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미국 테러 사건때문에 여기저기 게시판들이 어수선하죠? 하지만, 저는 변함없이 치료에 몰두하고 있습니다. 내일 지구가 멸망하더라도 1/4 프로스카와 미녹시딜을 바를 것임이 틀림 없기 때문입니다. 내 머리카락은 내 몸의 일부이며 내 몸은 내 인생 자체이므로, 그것들 모두 내가 살아있는한 소중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아침 문득 피나스트리드 임상실험 사진을 열어봤습니다. 대다모 초보 탈모자 길라잡이에도 있는 그림이죠. 거기 가장 높은 효과 그림 옆엔 5% 라고 적혀있습니다. 즉 2년뒤 그렇게 될 수 있는 사람은 전체 임상 대상자 중 5%라는거죠. 효과를 보는 비율은 80% 이상 되지만, 진정 원하는 만큼 효과를 볼 수 있는 경우는 사실 과반수도 안된다는 걸 의미합니다. 안타까운 현실이지요. ( 만일 혹시라도 업자님들이 이 글을 보시며 '거봐라...'는 식의 조소를 보낼 것을 우려해서 첨언하자면, 엉터리 주먹 구구식 발모제보다는 백번 효과가 좋습니다. )
몇개월 전만해도 그 사진(가장 높은 효과)을 보며 "내 초기상태가 이 사람보다 나쁘면 나빴지 더 좋진 않았구나."라고 생각하며 실의에 빠지곤 했습니다. 거울 두개로 비춰보면 정말 그건 사실이었습니다. 게다가 그 사람은 앞머리가 저보다 더 많은 경우죠. 그런데, 지금은 어떨까요? 분명 그 사람의 6개월 후 사진보다는 훨씬 좋은 상태입니다. 24개월 후 사진만큼 많아보이진 않지만, 그 사람처럼 특정부위에 구멍난 곳은 없으며, 거의 그 상황에 육박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과거에 분명히 제가 가졌던 그런 절망에 비해 지금은 작은 기적이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니까요...
하지만, 전 아직 모자를 벗지 않았습니다. 회사도 다행히 모자를 쓰고 근무할 수 있을만큼 자유롭습니다. 게다가 이미 저는 3개월 전 즈음 제가 겪고 있는 현실에 대해 윗분 몇분들에게 말씀드린터라, 모자를 쓰는 것에 대해 그리 구애받지 않습니다. 모자를 쓰는 이유는 두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당분간은 계속 하루에 두번 약을 발라야 하기 때문이고, 둘째는 아직 저 자신이 치료의 첫단계를 마무리지었다고 인정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제가 좀 외골수적인 면이 있어서 한 번 마음 먹은 일은 끝을 보기전까진 좀처럼 포기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그다지 좋은 버릇이 아닌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선 안되는 것이지만, 결국은 이런 집착이 제가 해야 할 업무들을 지지부진하게 만들어버렸습니다. 하지만, 절대로 이 고민에 빠져있는 것을, 올해를 넘기지 않겠노라고 말씀드렸고, 올해까지는 제 편의를 고려해주기로 하셨습니다.
몇일 전엔 사장님과 면담을 했습니다. 사장님은 아직 이런 상황을 모르고 계셨기에, 정말 시원할 정도로 제가 고민하고 있는 문제에 대해 서로 의견을 주고 받았습니다. 제가 정말 진솔하게 글을 쓸만큼 이런 문제에 대해 제 프라이버시를 고려하지 않을 수 있다면 좋겠지만, 아직은 아니기때문에, 몇가지 더 적고 싶은 제 상황에 대해서는 생략하려고 합니다.
어쨌든 사장님께 탈모 현상에 대해 과학적인 원리까지 설명드려가며, 탈모는 질병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남성은 5알파 환원효소라는 것을 가지고 있는데, 이것이 테오토스테론과 반응하면 DHT 가 되고 DHT 가 모낭의 수용체와 결합하면, 체외 물질로 인식되어 면역체계가 모낭을 공격하기 시작한다, 이런 메커니즘은 생명의 위협을 주는 여타의 심각한 질병이 갖는 메커니즘과 동일하다, 그래서 탈모는 유전병인 것이다... 몇 달 전에 다른 분들께 말씀드렸을 때도 그랬고, 사장님도 역시 그런 고민에 대해 사실상 이해하기는 어려웠을 겁니다. 하지만, 어떤 식으로든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은 인정해주시더군요. 탈모라는 고통의 본질에 대해서도 제 의견을 설명드렸습니다. 그리고 고통이라는 것을 다른 사람의 그것과 비교함으로써 상대적으로 위로받고자 하는 것은 잘 못된 생각이라는 것에도 서로 의견을 좁혀갈 수 있었습니다.
탈모의 고통을 설명하기 위해 단적인 예를 하나만 들겠습니다. 암이라는 질병을 우리가 직접 겪어보지 않고 그것이 그렇게 고통스러운지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단지, 암으로 인한 고통이 드라마나 매체를 통해 잘 알려져 있기 때문이지, 우리가 그 고통을 실제로 느낄 수 있기 때문은 아닙니다. 탈모는 어떤 이유에서든 암처럼 그 고통의 실체가 제대로 홍보되지 않은 질병일 뿐입니다. 첫째는 그 고통을 설명하는 자체가 쉽지 않고, 둘째는 탈모는 숨기고 싶은 질병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해봅니다.
탈모라는 고통은 암이나, 다른 생명을 위협하는 질병과 같이 매우 원초적인 것이라 생각합니다. 제가 말씀드리는 원초적이라는 것은 다른 어떤 설명이 필요없이 그냥 '아프다'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 아픔이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지?", "대인관계는?", "여자 친구는?" 과 같은 매우 이성적인 판단과 단순한 외모 문제에 의한 심적 스트레스로부터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자기 몸의 일부가 적잖이 빠른 속도로 하나 둘 떨어져 나가는 고통이 있습니다.
매우 오랜 시간 동안 변화되어가는 자신의 모습에 지속적으로 적응해야 하는 심적 부담감이 있습니다.
사회의 인식 - 또는 그런 인식이 아니더라도 - 문제로 대인 기피 증상이 나타납니다.
이 모든 고통이 무의지적인 운명으로 다가오고 이것은 심한 상실감과 무력감으로 이어집니다.
기타 수많은 복합 증상들이 존재합니다.
때로 어떤 의사는 결국 마음이 아픈 것이니, 탈모는 마음의 병이라고 말합니다. 저는 그런 의사에게 이렇게 말해주고 싶습니다. "그런 값싼 동정을 보일바엔 차라리 군소리 없이 프로스카 처방전이나 써주십시오."
마음은 곧 우리 몸의 일부입니다. 마음이 아프면 몸도 아픕니다. 그런데, 마음을 안아프도록 치료하면 문제는 전부 해결되어 있을까요? 아닙니다. 여전히 머리카락은 하나둘 떨어지고 있을 것입니다.
각설하고, 어쨌든 사장님과 의견을 나누며, 그렇게 자연스럽게 탈모에 대해 다른 사람과 이야기하고 있는 저를 발견하고는 조금은 대견스럽기까지 했습니다. 아직은 치료를 위해서도, 그리고 근 3년동안 탈모를 겪고, 근 1년간 혈투에 가까운 치료를 해오며 상처받고 지쳐버린 마음을 추스리기 위해 조금은 더 시간이 필요한 것이 사실입니다. 저는 매우 현실적인 사고 방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피나스트리드와 미녹시딜이라는 치료법이나마 존재하는 현실에 감사하고 있습니다. 다음 차세대 약이 나오면 좋겠지만, 그리고 분명 나올 것이지만, 저는 현실에 충실하고 현실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할 겁니다. 그것이 내가 사는 인생을 위해 내가 해야할 의무를 다하는 일이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대다모에 글을 남기며 몇가지 아쉬운 점들이 많았습니다. 그 중 저 자신으로 부터 생겨나는 아쉬움은 여전히 익명으로 글을 남기고, 내 본성을 감추기 위해 내가 자주 쓰는 말들이나, 유머를 의도적으로 자제해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럴 것만 같기에, 여전히 아쉬움이 남습니다. 혹 어느 시점에서 글을 올리는 일을 중단하기로 마음먹어버릴지도 모르겠습니다. 가끔 '리그로스'라는 제 아이디를 보며, 왜 내가 '리그로스'인가 하는 의문을 품게되곤 하거든요... 제 글을 읽고 무슨 이런 말도 안되는 의견을 펼치느냐, 무슨 사고방식이 그렇게 돼먹었냐 하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저는 그저 저 나름대로의 판단과 가치기준을 가진 인간일 뿐이고, 그런 문제로 논쟁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하여간, 넋두리인지 모를 꽤 길어져버린 이 글을 잠시 시간내서 적어봤습니다.
한가지 분명한 사실은 있습니다. 제가 결코 치료를 포기하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반드시 제가 의도한만큼 결과를 얻어내어 승리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절대로 가짜 발모제에 속는 일만 빼고는, 올바른 선택내에서 무슨 수를 써서든 쉽게 포기하지 말고 치료하세요.
탈모는 질병입니다. 질병은 치료해야되는 것입니다.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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