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맛나는 세상입니다. 몇 달 전만해도 머리 때문에 생쑈를 하던 기억이...
감사합니다. 대다모 고수 분들의 가르침을 이어받아 열심히 수련한 결과
머리내공수위 9성(90%정도의 회복률)의 경지에 다다르게 되었습니다.
참 신기했습니다. 이곳에서 글을 읽으면서 탈모인의 생활패턴이나
행동양식, 심리상태가 어찌 이리도 비슷할 수가 있는 것일까?
때문에 한참 머리 빠졌던 그 당시에도 다소 씁쓸한 면도 있었지만, 마구 웃어대며
먼가 모를 공감대를 이루어 나가곤 했었지요.
몇 가지를 소개하자면 이렇습니다.
우선 우리가 이 비극적인 사실을 처음으로 접하는 곳은 대개 미용실로 부터라는 사실.
그동안 머리숱 많아서 주체를 할 수 없고 맨날 숱치고 젤 듬뿍 발라도 아무문제 없던,
친구들로부터 한 머리구멍에서 머리털 3개가 함께 나고 있다며 놀라움의 대상이 되고,
머리카락 싸움에서 한번도 패배한 적이 없던 우리의 고품격 명품 머리카락은
기나긴 투쟁의 시련을 알기라도 하는 듯 힘없이 축축 쳐지기만 합니다.
결국 지금까지 다니던 시내의 "잘나가~ 미용실" 같은 곳은 그냥 처다만 보게 되고
그 후론 집 근처 구석의 손님도 별로 없고 나이 많은 아줌마나 할머니들 많이 오는
"이런 곳도? 미용실"을 선호하게 됩니다. 그뿐입니까 그전엔 머리감고 린스하고
드라이하고 젤 듬뿍 스타일 쫘악 살려서 당당하게 미용실을 박차고 나왔지만,
그 뒤론 미용실 아줌마가 얘기도 하기 전에 "저기요 쫌 있다가 목욕탕 갈거 거든요..."
라고 말하며 미용실 나와서는 초스피드로 집까지 냅따 뛰어가는 우리의 모습.
또한 탈모를 첨 알게 되고 점차 진행돼 가면서 따뜻한 햇살, 시원한 바람, 촉촉한 빗방울....
이런 것들에는 아주 치가 떨리게 됩니다. 온 천하 만민들에게
"나 머리 빠지고 있다~~~"를 자연스레 알게 해주는 아주 고마운 자연현상 3총사라고
할수 있지요. 탈모인들 사이에서 가장신성시 되고, 밤하늘에서 화성을 볼수
있었던 것보다 더욱 가슴에 와 닿는 초자연적인 현상. 뭔지 아십니까! 바로
‘바람 부는 여우비 오는 날’ 입니다. 아주 죽음입니다. 호랑이가 장가를 가든
여우가 시집을 가든 그냥 집에 있는 게 상책입니다.
이렇게 날씨에 민감해지고 낮보다는 밤에 자신감 충만해지며, 나무그늘을
사랑하게 되는 사이 우리 탈모인들 에게는 일반인에게서는 볼 수 없는
신비한 능력이 생기게 됩니다.
바로 시각과 청각의 발달이 그것입니다.
우리의 눈은 아무도 못 속입니다. 아무리 자연스러운 이마라인과 옆, 뒷머리와를
조화를 강조하는 가발이라도, 그래서 그것이 일반인들의 눈을 비웃고 있다하더라도
우리의 시야는 못 벗어납니다.
우리의 청각은 또 어떻습니까? 어디선가 엠, 대, 속알, 등의 단어가 들리면 갑자기
심장박동수가 증가하며 식은땀 찔끔, 얼굴이 울그락 불그락 아주 즉각 반응합니다.
시끌벅적한 술집에서도 누군가의 아주 작은 속삭임 속에서도 가끔은 입 모양만으로도
소머즈와도 같이 잘 들립니다. 언젠가 밥을 먹으면서 게임케이블TV를 보는데 대뜸 해설자가
말하길 "아 드디어 나왔습니다. 아무개 선수의 전매특허 엠신공!!!" 이러는 것이었습니다.
세상에 밥숟갈 놓고 말았습니다 --; (워3하시는 분들은 아실 겁니다. ㅋㅋ)
또 비슷한게 있습니다. 더 이상 길거리의 섹쉬하고 이쁜 여자들이 우리의 관심의
대상이 아니라는 점. 우리의 관심사는 어느새 아주 빽빽한 머리숱을 자랑하는
남자들이라는 사실입니다.(오해하진 마시길...^^;) 머리에 온갖종류의 색칠을 하며
바람머리 휘날리는 남자들, 젤이나 왁스로 떡칠하고 다니는 애들!! 입 딱 벌어지면서
고개 돌아갑니다. 레게머리, 양동근머리하고 다니는 녀석들!! 존경스럽습니다. @.@
어느새 남자를 판단하는 기준이 머리숱많은 남자와 그렇지 않은 남자로 바뀌면서
거리에서나 지하철에서 구걸하는 사람들(이런사람들은 꼭 머리숱 장난아니죠)이
오히려 부러울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가끔 흑인같은 곱슬머리, 철사머리라 어떻게
도져히 스탈안나오고 감당을 못할 것 같은, 그래도 머리숱 열라 많은 사람의 뒷모습을
쳐다보면서, 이런 생각을 합니다. “스탈 안나오고 젠장 돼지털이고 얼굴도 못생겨도
좋으니 머리만 많았으면....“
이런 일들외에 또 많은 일들이 우리를 힘빠지게 하고 의기소침하게 하지만 우리가
가장 힘들어하고 소주잔 기울이며 눈물짓게 만드는건 뭐니 뭐니해도 여자문제가
아닐까 싶습니다. 이곳 대다모 회원분들은 대부분 20대에서 30대의 가장 활기넘치고
정력짱인 대한민국 1등급 남성들 아닙니까!! 그러니 여자친구 만나서 데이트도 많이
하고 가끔은 눌러도 주고(^^;) 해야 할텐데. 아니뭐 거기까진 아니더라도 말입니다.
그동안 여자에 얽힌 기구한 사연들 참 많더라구요. 학교에서, 직장에서, 지하철에서,
소개팅 미팅 혹은 맞선보다가, 나이트에서(전에 큰일한번 났었죠) 등등 여자들과 얽힌
얘기들은 대부분 씁쓸하고 한숨짓게 또는 뚜껑 열리게 만들더군요. 그래서 인지
탈모를 극복하고 여자친구를 만나신 분들에겐 더 많은 찬사와 축하의 메시지를
보냈던게 아니가 싶습니다.
제가 직간접적으로 경험을 해본결과 또한 이곳 많은 회원님들의 의견을 다수 참조
해 얘기를 하자면, 세상에는 남자가 탈모든 아니든 상관안하는 여자들도 분명 있습니다.
하지만 많은수의 여자들은 머리숱 없는 남자를 보통남자들하고 똑같이 보진 않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탈모신경 안쓰는 여자가 특별히 착하고, 천사고, 대머리 싫어한다고
특별히 못되먹고, 재수없는 여자라고 말은 못할 것 같습니다.
솔직히 얼굴 못생기거나, 뚱뚱하거나 혹은 소위 껌딱지(여자분들에겐 죄송^^;)인
여자들 보면서 우리 남자들이 뿜어내는 표현들과 표정들이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지
않습니까. 그런거 그냥 자연스럽잖아요.
저는 이제 거의 예전처럼(벌써 5년전이군...) 되어가고 있고, 신비한 시각과 청각의
능력도 점점 사라져 가고 있습니다. 물론 아직도 매일 똑같은 시간에 약을 먹고 있고,
거울보면서 머리다시 빠지는게 아닌가 걱정도 하고 있습니다만 이제 앞으로는 아마
이곳 대다모로 향하는 발길도 서서히 줄어들지 않을까 싶습니다.
제가 대학 1학년때(한참 젤떡칠하고 다닐당시) 정수리 뻥뚤린 맘씨 좋고 성격 좋은 4학년
선배가 있었는데, 친해서 그랬기도 했지만 제가 엄청 놀려먹었었습니다. 제가 한참
머리빠질때 부모님 원망도 해보고 불행한 운명탓도 해보고 다 해봤지만, 이 형한테
정말 미안한 마음도 들더라구요. 겉으로는 웃었지만 그때 그형 속으로 얼마나 맘 아팠을까
집에서 혼자 소주 몇병이나 깠을까 --;
머리 빠지면서 제가 확실하게 깨우친 게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사람이 어디하나
부족하거나 모자란다고 해서 깔보거나 우습게보지 말아야겠구나 하는 것입니다.
비단 우리와 같은 탈모의 경우가 아니더라도 장애인이라던가 화상을 입은 환자, 뚱뚱한
사람 등등해서 뭐 심각하게 이런거 저런거 안따지고라도 그냥 겉모습 때문에 이 사회에서
무시당하고 홀대 받는 사람들 많지 않습니까?
많은 분들에게 좀 죄송하긴 하지만 전 요즘 해방감에 젖어있습니다. 탈모초기에 잡은경우가
아닙니다. 대학 2학년때부터 약6년간이었습니다. 끔찍하게 힘들었기 때문에 누구보다 탈모의
고통 절실하게 잘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만큼 더 좋습니다. 아무쪼록 여기계신 모든분들도
그런 해방감을 맛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저도 되었으니 여러분도 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첨엔 우스갯소리 비슷하게 시작했다가 저도 모르게 약간 비장하게 되었습니다.
아무래도 주관적인 글이 되놔서 제 의도와는 달리 혹시라도 심기가 불편하신 분들이
생기진 않을까 걱정도 됩니다. 아무쪼록 좋은쪽으로 받아들여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럼 머리숱이 없든 얼굴이 찌그러졌든 다리가 무다리든 편견없는 시선으로 사람들을
바라보는 그날이 오기를 바라며 이만 줄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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