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03-03
대머리는 최하급의 남자?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이다.
한 여자가 친구를 통해 사람을 소개 받았다.
그런데 나온 남자가 소위 주변머리(?)가 없다는 M자형 탈모 환자였다.
씩씩거리며 돌아온 여자, 친구에게 전화를 건다.
"얘, 너 나한테 감정있니? 어떻게 그런 남자를 소개시켜 주니?"
"머리숱이 적어서 외모가 좀 그렇긴 하지만..
얘기해보면 알겠지만 성격은 참 좋은 사람이야."
친구에 말에 이 여자는 이렇게 대꾸한다.
"성격 같은건 알고 싶지도 않아."
결혼정보 회사 같은데서 원하는 배우자의 조건 같은 것을 설문조사 하면 언제나 1위에 오르는 것은 '성격'이었다.
그러나 설문조사에 응하는 모범답안과 실제 상황에서의 우선순위는 다른 것일까?
어느 제약회사가 실시한 또 다른 설문조사에서는 조사 대상자인 미혼 여성들의 82%가 소개팅에서 대머리를 만났을 경우 그냥 나와버리거나 대화는 하되 다시는 안만나겠다고 대답했다한다.
이것은 우리 나라 여성들이 이성의 성격을 우선으로는 두되, 외모 역시 필요충분의 조건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증거가 된다.
위의 예는 어느 인터넷 탈모동호인 사이트에 실제로 올라온 글을 각색한 것이다.
물론 모든 여자가 위의 사례에 나온 여자들 같다면 100만명에 달하는 한국의 대머리들은 결혼을 포기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오늘 방영된 MBC의 어느 드라마에서는 위와 비슷한 상황이 연출됐다.
짝사랑하는 남자가 노처녀에게 선배를 소개시켜 줬는데, 그에 대한 불만을 타인에게 터뜨리며 한 대사이다.
"대머리나 소개해 주지 않나..."
이 말은 남자가 머리숱이 없다는 것은 심각한 결격사유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대머리라는 결격 사유 앞에서는 남자의 경제적 능력도, 사회적 성취도, 주변 대인관계도 무가치하다는 것이다.
사소한 대사 한마디에서 우리사회에 뿌리깊게 박혀 있는 외모 지상주의를 엿볼 수 있다.
우리 사회의 외모에 대한 편견은 생각보다 심각한 것이어서, 당사자인 탈모 환자들은 심각한 정신적 공황을 겪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말 살기 싫어지는군요...
그렇다고 죽을 용기도 없으니 사람 미치겠군요....
저 이제 21살입니다...그런데..이게 뭔지...
정수리까지 침투 했군요...
살기 싫습니다..."
"10번 정도 선을 본것 같은데 선 다신 보기 싫어지네요 언젠간 탈모 정도는 이해 해 줄 내 님이 있을 거라 생각하지만 휴~ 언제나 만날수 있을까나.
아무리 마음이 통해도 첫 인상이라는 게 무지 중요한가봐요 두달이상을 못 가더군요
대머리에겐 사랑도 없을까요"
"보통 다른 분들은 머리 까지기 전에 결혼해라고 하는데요..
저는 그것이 더 두렵습니다..
만약 제 애인이랑 결혼했다고 하고....신혼 1년차에 제가 머리가 훌떡 벗겨지면..ㅠ.ㅠ
저는 뭐 그렇다 치더라도..저랑 결혼한 여친이 너무 불쌍해질 것 같습니다.."
"그러한데 자꾸 머리가지고 절 비웃고 놀리고 심지어는 아무 이유 없이 저에게 화까지 내며 막 대하는 인간들 더이상은 참을 수 없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인간이라는 존재들 저를 비롯해서 악은 감출 수 없나 봅니다.
이제 저도 남들이 그러하듯이 죽일겁니다.
죽일 명단은 절 놀리는 선배들 친구들 가까운 곳에 살면서 절 무시하며 학대 비슷하게 절 막 대한 인간들 목록을 2일 동안 작성 했습니다...
죽여 버릴 겁니다.죽이면서 그들이 나에게 느끼게 해줬던 고통 공포 절망을 뼈저리게 느끼게 해 줄겁니다..."
탈모 환자들이 회원인 어느 사이트에 올라온 이 게시물들을 보면 탈모 환자들이 겪는 정신적 고통이 얼마만큼 큰 것인지 엿볼 수 있다.
술자리 같은 데서 장난처럼 오가는 머리에 대한 우스개가 우울증이 될만큼 스트레스로 쌓여 가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어느 고등학교에서는 선생님에게 수업 중 모자를 벗을 것을 강요당한 어느 고등학생이 창밖으로 투신 자살하는 일이 있었다.
이 학생은 심각한 탈모로 학급에서 놀림받고 있었다.
또한 명문대를 졸업하고서도 번번히 면접에서 퇴짜를 맞은 어느 탈모환자는 그것이 외모 때문이라며 비관 자살하는 일도 있었다.
외모 때문에 탈모 환자들이 겪는 사회적 불평등은 생각보다 심각하다.
흔히 만화나 영화등의 매체에서 대머리는 탐욕스럽고, 저질스럽게 묘사된다.
영화 301-302에서 의붓딸을 성추행하는 의붓아버지는 대머리이다.
오스틴 파워에서 세계 정복을 꿈꾸는 악당 역시 대머리였다.
그것은 슈퍼맨의 렉스 루더도 역시 마찬가지 였다.
양들의 침묵에서 렉터 박사 역시 대머리로 묘사되고 있다.
대머리의 전형을 만들고 그것을 사회적인 통념으로 발전시키고 있다면 지나친 추론일까?
또한 대머리는 유머나 코메디의 소재로 많이 활용된다.
가수 설운도, 배우 이덕화의 가발이 토크쇼의 양념으로 등장하는 것 처럼.
머리숱이 많은 일반인들은 대머리 유머를 통해 상대적 우월감을 가질지는 모르나, 당사자인 탈모 환자들이 겪는 고통을 생각한다면 쉽게 웃어 넘길 수 없을 것이다.
연애, 결혼 그리고 취업에서 탈모 환자들이 겪는 불이익은 생각보다 심각한 것이다.
국내 유수의 어느 결혼 정보회사는 회원 가입 조건에 아예 대머리는 가입을 할 수 없도록 해 놓았다.
회사의 이미지가 실추한다는 것이 그 이유이다.
외국에서 박사학위를 받았건, 유망 기업의 대표이사건 대머리는 회원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전문직이나 경력자의 경우는 조금 덜하지만, 신입사원 공채시 탈모 환자들이 면접에서 받는 불이익도 상당히 큰 것으로 나타났다.
기업에서 영업직이나, 대인업무직에서는 외모를 중시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정작 탈모 환자 본인도 외모에 대한 컴플렉스 때문에 면접에 자신감을 잃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어느 대학생 탈모환자는 수업중 모자를 벗을 것을 요구하는 교수와 다투다가 스스로 학업을 포기한 경우도 있었다.
모자를 벗는 것이 학업을 포기하는 것보다 더 어려웠다는 것은 일상생활에서 탈모환자들이 타인의 시선을 얼마나 많이 의식하는 가를 보여주는 예가 된다.
"상대방의 시선이 위로 올라가면 나도 모르게 식은땀이 나요."
사회적 편견은 탈모환자들의 성격까지 바꾸어 놓는다.
사교적이고 활발하던 성격의 사람이 20대 초반부터 탈모가 시작되면서 대인기피증에 외출을 꺼려하는 폐쇄적인 성격으로 바뀌는 경우도 많이 있다.
어느 탈모환자는 대머리에 대한 편견이 심한 한국을 탈출해 아예 미국으로 이민을 가버렸다.
"언제 또,나의 탈모가 이야기가 나올까 걱정,,,, 도저히 회사 가기가
두렵고 힘들고 친구 조차 만나기가 힘들었습니다.
아마 제 옆에 집사람이 없었으면 전 정신병원에 있었을 겁니다.
그러던 어느날 집사람이 미국을 가자고 하더군요.미국가면 머리때문에
놀림을 받지 않을꺼라면서 미국을 가자고 했습니다.
그렇게 한국을
도망쳐 온지 3년 반이 지났습니다."
20세기말 인류는 유전자 지도를 손에 넣었지만, 21세기에 들어선 지금도 탈모를 정복하는 일은 아직도 요원하다.
두타스테리드라는 신약이 발매를 앞두고 있지만, 이 약 역시 탈모의 진행을 막아줄 뿐, 사라진 머리를 돌려줄 수는 없다고 한다.
모발 이식술 역시 현재는 최선의 대안으로 각광받고 있지만 옮겨 심을 수 있는 모발의 숫자가 한정되어 있고, 많은 비용이 소모되며, 탈모가 계속 진행된다면 더욱 보기 흉한 모습으로 변할 수도 있어 한계로 지적되고 있다.
외모를 이유로 불평등이 강요되는 세상은 그리 성숙한 사회라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더구나 탈모 환자들의 심각한 정신적 고통을 외면한채 대머리를 한낱 우스갯거리로 여기는 사회는 건강하다고 할 수 없다.
탈모를 하나의 질환으로 생각하고 탈모환자들을 따뜻하게 격려할 수 있는 사회가 아쉽다.
모든 탈모환자들이 기다리는 대머리를 완전히 정복할 수 있는 기적의 신약이 더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나올 수 있다면 그 전까지만이라도 그들이 겪는 정신적 고통을 덜어주는 것이 함께 살아가는 미덕이 아닐까?
조은규 기자(
eun69@hotmail.com)
<인터넷신문 OhmyNews.com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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