.
이미 그 수치도 죽음에 가까운 수치였으나 저는 이 넘이 얼마나 가기싫으면 마지막 힘을 쓰면서 그럴까.. 해서
감출 수 없는 눈물에 그만 병원에서 오열을 했습니다.


그리고서 어머니가 실신직전으로 안정차 밖으로 나가시니 또다시 혈압은 무섭게 떨어졌습니다.
이젠 30/18까지 내려갔습니다. 저는 이미 할 수 없다는 생각으로 어머니에게 갔습니다.
그리고는 이미 남동생은 목숨이 다했으니 가는 길 힘들게 붙잡지말고 잘가게 하자고 했습니다.
이미 갈비뼈는 다 으스러지고 심장은 파열되고 얼굴은 입부터 귀까지 찢어지고 목부분은 그 찢어진 상처로 인해
대부분의 근육을 절단한 상태이므로 그리고 그 근육과 동맥절단과 심장이 파열된 충격으로 인해 뇌로 들어가는 산소가 중단되어
이미 한쪽뇌가 죽은 뇌경색,뇌사판정을 받은터라 살아난다해도 바보에다가 전신마비라는 어두운 진단을 받은 상태였습니다.
우리는 그런 대용이라도 살아남길.. 제발 살아남길 바랬던것입니다...


저의 간곡한 청에 어머니는 고개를 끄덕이시고는 병실로 돌아오셔서 우리가족모두가 대용이의 곁에 모여서 말했습니다.


엄마,아빠는 괜찮아. 누나가 네 몫까지 효도할께.


대용아 우리 걱정말고 이젠 고통받지말고 저 세상으로가서 편히쉬렴..


우리 대용이 착했잖아. 우리 걱정말고 잘 가...


이렇게 가족들이 말을 하기시작하자 갑자기 혈압수는 떨어지다가 순간 30으로올라가더니 0으로 되버리곤 죽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살아 생전에 어머니말씀을 그리 잘 듣더니 죽을 때도 이렇게 착하게 가다니.. 하면서 정말 눈물이 앞을 가려 그 날은 얼마나 울었는지 모릅니다.


그리고 그날 영안실로 데려가고 그 차가운 냉장실로 넣은 다음..
그 형제갈비는 흉악한 면모를 드러내기 시작했습니다.


대용이가 중환자실에 있을 때는 같이 며칠밤이고 같이 새더니 이젠 영안실로 내려가니
같이 밤새던 사람들은 오간데도 없고 몇 번 와서는 얼굴만 쏙 보이고는 안보이는 것입니다.


세상에.. 우리는 오직 대용이만 살기를 바랬던터라, 이젠 이 사고사라는 앞으로 다가올 힘든 투쟁은 전혀 몰랐던것입니다.


오늘은 영안실에 있는지 5일째 되는 날입니다.


그런데도 형제갈비는 합의라는 명목아래 우리에게 그것도 산재를 포함해서 어처구니없는 액수를 제시하고
그보다 더 우리를 비참하게 만드는 것은 영안실에서 3일장이 지나니 그 쪽에서 일방적으로 3일장까지의 비용과 식비를 계산해 버리고는
우리에게 부담시키고 맘대로 하라는 배짱으로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나 더 기가 막힌 것은..


사고는 22일날일어났고 남동생은 26일날 죽었습니다..
그런데!! 아직까지 형제갈비 사장은 구속조차 되지도 않았고..
주변말을 들으니 아마도 불구속입건에 벌금형이 언도 될 거라는 말이 들리는 겁니다.
그 사람말로 인하면 그런 일로 사장이 구속되면 맨날 대기업주들은 영창에 살겠네라는 냉담한 반응이였습니다.
또한 그 버튼 누른 애한테 남동생을 죽이려는 목적으로 버튼누르라고 시키지않았으니 구속이라고 볼 수 없다는 것입니다.
아니 버튼을 누른 것 이전에 제대로 된 안전시설도 없는 엘레베이터를 버젓이 아르바이트생을 시켜서 사용하게해서
이렇게 몸이 찢겨죽은 참혹한 사고가 났는데 이런 대답이라니..


정말 돈없고 빽없고 힘없는 저같은 서민들은 억울해서 살겠습니까?


내 아들, 내 동생 잃은 것도 서러운데..
그 들에겐 보상금조차 개처럼 구걸하면서 똥값을 받아야하고..
영안실엔 고작 한 번씩만 다녀가 죄송하다고 빌기는커녕..
거만하게 왔다가는 형제갈비측엔 전 정말 분노심에 어쩔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우리 친척들은 어쩌면 우리는 이렇게 힘이없니..하면서 눈물을 지으시고 우리는 최대한의 할 수 있는 일을 생각해 보아서
결론을 내린 것이 이렇게 돈과 권력으로 대항할 수 없으니 이렇게 억울한일을 언론에 알리자 라는 말이였습니다.


8개월동안 직원으로 성실하게 일했던 우리 대용이를 안전장치도 없는 화물용엘레베이터에 찢어 죽여놓고서는
오히려 큰소리치면서 우리보고 보상금 받아내려고 이런 수작거리아니냐는 수치심만 안겨놓은 이 형제갈비에게
우리는 이젠 아무것도 바라는 것이 없고, 다만 이 형제갈비를 주먹구구식 항변으로 망하게 하는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하고선
언니랑 저랑 어머니는 하얀소복을 입고 형제갈비 앞에 서서 대용이의 영정사진을 놓고 시위를 했습니다. 이젠 아무 것도 필요없습니다.
나에겐 오직 눈도 못 감고 죽은 온통 망신창이가 된 남동생의 마지막모습만 그려질 뿐..


여러분 도와주십시요!!!


세상에
이런 억울한 일이 어디있겠습니까?
남동생이 사고 당한 22일날 당일에도 형제갈비는 버젓이 영업을 했습니다.


내 동생이 심장이 부서지고 얼굴과 목이 찢겨져나간 비명속에서도
그들은 자신의 배부른 장사속을 채우려고 비열한 영업행위를 했던 것입니다.


우리 가족이 돈없고 힘없고 게다가 임대아파트에 사는 가난한 사람들이라해서 그들은 안타까워하기는 커녕
우리를 더욱더 멸시하고 사람을 죽여놓고서는 오히려 뻔뻔한 행동에 이 분함을 감출 수 없습니다.


저는 어떠한 권력으로 그 들에겐 대항 할 수 없습니다.


그 신촌갈비는 이미 신촌에서 30년간 장사를 해온 신촌지역 유지이고 우린 정말로 가난한 하루벌어 먹고사는 가족이니까요.


돈과 권력.


저에게 없는 그 것이 이렇게 저를 무력화 시키고 분함에 매일밤 원통함으로 잠 못 이루고
동생사진만 보고는 피눈물을 흐르게 하는 것이 될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저는 시위를 계속할것입니다.


소복을 입고 억울함에 눈도 못 감고 죽은 제 남동생의 얼굴을 그리며..
이제 겨우 꽃다운 스무살의 나이에 자기의 날개한번 제대로 펴지 못한 채
그대로 이 매정한 사회에서 고통속에서 비명횡사한 남동생을 생각하며..


이미 저의 삶은 없습니다.
저에게 남은 것은 투쟁!! 또 투쟁!!


그 비열한 형.제.갈.비.에게 최대한 할 수 있는 일은
대용이가 죽어가는 날까지도 장사를 하는 그 비열한 장사속을 다 짓이겨놓는 그런 방법 밖에 없습니다.


그들은 그 장사를 안해도 충분히 먹고 살겠지요.
하지만 제가 두 눈을 시퍼렇게 뜨고있는 한 장사를 못할 것 입니다.
죽을 때도 원통하게 죽고 이젠 갈 때도 맘대로 못 가는 불쌍한 제 남동생의 원귀가 저랑 함께 할 것입니다.


여러분 도와주세요.


형제갈비의 홈페이지는 http://www.koreanbbq.co.kr 입니다
전화는 365-0001~5,
팩스는 Fax:392~4949
이메일은 chantheman@koreanbbq.co.kr


여러분 탄원해주세요 억울하게 죽은.. 온 몸이 짓이겨죽은..
고통만으로 괴로운데 이렇게 죽은 후에도 원통한 제 남동생의 한을 풀어주세요.


부탁입니다.
제발....제 영혼을 팔아서도 이 은혜는 갚겠습니다.
이 글을 복사해서 그 어느 곳에서도 올려주세요.
도와주세요..


저는 지금 반쯤은 미쳐서 살고있습니다. 저의 가족모두다!!!


님의 한 말씀, 한 행위가 이 부당한 사회권력으로부터의 대항하는 힘에 보태주는 힘이 될 줄을 믿어 의심치 않겠습니다.


2001년 8월 30일


정.양.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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