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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

  • 24년 전

  • 1,266
0
원데이입니다. 오랜만에 쓰는 글이군요. ^^
전 이상하게 우리들의 이야기는 잘 않가고 모발이식 게시판은 자주 와서 지켜보는데 저두 간만에 글을 올릴까 합니다. 글이 약간 딱딱하게 느낄지도 모르는데 그래도 이게 제 심정을 잘 전달해줄거 같아서 이렇게 쓰는 것이니 양해바랍니다.

나의 탈모는 95년도 대학교 1학년때부터 시작됐다. 그때만 하더라도 그래도 스타일이 나름대로 괜찮았다. 올백을 해도 멋있게 올라갔고 다만 엠자부분이 서서히 까지려는 징조가 이제 막 나타나려고 했었던 시기다. 외모에 어느정도 자신이 있었기에 항상 떳떳하고 자신감이 이빠이였던 시기였다.
대학1학년 갓입학해서 누나들에게 인기도 있었고 이제부턴 내 세상이다라는 다소 허황된 욕심도 가졌었다. 울 가족이 갑자기 이민을 뉴질랜드로 가버렸다. 96년도부터 갑자기 찾아온 탈모는 나에게 엄청난 충격을 가져다 주었다. 그전엔 염색도 한번 했었고 머리도 찰랑거렸던 내머리인데...
머리를 감으면 100개이상씩 빠졌으니까...그렇게 서서히 발전되었던 탈모량은 갈수록 증가되어갔고..
안타깝기만 했다. 내 나이가 그당시 팔팔하게 뛰어놀 나이고 여자경험도 있었어야 했는데...갈수록 나의 자신감은 바닥을 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서..언제부터인가 여자에게 너무도 소극적이고 눈도 못마주칠 정도로 성격이 어긋나기 시작했다. 설마 탈모가 사람의 성격까지 이렇게 x같이 철저히 망가뜨릴지는 전에는 미처 몰랐었다. 어느 새 사진찍기를 무척 좋아했던 내가 그때부터 사진찍기를 넘 싫어했었던거 같다...그댸만 하더라도 탈모의 지식이 별로 없었기 땜에..설마 내가 대머리가 될까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스트레스성인가 싶어서 관리좀 잘해주고 하면 다시 원상복구 되겠지..라는 사고를 가진것부터 엄청난 실수였다. x발....진작 병원에 가서 상담이나 받아볼걸...
97, 98년도엔 나의 탈모가 절정에 달했다...주위사람들이 날 보면 한마디씩 했으니까..그때마다 넘 맘이 아팠다. 여자친구 만드는건 꿈도 못꿨다...그래도 장소가 뉴질랜드라서 주위의 시선은 한국에 비하면 훨씬 나았던 편이다. 하지만 나로써는 자나깨나 머리생각뿐이었고, 그때부터 대다모와 인연을 맺었던거 같다. 99년도엔 난 자살까진 아니지만 내 삶의 희망을 포기했을 정도였다...머리가 없어서...x발...그깟 머리 없다는 이유로 주위의 냉대, 비웃음을 받아들이기가 너무도 힘들었다...억울했다...
남과 비교해서 꿀릴게 있다면 머리카락이 적다는 것뿐인데 이런것으로 사람의 모든것을 평가하는 사회분위기...여자들이 시집가기 젤 싫은 남자가 대머리라던데...장가는 못가더라도 여자친구는 정말 갖고 싶었다. 솔직히 말해서 난 여자를 무지 밝힌다. 자위를 맬 해야 직성이 풀리고 나의 타고난 정력은 뭣때문일까라는 의구심이 들 정도다. 그런 내가 욕구해소를 못해 혼자 셀프써비스나 해야하는 내 자신이 가끔은 초라해보인다...이렇게 살기 싫다...이젠 지긋지긋할 정도다...
2000년도의 내 머리는 그야말로 가관이었다. 난 한국으로 가서 수술이고 뭐고 감당할수 없으니 부모님께 가발이나 해주라고 그렜다. 그럴때마다 난 한심한 xx새끼라는 말만 듣고 기어코 가발은 못했다.
그때의 내 스탈은 유전적인 요소와 과도한 스트레스성이 합쳐진 과잉탈모였다. 박영규보다 훨씬 심한 상태였으니 말이다. 난 정말이지 왜 사는가 싶었고 순간적으로 자살할까..라는 기분도 몇번이나 들었을 정도다...그때 당시 난 대학졸업반이었었는데...기숙사 생활을 했다. 한국사람들도 많았던 편이었는데 그게 싫어서 흡연도 흡연지역에서 피지않구 내 방안의 화장실에서 몰래 피웠을 정도니 내 자신이 얼마나 싫었었는지는 아마 짐작이 갈것이다. 특별한 일을 빼놓고는 방밖으로 나가지 않는 방콕생활을 내내 했었을 정도니까...
프로페시아를 먹기 시작했다. 담배도 끊기 시작했고 틈만 나면 두피마사지, 가공식품 일절금지. 술도 끊고 심지어는 벌침까지 머리에 맞아가며 조금의 가능성에 기대를 걸었다...조금 나아졌다. 특히 정수리부분이. 그리고 머리가 확실히 덜빠졌던거 같다.
그리고 나서 2002년 1월에 한국에 와서 모발이식수술을 했다. 정말 큰맘 먹고 한것이다. 난 원래 주사공포증이 있는 놈이라 죽어도 수술은 못할줄 알았는데 이놈의 머리땜에 그 고통을 참느라 애먹었다.
어디라고는 공개적으로 말 않겠다..7개월이 지난 지금은 그래도 이전과 비교하면 상당히 호전된거 같다. 하지만 밀도가 여전히 부족하고 예전의 탈모가 심했기에 이정도로는 성에 차지않는 것이 사실이다. 1번으로는 별로 기대에 못미친다...어느병원에서 하건 별 차이는 없을 것이다...적어도 2번은 해야한다, 정말 만족하려면 3번은 해야하겠지...하지만 그것도 어느정도 머리숱이 있어야 가능한거고, 3번하면 뒷통수의 피같은 고통이 수반되어야 할텐데..솔직히 좀 꺼림직하긴 하다. 비용도 비용이지만...
주위에서는...내모습을 보구 마니 좋아졌다고 말한다...하지만 난 아직도 마니 부족하다고 생각된다.
앞으로는 더이상의 수술생각은 없을거 같다. 두타나오면 그거 열심히 복용하고 나중에 유전자 복제 기술이 개발되서 10000개이상의 머리털을 대량으로 심느날만 기대한다.

긴 저의 경험담 읽느라 수고하셨습니다~ ^^
오랜만에 쓰려니 손이 아프군요.
멀털 마니마니 나세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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