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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동건이랑 반대로 생겨서 다행이에요(원본입니다)

  • 22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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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동건이랑 반대로 생겨서 다행이에요”
'얼짱'을 논하는 시대에 대머리로 살아가기

기사전송 기사프린트 박상규(comune) 기자





▲ 탈모가 진행되면서 내게 가장 어울리는 '헤어스타일'은 이렇게 짧게 자르는 것이다.

ⓒ2004 박상규


고등학교 3학년 때까지 아궁이에 불을 지펴야 하는 산골에서, 엄마가 아닌 아버지와 단 둘이 살았던 난 속된 말로 표현하면 그야말로 순도 100퍼센트의 ‘촌스러움의 결정체’였다. 이런 내가 대학에, 그것도 여자가 3분의 2 이상 차지하는 학과에 입학했을 때 여자 동기들은 모두들 나의 촌스러움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동기들은 내 나이가 재수를 해서 고작 21살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믿지 않았고, 언제인가부터 내 별명은 ‘산적’이 되었다. 친구들은 산골에 있어야 할 산적 아저씨가 어떻게 대학에 왔느냐는 반응이었다. 그만큼 나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나이가 많아 보였던 것이다.

친했던 여자 동기들 몇몇은 언제나 엄마처럼 나를 챙겨줬다. 어색한 내 옷 매무새를 고쳐 주었고, 내게는 어떤 옷이 잘 어울리는가를 이야기 해 주며 코디해 주었다. 또한 미장원에 데려 가기도 했으며 안경테를 골라 주는 친구도 있었다.

나에게서 지나치게 늙어 보이는 모습을 없애려는 친구들의 노력은 눈물겨웠지만 허탈하게도 내 모습은 언제나 그들의 노력을 배신했다. 그래도 착한 동기들은 언제나 웃으며 나를 위로했다.

“상규야, 괜찮아. 너무 좌절하지 마. 원래 너처럼 젊어서 늙어 보이는 사람들은 시간이 지나도 늙지 않고 그대로 유지가 되거든. 나중에 넌 지금과 반대로 젊어 보일 거야”

나름대로 신빙성 있던 그 말을 난 철석같이 믿었다. 그러나 요즘의 내 모습은 10년 전 친구들의 위로를 무색케 한다! 물론 친구들도 과거 자신들의 위로를 적나라하게 배신하는 현재의 내 모습에 적지 않게 당혹해 하고 있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고 했지만, 내게 피는 물보다 진한 것이 아니라 ‘징’하다.

아버지는 조금 심한 대머리셨다. 굳이 비교를 하자면, 전 재산이 29만원밖에 없다면서 해외관광을 다니는 전직 모 대통령과 비슷했다. 만약 연예인이셨다면 아버지는 분명 방송 출연을 금지 당했을 것이다.

다른 건 다 좋으니 정말이지 대머리 유전만은 나를 비켜가기를 바랐다. 정말이지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바라고 또 바랐다. 그리고 하느님이 보우하사 내 머리는 아마존 밀림처럼 빼곡하고 무성할 것이라 조심스럽게 전망하기도 했다.

그러나 역시 난 아버지의 아들이었고, 붉은 피로 맺어진 유전의 힘은 그 어떤 내 소망보다 강력했다. 대학을 졸업하던 27살 때부터 내 머리는 조금씩 유전자의 힘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탈모의 시작. 그건 내 절망의 출발이었다.

군대를 갓 제대한 사람에게 최대의 악몽이 다시 군대에 입대하는 꿈이라면, 나처럼 탈모가 진행 중인 사람에게 가장 큰 악몽은 머리가 몽땅 빠져버린 자신을 대면하는 꿈이다. 지금까지 이런 꿈 때문에 화들짝 놀라 잠에서 깨어난 적은 이루 헤아릴 수 없다.

탈모가 진행되면서 가장 어색한 건 바로 거울 속의 내 모습이다. 아주 조금씩, 그러나 꾸준히 뒤로 후퇴하는 내 머리카락 경계선과 갈수록 넓어지는 내 이마는 보고 또 봐도 새롭다. 나날이 변화하는 자기 모습을 지켜보는 일처럼 적응 안 되는 일도 드문 것 같다. 심할 땐 내가 어떻게 생겼는지 종종 까먹기도 한다.

가끔 머리카락이 뽑힌 자리에 다시 싱싱한 머리가 솟아 있는 걸 발견한다. 그런 머리카락을 바라보면 정말이지 광활한 만주 벌판에 외롭지만 의연하게 피어있는 야생화의 비장함이 느껴진다. 그런 머리카락은 내 희망의 징표이기도 하다.

그러나 며칠이 지나 그 머리카락이 다시 추풍낙엽처럼 어디론가 사라져버리고 스산한 기운마저 감돌고 외려 더 공허해진 내 이마와 두피를 바라볼 때면, 정녕 그대는 날 버리고 떠나는 새침데기인가 하고 나는 아쉬워한다.



▲ 모자가 없으면 겨울에는 춥고, 여름엔 뜨거운 게 대머리의 비애가 아닐까.

ⓒ2004 박상규

예전에 엄마는 내가 대머리가 되지 않을 거라 확신했다. 당시 내 머리숱은 심하게 많았으니 엄마의 확신은 무리가 아니었다. 그런 확신이 확실하게 빗나가고 아직 젊은 나이에 탈모가 진행되는 막내 아들이 안타까웠는지 얼마 전 엄마는 내게 이런 말씀을 하셨다.

“넌 두상이 이뻐서 대머리가 더 잘 어울려, 이놈아.”

세상에, 대머리가 더 잘 어울린다니! 난 엄마의 말씀을 듣고 너무 웃겨 뒤로 자빠질 뻔했다. 주변 친구들과 선후배들의 반응도 엄마의 말씀과 대동소이한데, 한 후배의 논리는 이랬다.

“형, 장동건이 대머리 된다고 생각해봐요. 웃기죠? 근데 형은 장동건하고 반대로 생겼잖아요. 그나마 다행이에요. 만약에 형이 장동건처럼 생겼는데 대머리가 된다고 생각해봐요. 형 마음도 아프겠지만 주변 사람들 마음은 더 아플 거에요.”

녀석이 워낙에 진지하게 말해서 나도 덩달아 한동안 진지하게 생각했던 기억이 난다. 어이없는 논리였지만 우습게도 가끔 녀석의 말대로 내가 장동건이 아닌 걸 정말 다행이라 생각하기도 한다. 그리고 엄마의 말씀이 맞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난 대머리가 아니길 바랐지만 조금씩 대머리가 되어가고 있다. 표현이 웃기지만, 내게 가장 잘 어울리는 ‘헤어 스타일’은 바로 삭발보다는 아주 쬐끔 긴 상태다. 내 머리를 보고 어떤 사람들은 사회에 불만 있냐고 묻는데 그럴 때면 난 ‘사회에는 불만 없고 그렇게 말하는 당신한테 불만이야!’라고 속으로 말한다.

솔직히 대머리가 된다는 건 유쾌한 일이 아니다. 적어도 내겐 그렇다. 그러나 난 지금까지 웃으며 긍정적으로 살아왔듯이 지금의 탈모 진행도 웃으며 받아들인다. 이렇게 웃기까지 적지 않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지만 말이다.

물론 걱정은 된다. 그러나 난 대머리가 되어가는 것보다, 고작 대머리 때문에 고민하고 신경 쓰는 속 좁은 내 마음 씀씀이가 더 걱정스럽다. 나이를 먹어간다는 건, 그리고 세상을 조금씩 알아간다는 건 외모에 의연해지는 과정인 것 같기도 하다. 난 넓어지는 이마만큼이나 의연해지려 노력하고 있다.

근데 정말로 궁금한 건 비아그라까지 만들어낸 이 세상에 대머리 치료제는 언제쯤 나오냐 하는 것이다

>오마이뉴스? 어디가서 읽어야되는거져?
>>읽어보세요..
>>왠지 마음이 찡합니다..
>>
>>장동건처럼 생기지않아서 다행입니다...이게 제목이에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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