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락 속의 머리카락
작가이자 언론인으로서 한 시대의 지성인으로 존경받으며 살다 간 선우휘씨가 학생이었을 때의 일입니다.
어느 날 점심시간이 되어 친한 친구와 함께 도시락을 펼쳐 놓고 식사를 할 때였습니다.
밥 한 술을 떠 넣은 친구가 도시락 속에서 머리카락 하나를 골라내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계속 밥을 먹었습니다.
다음 날, 그 친구는 또다시 도시락에서 머리카락을 골라 낸 뒤 밥을 먹었습니다. 어쩌다 머리카락이 한두 개 들어갈 수는 있지만 친구의 도시락에서는 자주 머리카락이 나왔습니다. 선우휘는 점점 친구가 불결하게 느껴졌고 함께 밥을 먹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가 되었습니다.
'도시락을 싸 주시는 어머니는 도대체 얼마나 지저분한 사람일까? 아들의 도시락에 머리카락이 들어가는 것도 모르고.......'
그러던 어느 날 수업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려는 선우휘에게 그 친구가 자기 집에 놀러가자며 손을 잡아끌었습니다. 선우휘는 썩 내키지 않았으나 친구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고 따라 나섰습니다.
''어머니, 제가 말씀드린 친구 선우휘가 왔습니다."
친구는 집으로 뛰어들자마자 어머니를 불렀다. 잠시 후 방문이 열리더니 친구의 어머니가 고개를 내밀었습니다.
"그래, 네가 선우휘구나!'
그러나 선우휘를 반기며 걸어나오는 친구의 어머니는 선우휘를 제대로 쳐다보지 못하고 두리번거리기만 했습니다. 어머니는 장님에 가까울 정도로 눈이 어두웠던 것이다. 순간 선우휘는 콧날이 찡해졌습니다.
'아, 그랬구나! 친구의 도시락에 유난히 머리카락이 많은 까닭이.......'
앞을 제대로 볼 수 없는 어머니는 도시락에 머리카락이 들어갔는지를 쉽게 발견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 뒤에도 친구는 도시락을 먹다 말고 머리카락을 골라내는 일이 종종 있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선우휘는 그 친구가 더없이 좋아지더라는 것입니다. 눈이 멀다시피 한 어머니가 더듬거리며 싸 주신 도시락에서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머리카락을 골라내며 밥을 먹는 친구의 모습이 그렇게 아름다울 수 없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선우휘는 그 때마다 친구의 아름다운 모습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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