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보다가 좋은글이 있어 소개합니다.
보통 몸에 난 털에 통틀어서 모발이라고 한다. 하지만 모발은 머리카락만을 가리키는 말이고, 사람의 몸에 난 털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머리카락을 비롯해서 눈썹과 턱수염, 구레나룻과 콧수염, 겨드랑이 털이며 생식기 주변의 털, 그리고 온몸에 수없이 돋아나 있는 잔 솜털까지….
털 중에서도 머리카락은 사람의 인상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많이들 신경을 쓰게 된다. 머리숱이 눈에 띌 정도로 적거나, 머리카락이 푸석푸석 윤기가 없으면 아무래도 신경이 쓰이게 마련이다. 특히 나이에 비해 흰머리가 너무 많다든지, 또 대머리인 경우에는 고민이 더 클 수밖에 없다.
한번은 50대 초반의 한 남자분이 진료실 문을 두드렸다. 언뜻 보기에도 머리카락이 젊은 사람 못지 않게 검었다. 이상하다 싶어 물어보니, 아니나 다를까 염색한 머리라고 했다. 보통 사람들보다 머리가 일찍부터 희어져 몇 년 전부터 염색을 해왔다는 것이다. 이분이 찾아온 이유는 머리카락 때문이 아니고 다른 불편한 증상으로 고생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입에서 냄새가 심하게 나면서 등이며 목이 늘 뻣뻣하고, 귀에서는 가끔 웅웅거리는 소리가 들린다고 했다. 아침에 자고 일어나도 영 개운치가 않으면서 눈까지 침침하단다.
증상을 자세히 들어보니까 원래 신장 기능이 좋지 않아서 피곤을 잘 느끼는 체질이었다. 나이에 비해 흰머리가 빨리, 그리고 많이 생긴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한의학에선 신장 기능이 나빠지면 머리카락이 나이보다 빨리 희어진다고 보는 까닭이다.
머리카락은 오장육부 중에서 신장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동의보감』의 A외형편 B을 보면 “신장은 털을 주관하며, 그 상태는 겉으로 머리카락에 나타난다”고 했다. 신장의 건강 상태를 알아보려면 머리카락을 보라는 말도 이런 원리에서 나온 것이다. 아직 이삼십대밖에 안 되었는데도 흰머리가 많이 난다든지, 이와 함께 목이 뻣뻣하고 구취가 심하든지, 귀에 매미가 한 마리 살고 있는 것처럼 웅웅거리면서 이명(耳鳴) 현상이 있는 사람은 신장 기능에 이상이 없는지 한번쯤 체크해보는 게 좋다. 이 모두가 같은 원인, 즉 신장이 허해졌을 때 나타나는 증상이기 때문이다. 생긴 대로 병이 온다는 차원에서 보자면 얼굴색이 검고 귀가 큰 사람들에게 이런 증상이 많이 나타난다.
그러면 흰머리는 몇 살 때부터 생기는 것이 정상적일까?
“여자는 35세에 얼굴이 마르고 머리카락이 빠지기 시작하다가, 42세가 되면 얼굴이 마르고 머리가 희어진다. 남자는 40세에 머리카락이 빠지고 치아에 윤기가 없어진다. 그리고 48세에 얼굴이 마르고 머리가 희어진다.”(『동의보감』 내경편)
머리가 희어지고 빠지는 것도 남녀별로 차이가 나는데 여자의 경우엔 30대 후반에서 40대 초반, 남자의 경우엔 40대 초반에서 40대 후반 사이에 변화가 일어나는 것이다. 그 이전에 머리카락이 유난히 많이 희어지거나 빠진다면 건강을 의심해봐야 한다. 성생활을 지나치게 즐기는 사람의 경우에 머리가 희끗희끗 세는 것도 심한 체력 낭비로 인해 신장이 허해졌기 때문이다.
또한 머리카락은 신장뿐만 아니라 혈(血)의 나머지라고 해서 혈의 상태에 따라 색깔과 광택이 달라진다. 혈이 왕성하면 머리카락에 윤기가 반질반질 나고, 혈이 부족해지면 윤기가 없어지면서 거칠고 뻣뻣하다. 더욱이 여성의 머리카락은 혈이 영화로움을 누려야 하는 부위이기 때문에, 혈이 부족해지면 곧바로 머리카락에 이상이 생긴다. 머리가 거칠어지고 갈라지며 때로는 탈모가 되기도 한다.
무리하게 다이어트를 하는 여성들이 많은데, 이는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한의학적으로 볼 때 여성은 원래 혈 위주로 되어 있어서 혈액이 충분하고 혈액 순환도 순조롭게 이루어져야만 건강하게 생활할 수 있다. 만약 지나친 다이어트로 혈이 부족해지거나 혈액 순환이 잘 되지 않으면 생리불순, 생리통, 빈혈 증상과 함께 머리카락이 빠지면서 윤기가 없어지고 푸석거리게 된다.
기(氣)도 머리카락에 영향을 미친다. 우리가 흔히 스트레스, 신경성이라고 말하는 것이 바로 한의학에서 얘기하는 기 순환 장애이다. 신경이 예민한 사람이나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사람은 몸 속에 화(火)가 쌓이는데, 이 화의 기운은 위쪽으로 떠오르면서 머리로 몰린다. 이렇게 되면 가슴이 두근거리고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면서 눈도 아프고 두통도 쉽게 찾아온다. 머리카락 역시 윤기를 잃고 푸석거리거나 흰머리가 많이 생기고, 마치 까치집처럼 들뜨게 된다. 머리는 본래 모든 양(陽)의 기운이 모이는 부위로, 거기에다 뜨거운 화의 기운까지 한꺼번에 몰려버리니까 머리카락에 치명적인 손상을 입히는 것이다.
옛날 이야기 중에 천자문을 하루 저녁에 다 외웠더니 다음날 아침 백발이 되었다는 얘기가 있다. 또 사형수들은 사형 언도를 받고 집행일을 기다리는 동안 거의 대부분이 백발이 된다고 한다. 매일 노심초사하면서 죽을 날만 기다리고 있으니 그 마음이 오죽하겠는가. 프랑스 왕비인 마리 앙트와네트도 단두대에 오르기 전날 밤, 너무나 절망한 끝에 단 하루만에 백발이 되었다는 얘기가 전해진다.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머리카락의 건강에 얼마나 치명적인 영향을 미치는지 잘 보여준다. 머리 군데군데 동전 모양처럼 둥그렇게 머리카락이 빠지는 원형 탈모증도 그 주된 원인은 스트레스이다.
머리카락이 너무 일찍 희어지거나 빠지는 데는 각 개인에 따라 원인이 다르므로 정확한 진단이 우선되어야 한다. 신장 기능이 허해진 것이 원인이라면 자음강화탕을 가감해서 처방하고, 혈이 부족해서라면 가미사물탕을 투여하면 좋은 효과를 볼 수 있다. 스트레스성이라고 판단되면 향사평위탕 등을 처방하게 된다.
아울러 탈모 증세가 있는 사람은 평상시 모발 건강에도 유의하는 것이 좋다. 우선, 땀을 흘린 뒤에는 가능하면 찬바람을 쐬지 않도록 한다. 땀을 흘린다는 건 땀구멍이 잔뜩 열려 있는 상태라는 말인데, 이때 찬바람을 쐬면 모근이 더욱 약해진다. 그리고 머리를 감고 나서 곧바로 찬바람을 쐬는 것도 아주 좋지 않다. 간혹 직장인들 중에 아침 시간이 바빠서인지 머리를 감고 나서 그대로 출근하는 사람이 있지만, 되도록 이런 행동은 삼가야 한다. 머리를 말릴 때도 반드시 따뜻한 바람으로 말리고 찬바람이나 선풍기 바람은 피해야 한다. 대중 목욕탕에 가보면 아무 생각 없이 선풍기를 틀어놓고 머리를 말리는 사람이 많다. 이는 모발 건강뿐만 아니라 두풍증을 일으키는 원인이 된다. 두풍증이란 중풍의 일종으로, 머릿속에 찬바람이 들어가면서 몸이 상하는 것이다. 두풍증에 걸리면 어지럼증이 생기고 속도 메슥거리면서 머리가 자꾸 흔들린다. 심할 경우엔 마비 증상이 올 수도 있으므로 각별히 조심해야 한다.
머리카락을 건강하게 지키려면 빗질도 상당히 중요하다. 탈모 때문에 고민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빗질하는 것을 두려워한다. 혹시 머리카락이 더 빠지는 건 아닐까 해서 손을 대기도 꺼려한다. 하지만 잘못된 상식이다. 빗질을 하면 자연스럽게 머리에 있는 혈들을 자극할 수가 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경락을 자극하는 셈이다. 이렇게 머리의 혈을 자극하면 혈액 순환이 잘 되면서 머리카락도 검어지고 윤기가 나게 된다. 빗 대신에 손가락으로 머리를 자주 쓸어 넘기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집에서도 간단하게 이용할 수 있는 약재로는 하수오가 있는데, 흰머리를 검게 하는 데 특히 효능이 뛰어나다. 하수오라는 이름의 유래를 더듬어보면 그 효능이 어느 정도일지 충분히 짐작해볼 수 있다. 중국 춘추 시대 때 ‘하공’이란 임금이 있었다고 한다. 그는 천하를 다스리는 최고 권력자였지만 머리카락이 일찍부터 세서 무척이나 고민했다. 온갖 약을 다 써보았지만 도무지 효험이 없었다. 그런데 하수오로 처방한 약을 복용한 후로는 백발이 서서히 검은색으로 변해서 마침내 고민을 해결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를 본 사람들이 하공의 머리가 까마귀처럼 검게 변했다고 수군거린 데서 ‘하수오’란 이름이 생겨난 것이다. 하공의 성인 ‘하(何)’에 ‘머리 수(首)’자와 ‘까마귀 오(烏)’자를 써서 ‘하공의 머리카락이 까마귀처럼 검다’는 뜻이다.
하수오는 체내의 혈액 순환을 좋게 하며 불면증, 오래 된 설사, 어지럼증, 노인성 동맥경화에도 효과가 있다. 『동의보감』에는 “하수오를 오랫동안 복용하면 수염과 정력이 강해져서 골수가 넘치고 불로장생한다”고 했다.
하수오를 이용할 때는 다음과 같은 방법으로 한다. 먼저 하수오와 볶은 참깨를 섞어서, 여기에 꿀을 조금 넣고 걸쭉해질 때까지 끓여 둔다. 이것을 하루에 두 숟갈씩 먹으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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