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머리 有感
<김희동 편집장>
신체의 일부분이 비정상적인 사람은 정상적인 사람에 비해 일상생활에서 불편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것이 선천적이든 후천적이든 간에 한없이 고민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자포자기로 돌아선다. 신체발부는 수지부모(身體髮膚 受之父母)라 하여 자기의 비애를 부모에게 원망하기도 하고 전쟁에서나 교통사고를 당하여 일시에 팔다리가 잘린 장애자들은 자신의 인생을 운명에 맡겨 피곤한 일생을 살고 있다.
나는 대머리 때문에 오늘날까지 가까이에는 가족으로부터 혹은 친구로부터 많은 농담을 받아았다. 농담이라기 보다는 놀림을 받을 때마다 순간순간 곤혹스럽기도 하고 부아가 치밀기도 하였다. '백새가 날아와서 분뇨를 뿌렸느냐, 문어머리를 둘러썼느냐, 백바가지를 덮어썼느냐, 대통령과 닮았으니 한건하자'는 등 순간적으로 생각나는 말은 모두 털어놓아 웃겨볼 요량이지만 당하는 나는 감수하기가 괴로웠다. 지나가다 장난삼아 우물에 돌을 던졌는데 맞아 죽는 놈은 개구리, 나도 마치 개구리 신세가 되는 기분이다.
총각 때부터 빠지기 시작하여 주위로 확대되자 보기에 흉물스러 결혼하는 데 무척 장애가 되었다. 국민학교를 10세에 입학, 남들보다 늦은 데다가 군제대, 대학졸업 후 직장생활로 노총각에다 대머리까지 겹쳤으니 약방에 감초처럼 처녀측 말꾼들의 입에 오르내리기도 하였다. 그러나 선비의 둘째 아들, 병력필, 전직교사, 국회의원 비서관 등의 경력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대머리는 파묻히고 늦깍이로 결혼에 성공하였다. 그 이후 나는 40대 초반부터 할아버지 소리를 들었다. 버스나 지하철을 타면 으레 학생들이 "할아버지 여기 앉으세요" 하며 자리를 양보한다.
요즈음은 문화병이라고 해서 대머리들을 어디에서나 흔하게 볼 수 있다. 이들을 자세히 관찰해보면 유사한 점을 발견할 수 있는데, 얼굴이 대개 둥근 편이고 키가 별로 크지 않고 몸이 약간 뚱뚱한 편이다. 그렇기 때문에 형제같이 닮아 보인다. 대머리로 인하여 웃지 못할 일화를 한 두가지 소개하면, 9년 전 고향 후배와 같이 제주도로 여행을 갔다. 어느 호텔에 머물고 있는데 그 지배인이 우리에게 너무나 친절하고, 특히 룸살롱에서 고급 양주까지 대접받았다. 하도 이상해서 후배녀석에게 물었더니 선배님은 가만히 계시기만 하면 된다는 것이다. 며칠이 지나서 조용히 물었더니 각하 동생 되는 분이니 잘 모셔야 된다고 단단히 부탁했다는 것이다. 물론 그 지배인과 후배는 아주 친한 사이였다. 그 뒤 후배는 선배님 덕으로 제주도에서 아주 잘 보냈다고 자랑삼아 이야기한다. 또 한번은 광화문을 지나가는데 옆구리를 쿡 치는 사람이 있어 반사적으로 그 사람과 눈이 마주치자 명함을 한 장 주고 도망가는 것이다. 웬 사람인가 싶어 명함을 보니 가발회사의 광고인 이었다. 순간 부아가 치밀었지만 원인제공자는 나 자신이었기에 참아야 했다. 무슨 신문이든지 광고란을 보면 연일 대머리 치료제와 가발이 같은 면에 경쟁이라도 하듯이 게재되고 있다. 치료효과가 없으면 환불해 준다는 것과 이빨이 빠진 것을 치료한다고 새 이빨이 나는 것은 아니지 않느냐는 식이다. 대머리도 서러운데 어느 장단에 춤을 추어야 하는지 알 수가 없다. 가발은 생각해 본 적도 없고 치료는 몇 번 시도했으나 모두 실패작이었다. 대학병원 피부과로, 유명한 약국을 다녔지만 부작용으로 오히려 고생만 했다.
가발은 자기 것이 아니고 남의 것을 가짜로 만들어 진품인 것처럼 덮어쓰는 것이다. 남자가 여장을 하고 여자가 남장을 한다고 해서 남여 성까지 바뀌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 않아도 가짜가 판치는 세상에 일시적으로 호도하기 위해 가발을 사용한다면 각본 따라 연출하는 무대의 배우와 다를 바 없다. 인생은 어차피 연극이라는 비관론자의 주장도 있지만 진실이야말로 만고불변이 아닌가?
나는 가발을 싫어한다. 가발 대신 철따라 모자를 애용한다. 모자를 쓰면 대머리라는 선입관에서 해방되고 부정적인 면을 면할 수 있으며 자신감을 갖게 된다. 올 겨울에는 멋진 모자를 구해서 겨울을 기다리며 대머리를 털어낼까 한다. ♠
격월간 잡지 간(肝) 1995년 1월호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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