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까지 악몽속에서만 볼 수 있었던 훤한 정수리가 현실에 구현되었습니다.
언제부터 이지경이었는지, 너무 허허로운 기분이 들어 멍하니 앉아있다가, 휴대폰을 꺼내 한숨쉬며 정수리 사진을 찍어보고 머리 매무새를 만지고는 다시 사진을 찍어보곤 했습니다. 괜찮을거야. 괜찮은거야. 개뿔.
사실 친가쪽은 거의 대머리라서(아버지형제가 다섯분인데 한분제외 모조리 정수리부터 참사를...) 어린시절부터 각오는 했었지만, 막상 현실로 나타나니 그건 어마어마하더라구요.
몇날며칠을 고민하다가 뒤늦게 약을 먹어보기로 했죠. 프로페시아.
그렇게 인터넷을 뒤적거리길 오분정도 했나? 프로스카가 보이더군요. 우선 확연한 가격차이. 그리고 별 상관없는 주의사항. (모태는 아니지만 솔로입니다. 그래서 가임기 여성도 주변에 없고, 아이도 없고.) 그런데 병원에서 처방을 받기 힘들다네요.
몇몇분들이 말씀해주신 방법을 써보기로 했죠.
비뇨기과에 전화를 해서 프로스카 처방받을 수 있냐고 물어보고 가라.
그래서 전화를 했죠. 어느 여자가 받더군요. 탈모때문에 그러는데 프로스카를 처방받을 수 있냐고 물었습니다.
네 됩니다. 그런데 점심시간이 한시부터 두시까지입니다.
네 그럼 두시에 가겠습니다.
이게 왠걸 바로 됐습니다. 내가 운이 좋은건지, 원래 프로스카가 이런 물건인지. 여튼 한시간동안 몸단장을 하고 땀을 뻘뻘흘리며 병원으로 갔죠. 그런데 의사가 다른 병원에 진료를 받으러 가서 아직 오지 않았다네요. 그렇게 프로스카 기다리길 이십여분.
딸랑딸랑.
문이 열리고 조금 퉁퉁한 양반이 한명 나타나는데, 그의 머리는 너무나도 신뢰가 가질 않는 헐크호건의 머리같았습니다. 검은색과 노란색. 색깔이 조금 다르긴 하지만 그런 강력해 보이는 머리.
그는 병원이 제집인양 성큼성큼 걸어서 진료실 문을 열고 들어갔습니다. 심장이 쿵 소리를 내며 바닥을 쳐 신호를 보냅니다. 하지만 정수리의 머리카락이 빠져서 커다란 구멍이 생길때까지 아무런 느낌도 없었던, 그런 무신경한 저는 이번에도 아무 낌새를 알아차리지 못합니다.
곰아님 진료소로 들어가세요.
전화를 받았던 그 목소리가 저에게 진료소로 들어가라고 했습니다. 제가 전화로 프로스카를 문의한 사람인걸 알까요? 모를것 같기도 하고...
아무튼 저는 오분여를 사정하고 울부짖고 불쌍해보이려하고 때로는 침묵으로 시위했지만, 헐크호건의 머리같이 강력해 보이는 그런 머리의 주인은 마음도 강력했나봅니다.
사십세 이후에 오세요.
누구의 잘못일까요. 저? 아니면 전화를 받은 간호사? 아니면 철의 심장을 지닌 의사?
아니 그건 중요하지 않습니다. 전 또 도전 할 것이고 또 실패할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부산 사직동 인근에 프로스카를 친절하게 처방해주는 병원을 찾습니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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