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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보다 더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이 있어 이렇게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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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악의 상황에서도 어떻게 최선의 삶을 살게 되었는지....
삻의 역전 드라마를 시작하려 합니다.





[나의 길 나의 신앙―이지선 ⑴] 만취운전 사고 피해로 온몸 중화상
◇필자 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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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여대 유아교육과 졸업
△2000년 7월30일 6중 추돌사고로 전신에 3도 화상을 입음


만취운전 6중 추돌사고(2000.7.30)
앵커:“어젯밤 11시30분쯤 서울 한강로1가에서
서울 후암동 마흔두살 김모씨가 만취 상태에서 갤로퍼를 몰다가
마티즈 승용차 등 6대와 추돌했습니다.
이 사고로 마티즈 승용차에 불이 나서 차에 타고 있던
경기도 안양시 갈산동 23살 이모씨가
온몸에 2도의 중화상을 입고 인근 병원으로 긴급 후송됐습니다.
경찰 조사 결과 갤로퍼 승용차 운전자 김씨는 혈중 알코올 농도
0.35%의 만취 상태였습니다”
2000년 7월30일.

아무렇지도 않게 늘 남의 이야기로만 들어오던 뉴스속 ‘이모씨’가 되었습니다.
그 뉴스속 이모씨의 실제는 뉴스처럼 그렇게 짧지도 간단하지도 않았습니다.
돌이킬수 없는 3도의 중화상이 온몸에 남았고 죽음과의 싸움은
그 ‘긴급 후송’으로부터 2년이 지난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올해로 스물다섯살이 된 ‘이모씨’는 1978년 5월24일과
2000년 7월30일 2개의 생일을 가지고 있는 저 이지선입니다.

여전히 끝이 보이지 않는 이 길에서,귀한 지면을 빌려 이제 겨우 시작한 제 길을,
남보다 조금은 무거운 한 발자국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늘 함께 하시는 하나님으로 인해 기쁨으로 뗀
그 한 발자국의 이야기를 시작하려 합니다.
그 엄청나고 무서운 불속에서 저를 건지신 하나님과
자기 팔을 태우면서 동생을 구해낸 오빠의 용감함과 사랑에 감사하며
이제 덤으로 사는 제 이야기를 시작해볼까 합니다.

공직에 계신 아버지와 사랑많은 어머니,많이도 싸우고 자랐지만
유별나게 친했던 세살 많은 오빠와 저 이렇게 네 식구가 사는 우리 집은
평범하지만 매우 단란한 가정이었습니다.
아빠의 전근지를 따라 부산 대전 대천 등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저는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 서울에서 살았습니다.
대학생이 되면서 경기도 안양 평촌신도시로 이사했고
학교가 가까웠던 오빠와 함께 작은 자동차를 타고 학교에 다녔습니다.
대학교 4학년이 돼서야 정말 하고 싶었던 공부를 찾았고
대학원에서 심리학을 공부하기 위해
여름방학에도 도서관에 다니며 준비했습니다.

제게 두번째 생일이 된,하마터면 사망일이 될 뻔했던 2000년 7월30일은
더 이상 행복할 수 없을 만큼 즐거웠던 가족 여름여행을 다녀온
바로 다음날이었습니다.
그날 주일예배를 마치고 오빠와 저는 학교 도서관으로 향했습니다.
참 이상한 날이었습니다. 공부를 하려고 앉았지만
오빠도 저도 왠지 집중이 잘 되지 않았습니다.
그냥 집에 갈까 말까,저녁을 먹을까 말까,
만나서 같이 먹을까 말까…별 것도 아닌 일들로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시간만 흘렀습니다.

그리고 밤 10시10분 학교 후문에서 오빠를 만났습니다.
늦게까지 학교에 남아있는 날이면 늘 거기서,
그 시간에 오빠를 만나 함께 차를 타고 집으로 오곤 했습니다.
그날도 여느 때와 다름없이 오빠를 만나 차에 탔고 집으로 향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날 이후로 아주 오랫동안 집에 돌아오지 못하게 됐습니다
(그후로는 기억이 나질 않아 오빠에게 들은 이야기를 대신 씁니다)

용산쯤 와서 신호등이 바뀌어 신호를 기다리며 서 있었습니다.
오빠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중 뒤에서
“끼익” 하고 브레이크 밟는 소리가 들려 왔습니다.
그러자 오빠가 “어디서 사고나는가 보다”하고 뒤를 돌아보았습니다.
그 순간 이미 사고는 우리에게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나의 길 나의 신앙―이지선 ⑵] 오빠 도움으로 화염속 기적같이 생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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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호에 걸려 정지해 있던 우리 차에 술을 마시고
이미 작은 사고를 내고 도망치던 갤로퍼 지프가 돌진해와서 충돌했습니다.
우리 차는 그 충격으로 앞차를 추돌하고 튕겨져나와
중앙선을 넘어 건너편에서 오던 차와 다시 충돌했습니다.
그러면서 우리 차는 두바퀴 돌아 다시 그 갤로퍼에 쳐박혀버렸습니다.
오빠가 정신을 차린 것은 차가 빙글빙글 돌고있을 때였습니다.
머리 뒤쪽이 후끈하여 일어나 옆을 보니
조수석에 앉아 있던 내가 보이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 자리에서 바로 안전벨트를 풀고 열려진 창문
(오빠는 늘 창문을 열고 다녔습니다.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요)으로
어떻게 나왔는지도 모르게 순식간에 빠져나와 조수석 쪽으로 돌아왔습니다.
혹시 제가 그 옆으로 떨어졌는지 찾아보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러나 저는 거기에 없었습니다.

그때 무심코 오빠가 차 뒤쪽을 보니 흰 양말을 신은 제 다리가 보였다고 합니다.
갤로퍼와 우리 차 사이에 다리가 걸쳐져 있었고
이미 제 상체는 불길에 휩싸여 있었습니다.
충돌과 함께 연료통이 터졌고 차가 몇 바퀴 돌면서 불이 붙은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 불 위로 떨어졌고 충돌로 인한 충격으로 이미 정신을 잃은 상태였습니다.
오빠는 저를 꺼내려고 제 두 다리를 잡고 끌어당겼지만
움직이지 않아 제 상체를 위로 띄우듯 당겨서 저를 끄집어냈다고 합니다.
오빠는 불길에 휩싸인 저를 보고 급한 마음에 불을 끄려고 저를 껴안았습니다.
그때 오빠 팔에도 불이 붙었고 순식간에 피부가 타서 벗겨졌습니다.
그래서 오빠는 입고 있던 티셔츠를 벗어 불을 껐다고 합니다.
불을 다 껐을 때쯤 한 택시기사 아저씨가 수건을 들고와 도와주었을 뿐
사고를 구경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지만
어느 누구도 도와주지 않았습니다.

그때 “빨리 비켜요!차가 폭발해요!”라고 누군가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리고 오빠가 바삐 저를 안고 몇 발자국 옮겼을 때 우리 차가 폭발했습니다.
이 모든 일은 불과 1∼2분도 걸리지 않았습니다.
정말 모든 일이,엄청난 일이 ‘순간’에 일어난 것입니다.

그리고 잠시 정신이 든 저는 오빠에게
“오빠,지금이 몇 년이야? 2000년이야?”라고 물었다고 합니다.
아마도 꿈이라고 생각되었나 봅니다.
무의식적으로 저는 꿈이라고 믿고 싶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는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말을 했다고 합니다. “
오빠,나 이렇게 어떻게 살아. 나 죽여줘”

착한 오빠는 제가 아파서 고통받을 때마다 아마 이 말을 되뇌었을 것입니다.
자신이 괜한 짓을 했던 것은 아닌가 생각할 때도 있었을 것이고
그래서 내게 미안한 마음이 든 적도 있었을 것입니다.
오빠의 슬픈 눈에서,어쩔 때는 눈물을 참기 위해 웃는 그 슬픈 웃음에서
그런 마음을 읽어낼 수 있었습니다.
얼마전 오빠와 함께 TV를 보는데
뮤직비디오에서 애인이 타고 있던 차에 불이 나자
밖에 있던 여자가 어찌할 바를 몰라 울부짖는 장면이 나왔습니다.
그걸 보던 오빠가 농담반 진담반으로
“저렇게 밖에서 보고만 있어야 되는건데 괜히 꺼내어 가지고
이 고생을 시킨다.
그렇지? 네가 발을 내밀고 있어서 그랬지.으이구∼”하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요즘에는 살맛 나는데 그게 무슨 소리야.
백번 잘 꺼냈지!”라고 대답했지요.
오빠가 참 좋아했습니다.
처음엔 저를 구해낸 것이 실수처럼 보였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일이 실수가 아니었음을
우리 하나님께서 계속 보여주실 것입니다.
이미 제 안에서 시작하신 일을 끝까지 이루실 것으로 믿습니다.
이전의 저였으면 믿지 못할,다 이해하지 못할 평안을
맛보게 하시는 분,이 모습이라도 ‘행복’을 느끼게 하시는 분,
이전보다 더 크고 풍성한 것들을 알게 하시고 느끼게 하시는
그 하나님을 신뢰하며 소망합니다.



[나의 길 나의 신앙―이지선 ⑶] 중환자실서 지옥같은 죽음과 사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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앰뷸런스가 오고 저와 오빠는 사고 장소와 가까운
용산 중앙대부속병원 응급실로 이송됐습니다.
우리가 용산 전쟁기념관 옆 신호대기선에 선지 불과 5분도 지나지 않았지만
너무 많은 것이 변해 있었습니다.
더 이상 여느 때처럼 평화로운 주일 밤에
집으로 향하던 남매의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응급실로 들어갔습니다. 의사들이 달려들었지만 별 방도가 없었습니다.
잠시 기절했던 저는 갑자기 일어나 뜨겁다며 치료해달라고 소리를 지르다
다시 정신을 잃었습니다.
의사들이 오빠의 팔을 치료하려고 하자
오빠는 자기는 괜찮다며 동생을 봐달라고 했지만
의사들은 동생은 지금 화상이 문제가 아니라 맥박조차 잡히지 않는다며
이곳에서는 더 이상 해줄 게 없어 화상전문병원으로 옮길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했습니다.
제게 산소호흡기가 부착되고 우리는 다시 앰뷸런스를 타고
한강성심병원으로 향했습니다.

앰뷸런스 안에서 오빠는 끝도 없이 주기도문만 외웠습니다.
나중에 들은 얘기지만 그때 오빠는 한강을 건너는 다리 위에서 저를 안고
뛰어내리고 싶은 심정이었다고 했습니다.
오빠는 주기도문을 끊임없이 중얼거리다
제게 마지막 작별인사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지선아 잘가. 너는 너무나 좋은 딸이었고 동생이었어.
누구보다도 예쁘고 착하게 살았고 평생 널 잊지 않을게.
먼저 하늘나라에 가서 조금만 기다려.
지선아,잘가” 오빠가 그렇게 마지막 인사를 했을 때
저는 신음소리를 그쳤습니다.

한강성심병원 응급실에 도착했습니다.
그러나 여기에서도 별로 달라질 것은 없었습니다.
호흡조차 잡히지 않았고 뒤통수는 다 찢어져 살이 너덜거렸으며
이미 많은 양의 피를 흘리고 있었습니다.
응급실에 살이 탄 냄새가 진동했고 얼굴도 새카맣게 타서
누군지 알아볼 수도 없는 상태였습니다.
의사가 오빠에게 치료실로 가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일지 모르니 동생에게 작별인사를 하고 가라고 했습니다.
오빠가 다시 인사를 하자 저는 부르르 떨던 다리를 멈추었습니다.
나중에 들으니 오빠의 인사를 받는 듯했다고 합니다.

잠시후 아빠와 엄마가 병원에 도착했습니다.
아빠가 “지선아,아빠다. 아빠가 왔어. 괜찮을 거야”라고 말하자
의식이 없다던 제가 고개를 끄덕거렸다고 합니다.
엄마는 어찌해야 할지 안절부절 못했습니다.
저를 보고 서 있을 수도 없었고
딸의 살이 탄 냄새를 맡고 있을 수도 없었습니다.
그 날 어찌할 바를 몰랐던,정말 앉을 수도 설 수도 없는 상황에서
엄마는 응급실 바닥에서 그냥 굴렀습니다.
너무 기가 막혀 눈물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엄마는 “우리 지선이 교통사고 났어. 지선이 죽는대”라며
가깝게 지내는 권사님께 전화를 했고 곧 이모 삼촌 목사님 전도사님 권사님,
그리고 집사님들이 병원으로 달려오셨습니다.

아빠는 여기저기 전화를 하시며 가망이 없어보이는 저를 위해 애쓰셨습니다.
제가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본 아빠는 의식이 있다며 의사를 설득했습니다.
그래서 제 머리를 깎고 찢어진 뒤통수를 꿰매는 등
응급치료를 하고 온몸을 붕대로 감았습니다.
그렇게 겨우 CT촬영을 할 수 있었고
다행히 뇌는 다치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새벽 4시 폐에 가스가 차서 그것을 빼내는 호스를 옆구리에 박고
저는 중환자실로 옮겨졌습니다.
그러나 의사는 아직 살았다고 할 수 없으며
아주 위험한 상태니 계속 지켜보자고 말했습니다.
그렇게 저는 지옥같은 죽음과의 싸움을 시작했습니다.



[나의 길 나의 신앙―이지선 ⑷] 이 때를 위한 믿음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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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6시. 사고소식을 듣고 전가화 목사님이 달려오셨습니다.
중환자실에 들어오셔서 엉망이 돼버린 저와 함께 기도를 하신 후
밖으로 나오셨습니다.
목사님은 한 20분을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신 채 앉아 계셨습니다.
사선을 넘는 고난을 겪으셨던 목사님께서도
이 기가 막힌 상황에 차마 엄마를 위로할 수도
지선이가 괜찮을 것이라고 말씀하시기도 어려우셨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목사님께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셨습니다.
‘이 때를 위한 믿음이라,이 사건을 위한 믿음이라’.

“10년이 넘게 하나님을 믿어온 우리에게 어떻게 이런 일이…하고
원망할 것이 아니라 그간의 신앙생활과 지금 가진 믿음이
이 어려운 때를 이겨나가기 위한 것입니다”
이 말씀을 들을 당시에는 상상하지도 못했던 어려움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고 우리 가족은 그럴 때마다 이 말씀을 붙들고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말씀은 우리에게 위로가 되었고 힘이 되었으며
우리를 선한 길로 인도하셨습니다.

제가 교회를 처음 다니게 된 것은 초등학교 2학년 때였습니다.
친구가 전도를 해서 아파트 상가에 있는 교회를 다녔는데
가족 모두가 다니지 않는 상황에서 매주 열심히 나가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가벼운 병인 줄로만 알고 입원하셨던 외할머니가
폐암말기라는 진단을 받게 됐습니다.
의사도 손쓸 수 없는 상황에서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으로
옆에서 간호하시던 이모할머니의 권유로
모든 가족들이 하나님께 매달렸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믿음생활이었습니다.

할머니는 많이 아주 많이 아팠습니다.
이미 병원에서도 포기한 상태로 퇴원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좋아졌다가 나빠졌다를 반복했지만
6개월이 최고라는 의사의 진단에도 불구하고
할머니는 2년을 우리와 함께 더 계셨습니다.

실로암…아주 오래된 찬양이지요.
제가 처음 들은 건 초등학교 3학년 때였습니다.
할머니는 실로암 찬양을 좋아하셨습니다.
그래서 많이 불렀었지요.
그리고 기도원에서 잘은 못치지만 할머니 앞에서 피아노를 치면서
이 찬양을 불러드렸던 기억이 납니다.
그날 정말 앙상하게 뼈밖에 안 남은 우리 할머니는
“우리 지선이 많이 예뻐졌네”라고 말씀하셨고
그것이 할머니와의 마지막 인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다음날 할머니는 고단한 삶을 뒤로하고
정말 평안한 얼굴로 하나님 곁으로 가셨습니다.
그때는 다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어린 마음에 ‘왜 그렇게 기도했는데 하나님은 할머니를 데려가셨는지…’
원망스러웠습니다.

그리고 아주 오랜만에 지난주 교회에서 이 찬양을 불렀습니다.
많이 울었습니다.
돌아가신 할머니 생각에 그리워서 흘린 눈물이 아니었습니다.
너무나 감사해서…너무나 감사해서 눈물이 줄줄 흘러 주체할 수 없을 만큼
많이 울었습니다.
할머니는 정말 많이 아팠지만 우리 가족 모두의 실로암이었습니다.

실로암 그 연못에서 눈을 씻어 주님의 이름으로 소경이 눈을 떴던 것처럼
세상 가운데 하나님을 모르고 살던 우리 모두는 할머니의 고난을 통해
하나님을 알게 되었고 비로소 새로운 참 세상을 볼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너무 아팠지만 우리 가족 모두에게 영원한 생명을 알려주고 떠난
할머니의 삶은 그 누구의 삶보다 귀한 것임을 압니다.

기도합니다. 부족한 저도,제 고난도 누군가에게 실로암이 되게 해달라고….
소경의 눈을 뜨게 하는 그 귀한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의 도구로…
저도 어둠 가운데 있는 사람들에게 생명의 빛을 볼 수 있게 하는
주님의 실로암이 되게 해달라고 기도합니다.



[나의 길 나의 신앙―이지선 ⑸] 끔찍한 현실에 죽음도 결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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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가 난뒤 며칠 동안은
전혀 기억이 없는데
지금도 뚜렷이 기억나는 것이 있습니다.
정신이 돌아올 무렵의 기억인 것 같습니다.

어디선가 ‘웅’ 하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고,빙글빙글 도는 것 같기도 하고,
보이진 않지만 누군지 모를 여러 사람들이 나를 둘러싸고
나를 지켜보는 것 같았습니다.
우습지만 저는 외계인에게 잡혀서 우주선을 타고
실험을 당하고 있는 것 처럼 느껴졌습니다.

“이게 뭐지? 꿈인가? 자고 있나? 이게 뭐지?”

그러다가 “누가 구급차좀 불러주세요! 지선아 괜찮아,괜찮을 거야”라는
너무나 다급하게 울부짖는 오빠의 목소리가 귓전을 울렸습니다.
시끄럽고 정신없는 사고 현장의 소리가…. 그 끔찍한 소리만이
제 머릿속에 계속 떠올랐습니다.
뭔지는 확실히 모르겠지만 꿈이 아닌 일이,
내게 뭔가 아주 큰일이 일어난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사고구나. 사고가 났구나. 내가 다친 건가봐” 그때 그 기분은
지금도 잊을 수 없습니다.
너무 당황스럽고 무서운 그 기분. 무섭다는 말
한마디로는 표현이 안되는 느낌…. 공포였습니다.
결코 되돌아갈 수 없는 길을 지나온 것을 직감할 수 있었습니니다.

그리고 부끄럽지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죽으려고 했습니다.
얼마나 다쳤는지도 모르고 정신도 혼미할 때였는데
어떻게 그런 못된 생각까지 했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산소호흡기로 목을 눌러 산소가 들어오지 못 하게 해보았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될리가 없었지요.
그래서 몸에 어떤 줄이 달려 있길래 그걸 뽑으면 죽게 될까 싶어서
발가락으로 당겨서 뺀 것이 나중에 알고보니
겨우 소변을 받아내는 줄이었습니다. 사람이 얼마나 우스운 존재인지요.

이렇게 내 힘으로는 모든 것이 불가능하자 가스펠을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께로 더 가까이 갑니다.
고통 가운데 계신 주님. 변함없는 주님의 크신 사랑. 영원히 주님만을 섬기리”

뒤에 가사는 생각지도 않고 하나님께로 더 가까이 가고 싶다고
그렇게 천국으로,하나님께로 데려가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부르고 또 부르며 정신이 있는 동안은 계속 불렀습니다.
너무 무서워서,도저히 견딜 수 없어서 하나님께 가고 싶다고
데려가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우리 하나님은 그 기도를 들어주지 않으셨습니다.
아마도 제가 찬양을 하고 있을 때 믿음의 집 식구들과 시온성가대,
또 사랑하는 가족들의 간절한 기도가,뿌려진 눈물이,
안타까운 마음들이 하늘 보좌를 흔들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는 끊임없이 불렀던 찬양 가사처럼 고통 가운데 주님을 만나
이렇게 살아서 찬양과 감사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변함없는 주님의 크신 사랑을 느끼고,전하고,증거하며
영원히 주님만을 섬기라고 하나님은 제게 그런 계획이 있으셨나 봅니다.



[나의 길 나의 신앙―이지선 ⑹] 병원서 생존 어려운 환자로 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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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후 며칠간 저는 의식이 있다가 없어지기를 반복했습니다.
타버린 몸이 부어오르기 시작해 눈,코,입까지 부어올라
정말 쳐다보기 어려울 만큼 흉한 모습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면회시간에 엄마의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때는 온몸이 부어올라 볼 수도, 말할 수도 없는 상태였습니다.
움직이지 못하게 손발을 묶어놓은 상태였기 때문에
엄마가 발을 묶은 끈을 풀어주어 발로 글씨를 썼습니다.

“여기 어디?” “병원이야,중환자실이야. 지선이가 다쳤어…”
“언제 만나?” 엄마와의 첫 대화는 그랬습니다.

그전에 친척 한 분이 중환자실에 계셨던 적이 있어서
중환자실은 면회가 제한돼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런 질문을 한 것 같았습니다. 엄마는 하루에 세 번,
30분씩 만날 수 있었습니다.
면회를 기다리는 시간이 너무 길었고 정작 엄마를 만나는 시간은
너무 짧아서 혼자 있는 시간을 견디는 것이 중환자실에서 있는 동안
화상 치료만큼이나 힘들었습니다.

또 가족에게는 제 생명만큼이나 중요한 문제가 한 가지 더 있었습니다.
저는 사고 당시 눈에 콘택트 렌즈를 끼고 있었습니다.
얼굴이 까맣게 타버렸는데 눈 안에서 렌즈가 녹아버린 것은 아닐까?
정말 그렇다면 이젠 지선이가 살아도 앞을 볼 수 없게 되는 것은 아닐까?
온 가족이 걱정했습니다.

몸이 퉁퉁 부어있었기 때문에 렌즈가 녹았는지 확인할 수 없는
며칠이 흘렀습니다.
그리고 사고가 일어난지 4일째 되던 날 부기가 조금 가라앉으면서
전혀 녹지 않은 렌즈를 꺼낼 수 있었고
그것을 간호사가 엄마에게 알려주셨습니다.
하나님께 중요한 제 눈을 지켜주신 것에 대해 감사를 드렸습니다.

심한 화상의 경우 대개 1주일이 생사의 갈림길이라고 합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당시 병원에서는 저를 살 가망이 없는 환자로
분류하여 간호 스테이션에서 가장 가까운 침대에 두었습니다.
제가 2층 중환자실에 있던 40일간 그 침대에 있었던 환자 중에
살아서 나온 사람은 저 하나였습니다.

1주일이 생사의 고비라는 그동안 폐에 차 있던 가스를 제거하는 관도
빼내었습니다.
그리고 어느날 의사 선생님이 제 가슴을 두드리며
“이제 숨쉴 수 있지? 혼자서 숨쉴 수 있지?”라고 물으셨고
제가 고개를 끄덕이자 목안 깊숙이 박혀있던 산소 튜브를 뽑아내었습니다.
그때의 시원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이제는 엄마와 말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저는 다 나은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그때는 그것이 살기 위한,살아남기 위한 싸움의 시작에
불과하다는 것을 미처 알지 못했었습니다.

매일 아침 지옥같은 화상치료실에서의 치료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고
타버린 피부조직을 긁어내는 수술조차 금방 해주지 않았을 만큼
여전히 저는 살 가망이 희박한 환자였습니다.
그러나 저를 위해 눈물로,금식으로 기도해주셨던
정말 많은 분들의 사랑의 힘이 있었고
생명의 주관자이신 하나님 아버지께서 저를 죽음에서 건져주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지금 이곳에서 누구보다 행복한 삶을 살며
제게 임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글로 전하고 있습니다.



[나의 길 나의 신앙―이지선⑺] 극심한 수술고통…찬양으로 극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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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계속 헛것을 보았습니다.
누워있는 그곳이 병원으로 제대로 보이기까지는 아주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수술을 하면 안 아프게 될 줄 알고,
또 수술을 하면 이제 중환자실을 나가게 될 줄 알고,
그렇게 기다리던 첫번째 수술을 받았습니다.
그 수술은 타버린 피부와 죽은조직을 긁어내는 수술이었습니다.
애타는 마음으로 뭔가 더 좋은 이야기를 듣고 싶었던 부모님은
수술실 앞에서 의사의 입으로부터 설사 살게 되더라도
사람 꼴은 되지 않을 것이라고, 손가락도 다 절단해야 한다는,
너무나 냉정한 현실을 듣게 되었습니다.
엄마는 기절했고, 저는 고통가운데 소리를 지르며
비린내가 진동하는 몸으로 수술실에서 다시 중환자실로 옮겨졌습니다.

최악의 상황이었습니다.
죽은 조직을 걷어내니 치료는 더욱 고통스러웠습니다.
매일 아침 제가 받아야 했던 화상치료는 감겨있는 붕대가
잘 떼어지도록 물로 적시고, 가위로 서걱서걱 잘라내고,
모든 상처부위를 소독 물로 씻어냅니다.
약이 잘 발라지도록 물기를 또 닦아냅니다.
정말 고통스러운 시간입니다.
그 위에 다시 약을 바르고 붕대를 다시 감는 것으로 치료가 끝이 납니다.
말은 이렇게 몇 줄의 설명으로 끝나지만,
피부의 55%가 없었던 그 당시 제가 느꼈던 고통은
아주 오랫동안 눈물 없이는 떠올릴 수 없는,
생각만으로도 모든 세포가 벌벌 떨리는, 그런 기억입니다.
그 곳은 정말 생지옥이었습니다.
어이없게 다친 사람들이,
어른이고 아이고 할 것 없이 비명을 지르는,
실제로 마약으로 분류되기도 하는 강한 진통제를 맞고도,
그냥 차라리 거기서 딱 미쳐버렸으면, 차라리 정신을 잃어버렸으면 하는
그런 곳이었습니다.
저는 매일 아침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나 돼지의 마음이 이럴 꺼야’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럴 때마다 철저히 혼자가 되는 시간마다 저를 지켜준 것은
찬양이었습니다.
저는 매일 아침 죽어야 했지만 그 죽음과 같은 시간을 기다리며
마음을 졸이며 끊임없이 찬양을 들었습니다.
저는 분명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찬양 속엔 살아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생명의 힘이 있었습니다.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 놀라지 말라”.

모두가 비명을 지르고 울부짖는 그곳에서 저는 단 한번도
소리 질러 본 적이 없습니다.
치료를 하던 치료사들이 “지선이가 베스트”라며 칭찬을 할 정도로
저는 이를 악물고 참았습니다.
발가벗겨져, 피부도 없이 그곳에 누워, 소리마저 질러버린다면
정말 저조차도 제 자신을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엄마가 하라는 대로 저는 매일 치료 받는 동안 기도했습니다.
“지금 하는 치료가 감염이 되지 않게 하기 위한 소독일 뿐이지만,
나아만 장군이 요단강에 믿음으로 몸을 담구었던 것처럼,
이것이 헛되지 않게 하시고, 저를 하나님께서 치료하시옵소서”.

아팠던 이야기를 하자면 이 지면을 다 써도 다 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제 모든 고통은 하나님만 기억하시길 원합니다.
그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서 뿌려졌던 눈물과 피와 고통의 기억들은
나를 구원하실 여호와 하나님만 기억하시면 그것으로 족합니다.
다만 제가 경험했던 그 곳은 ‘끝이 있는 지옥’이었음을 기억하길 원합니다.
끝이 있는 지옥은 차라리 축복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 삶이 끝나 천국에 갈 때에
아직 예수님을 알지 못하는 영혼들이 떨어지게 될 그곳은
‘끝이 없는 고통의 지옥’이라는 것을
더욱 안타까운 마음으로 전하기 원합니다.

또한 잊을 수 없는 것은 매일 아침 새벽기도를 마치고
한걸음에 달려오시는 김순호 목사님의 사랑이었습니다.
밤새 헛것을 보고, 1시간 조차 잠들지 못한 제게 목사님은 아침마다
시편의 말씀을 읽어주셨습니다.
그것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 퍼지는 하나님의 음성이었고
위로였고 선포였습니다.



[나의 길 나의 신앙―이지선 ⑻] “살아야 겠다”…악착같이 먹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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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얼마간 지나고 치료실에서 뒤통수를 꿰매었던 부분의 실을
뽑아내느라고 저를 일으켜 앉혔는데
그때 제 눈으로 제 다리의 상처를 보게 됐습니다.
붉은 생살과 피,그리고 생닭에서나 봤던 노란 지방덩어리와 하얀 뼈까지….
너무 충격적이었습니다.
아무 생각이 나질 않았습니다.
그저 “나는 살지 못하겠구나…”하는 생각뿐이었습니다.

다음날 밥을 먹이시는 엄마에게 그 이야기를 했습니다.
엄마에게도 마음의 준비를 시켜야 할 것 같았습니다.
더 이상 무언가를 먹는다는 게 의미가 없는 것 같았습니다.

엄마는 그럴수록 더 먹어야 한다고,다음부터는
절대로 상처를 보지 않기로 약속하자고 하셨습니다.
그리고는 한 숟갈 한 숟갈 떠먹일 때마다 기도를 하셨습니다.
“에스겔 골짜기의 마른 뼈에 살을 입히시고 가죽을 덮으시고
생기의 영을 불어넣으시는 하나님,이것이 지선이의 살이 되게 하시고
피부가 되게 하시옵소서”

저는 열심히 먹었습니다.
제가 거기서 그런 엄마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은 그것뿐이었습니다.
면회시간이 끝난 뒤에도 계속 먹어야 한다고,
많이 먹어야 빨리 살이 차올라서 이곳을 나갈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바쁜 간호사님들의 온갖 눈치를 받았지만 저는 죽을 힘을 다해 먹었습니다.

밤마다 양 옆 침대에 누운 다른 환자들이 혼수상태에 빠지고,
긴급상황이 벌어지고,죽어 나가는 상황에서도,
커튼 뒤로 삶과 죽음이 교차되는 그 순간에도 저는 계속 먹었습니다.
마음이 약해질 수 없었습니다.
나는 살아서 나가야 했습니다.
이렇게 그만둘 수는 없었습니다.
그것이 저를 만나지도 못하는 상황이었지만
중환자실 문앞에 와서 기도하고 가시는 수많은 분들의 눈물과 기도에
보답하는 길이었습니다.

실제로 빠른 속도로 살이 차올랐고
그곳에서 두번째 수술인 피부이식 수술(양팔,오른쪽배,허벅지)을 받고
36일만에 중환자실에서 준중환자실로 옮겨졌습니다.
36일동안 그 중환자실에서 18명의 환자들이 죽어 나갔습니다.
생명은 누구에게나 소중하고 귀한 것인데
저를 살아서 그곳을 나오게 하신 하나님의 사명이 있으리라 믿습니다.
제가 전우라고 부르는그분들(중환자실은 실제로 전쟁터였습니니다)을
생각해서라도 저는 그 사명을 온전히 감당해내기 원합니다.

머리부터 온몸이 미라처럼 붕대로 감긴 저는
그곳에서 더 이상 여자도,사람도 아니었습니다.
누구보다 보호받아야 할 환자였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거기 누워 바쁜 의료진을 이해해줘야 하는 웃지 못할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그토록 감염 위험 때문에 가족과 만나는 면회시간도 제한시키면서
너무나 아이러니컬하게도 병실 안에는 벌레가 날아다녔습니다.

이미 그때부터 제 눈은 감기지 않았었고 피부가 없는 얼굴에서
계속 진물이 흘러서 눈은 언제나 뿌옇게 잘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날아다니던 벌레가 내 눈에 내려앉았고
정말 손가락하나 까딱할 수 없는 저는,눈 한번 깜짝 할 수 없는 저는
누군가 와서 쫓아주기 전까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그런 존재였습니다.
벌레 하나 쫓을 수 없는 나…. 많이 비참했습니다.
7개월 뒤 눈을 감을 수 있게 되기까지 저는
아주 오랫동안 날아다니는 벌레만 나타나면 벌레를 쫓아달라고
소리를 지르곤 하였습니다.

9월21일 세번째 이식수술을 위해 피부를 얇게 떼어내고
붙일 부분을 고르게 하는 수술을 받았습니다.
저는 제가 지르는 비명소리에 마취에서 깨어나
“엄마 아파∼ 아파∼”라고 울부짖었습니다.
그렇게 이를 악물고 참던 저도 별 수 없었습니다.
찬양 테이프를 틀어달라고 했습니다.

‘왕이신 하나님 높임을 받으소서’라는 찬양이 나오고
울부짖던 제 소리도 찬양으로 바뀌었습니다.
울면서 따라 불렀습니다.
나를 지키실 분,나를 건지실 단 한 분. 만왕의 왕 되신,
천지의 주재되신 여호와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나의 길 나의 신앙―이지선 ⑼] ‘양쪽 손 절단’말듣고 깜짝 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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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 후 두달만인 9월28일 드디어 꿈에도 그리던 일반 병실로 옮겼습니다.
여전히 많은 상처가 있었고 얼굴은 그대로 피부없이 나오긴 했지만
이제 오랜 시간 그렇게 그리워했던 가족을 마음껏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마음껏 찬양을 들으며 기도받을 수 있고 예배 드릴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너무나 기쁘고 행복했습니다.

일반 병실로 옮겨진 뒤 누울 곳도 제대로 없었는데
네 식구가 3일동안 한 병실에서 잤습니다.
너무 좋아서,너무 감사해서 제가 가지 못하게 했습니다.

얼굴에 피부이식을 받기 위해 성형외과로 옮겼지만
계속적인 의료 분쟁 사태로 의사를 만나기란 하늘의 별따기였고
어쩌다 그렇게 어렵게 만난 의사는 자신의 피곤함을
저와 가족에게 퍼부어댔습니다.
이미 바닥이었던 우리를 땅속 끝까지 밀어넣는 말을 서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병원을 옮겼으나 의료파업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병원에 의사가 없다는 이유로 수술은 계속 미뤄졌고
이식했던 상처들까지 다시 녹아버려 더 큰 상처가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파업이 끝나고 의사들은 돌아왔지만 얼굴을 덮을 만한 피부가
여유롭지 못하다며 수술은 또 다시 기약없이 연기됐습니다.

12월7일 병원을 옮긴 지 두달만에 수술을 하게 되었습니다.
양손 엄지를 제외한 손가락 모두 한마디 정도를 절단하기로 한다는
‘절단동의서’를 쓰고 말입니다.
그때 오빠가 들고 온 종이에 지장을 찍으면서도
저는 그게 절단동의서인줄 몰랐습니다.
수술실에 들어가면서 간호사가 “양손 절단동의서 확인하셨죠?”라고
하는 말을 듣고 엄마에게 놀라 물었습니다.
그때까지 오른쪽 손가락만 절단하는 줄 알았거든요.

“왼쪽도 하는 거야?”“응”

그리고 잠시 후 하나님께서 제 입술에 어떤 말을 주셨는지 아세요?
“엄마,더 많이 자르지 않아서 감사해야지”
제 마음은 처음부터 제 마음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세상은 줄 수도,알 수도 없는 하나님이 주시는 마음이었습니다.

뼈까지 완전히 타버려서 도저히 살릴 방법이 없기 때문에
손가락을 절단해야 한다는 마지막 결정을 들은 날 밤
저는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손가락은 짧아지더라도 손을 쓸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니다.
당시 팔에 이식한 피부가 땅겨 제 힘으로는
손가락을 움직일 수 없었기 때문에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의수보다 못한 손이 되지 않게,부끄러운 손이 되지 않게,
제 힘으로 움직일 수 있는 손이 되게 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지금 제 왼손은 새애끼손가락을 제외하곤 거의 정상입니다.
왼손은 오른손보다 손가락도 조금길게 남았고 많이 상하지 않아서
저는 이제 왼손잡이가 되었습니다.
왼손이 오른손 같지 않음을 감사했습니다.
그리고 오른손도 왼손처럼 편하게 될 줄 믿습니다.
주님께서 이 부끄러운 손을 기쁘게 사용하실 것으로 믿습니다.

저는 교회에서 이 부끄러운 손을 높이 들고 하나님께 찬양합니다.
이 손으로 저를 사랑하는 사람들과 악수도 하고 손을 흔들며 인사도 합니다.
그리고 엄지로만 치고 있지만 이 손으로 이렇게 살아계신 하나님을 전하는
글을 씁니다.
세상 사람들이 보기엔 불쌍한 손이지만 하나님은
제게 이 손이 부끄럽지 않다는 마음을 주십니다.
하나님은 제 기도를 들어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제 손을 부끄러운 손이 되지 않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나의 길 나의 신앙―이지선 ⑽] 거울엔 낯선 내 얼굴이 비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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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시간의 긴 수술끝에 손가락을 절단하고
얼굴에 인조피부를 이식했지만 인조피부는 녹아버렸습니다.
그래서 진통제 주사 3대로 겨우 버텨가며 하루 네번 피부 없는 얼굴에
피부 대신 덮어놓은 거즈를 뜯어내고 새 것으로 바꾸는,
지금도 상상조차 하기 싫은 치료를 받아야 했습니다.
그리고 그 진통제조차 마약 중독의 의혹(?)을 받아가며 눈치를 보고
또 보며 사용해야 했습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때 그 병원의 의사는 내게 피부의 여유가 없어서가 아니라
나같은 화상환자를 본 적도 없고 어떻게 수술해야 할지도 몰랐던 듯합니다.

결국 2001년 2월 언제 끝날지 모르던,늘 기도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뒷걸음질만 치던 것같은 광야생활을 끝내고
하나님의 은혜로 좋은 의사 선생님을 만나 병원을 옮겨
드디어 얼굴에 피부이식 수술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7개월만에 눈을 감을 수 있게 되었다고,세수를 할 수 있게 되었다고,
드디어 집에 갈 수 있게 되었다고 감사하고 또 감사를 드렸습니다.

예정대로였다면 몸의 피부이식을 끝내고
사고 후 2개월 정도였으면 얼굴피부 이식수술을 받고
새 얼굴을 가졌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 문제로 저는
7개월만에 새 얼굴로 집에 돌아왔습니다.

어느 날 사고가 제게 일어났고 저는 얼굴 전체를 잃었습니다.
저는 방에 있는 거울을 치웠고 목을 들 수 없게 돼
거울조차 보기 힘들었지만 저를 보지 않으려고 애썼습니다.
그러나 밤에 유리창에서,밥을 먹다가 숟가락에서 저는
문득문득 저를 보곤 했었습니다.
오래 생각하지 않으려고 했고 떠올리지 않으려고 애썼습니다.

몇 달이 지나면서 멀리서나마 거울에 비친 저를 바라보게 됐습니다.
태어나 처음 보는 얼굴이었습니다.
그 어색함을 이기기 위해,마음과 생각을 지키기 위해 낯선 나에게
손을 흔들며 인사를 했습니다.

“안녕∼ 이지선”

거울 속의 새 지선이도 인사를 했습니다.
그렇게 조금씩 더 가까이 내게 익숙해지며 새로운 나와 친해져 갔습니다.

이제 다시 얼굴 수술을 하지 못해 이 병원 저 병원을 떠돌던
광야생활의 이야기로 돌아갑니다. 그때는 이유를 다 알 수 없었던,
그러나 한 순간도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않은 적이 없었던 2001년의 겨울
그 광야…. 매일 만나를 주셨지만 정작 예비하신 그 땅에는
데려가 주시지 않았던 그때를 저는 광야라고 칭합니다.

저는 그 광야의 의미를 다 알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늘 기도했었습니다.
섭섭한 마음에 제게 광야의 의미를 설명해달라고,
하나님이 나를 고치실 것을 단 한 순간도 의심하지 않았던 제게
그 광야를 주신 하나님의 의도는 무엇이었는지,
하나님을 증거할 때 온전히 감사한 마음으로 증거할 수 있도록
내 모든 그리고 아주 작은 섭섭한 마음이라도 없앨 수 있게 제게 알려달라고,
그 안에서도 분명 하나님의 뜻이 있으리라 믿고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집으로 가는 길에 하나님이 그 기도에 응답해주셨습니다.
“과연 사고 후 석달 만에 새 얼굴을 갖고 집으로 돌아왔다면…
그렇게 옛날 네 얼굴에 대한 모든 기억이 생생할 그 때,
언제나 거울을 보면 당연히 보이던 네 모습이 여전히 머리에 남았을 그 때…
거울로 너무나 달라진 새 얼굴을 보게 된다면…
지금처럼 이럴 수 있었겠니? 감사할 수 있었겠니?”

7개월의 광야생활동안 하나님은 이전의 나를
완전히 지울 수 있게 하신 것입니다.
머릿속에서 지울 수 있었을 뿐 아니라 마음으로도
지울 수 있게 하신 것입니다.
광야에서 훈련되지 못했다면 이 모습으로라도 살게 하신
하나님의 뜻을 알려고 하기보다는 원망부터 하며
‘하나님 왜요?’ 라는 질문만 퍼부었을
나약한 제 자신만이 남아있었을 것입니다.

이제는 모든 섭섭함을 떨쳐내 버렸습니다.
감사할 수밖에 없게 하시는,제게 늘 감사의 조건과 환경을 허락하시는,
그 무엇보다도 누구보다도 내 영혼을 사랑해주시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이런 모습이라도,지금 모습으로도,행복할 수밖에 없게 하시는
나의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나의 길 나의 신앙―이지선 ⑾] “하얀 눈보며 살아 있음을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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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것도 할 수 없게 돼버렸지만…
가고 싶은 교회도,성가대도,학교도 맘대로 갈 수 없지만…
그렇게 모든 걸 잃은 것같지만…나약함 가운데,상처투성이 몸 가운데
짧아진 손가락에도 하나님은 생명을 주시고
소망을 주시며 날마다 하나님을 향해 손을 들고
찬양하고 싶은 마음을 주십니다.
제가 기도했던 모습은 아니지만…하나님은 삶을 누리게 하시며
큰 일보다는 의미 있는 일을 하게 하실 것을 믿습니다.
저는 축복받은 사람입니다.

며칠 전부터 산책을 시작했어요.
병원 로비에서 뛰기도 하고 엄마를 휠체어에 태워 밀기도 하고
거의 한달만에 밖에 나갔어요.
병원 나무에 걸린 크고 아름다운 트리 장식도 보았고
흰눈이 펑펑 내리는 것도 봤어요.
오 하나님 감사합니다.
살아있어서 흰눈도 보게 하시고 추운 겨울을 다시 맞게 하시니”(2001년 1월11일).

얼굴에 피부 대신 거즈를 덮고 있던 시절,끝이 없을 것같은
병원생활을 하던 2001년 겨울 제가 처음으로 2개의 엄지 손가락으로
병실에서 쓴 글입니다.
그 해 생애 최고로 아름다운 눈을 볼 수 있었습니다.
모두 잠든 밤,밖에 나가서 쐰 차가운 바람 속에서 저는 살아있음을 느끼며
무한한 감사를 드렸습니다.

또한 저희 가족에겐 광야와도 같았던 그곳 구로병원에서 만나게 해주셨던
병원 목사님과 사모님은 하나님이 저희 가족에게 보내주신 사랑이고
위로였음을 기억합니다.
이 지면을 빌려 두 분께 정말 가슴 깊이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싶습니다.
하나님은 늘 견딜 만한 힘을 주셨고 피할 길을 주셨습니다.

그해 2월 제게는 너무 귀한 의사 선생님인 오석준 원장님을 만나
다시 한강성심병원으로 옮겼고 그곳에서
드디어 얼굴에 피부이식을 할 수 있었습니다.
수술은 대성공이었습니다.
이식한 피부를 고정시키느라 수백개의 스테이플러가 박혔었지만
그걸 떼어내는 아픔 이후로는 더 이상 치료는
제게 고통스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이제 더 이상 치료 카트 바퀴가 구르는 소리만 들리면
나를 치료하러 오는 소리인 줄 알고 초긴장하며 떨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2001년 3월7일 저는 드디어 퇴원해서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이 글은 퇴원하던 날,
‘가출소녀 이지선,7개월만에 컴백홈∼!’이라는 제목으로 썼던 글입니다.

“지난 여름밤 돌아오려던 집에 계절이 3번째 바뀌고서야
이렇게 집에 돌아왔습니다. 현관에 들어서며 사진 한장 찍고
그리고 이제 환자복이 아닌 제 옷을 입고 침대가 아닌 의자에 앉아
글을 씁니다.
전도사님이 오셔서 예배도 드렸습니다.
제가 지금 얼마나 행복한지 가출 안해본 사람은 잘 모를 거예요.
그리고 방금 전 너무너무 멋진 화분 하나가 배달되었어요.
퇴원을 축하한다고 시온성가대 지휘자님께서 보내주셨더군요.
너무너무 감사해요. 매주 거르지 않고 병원에 꼭 와주시고.
정말 긴 병에 효자 없다는데 하나님 사랑은 절대 그렇지가 않네요.

저는 알아요. 제가 이렇게 집에 돌아올 수 있었던 건
제가 잘 참아서가 아니란 걸요.
모두의 사랑과 눈물어린 기도가 합력하여 선을 이루었다는걸 알아요.
감사해요.
아직 모두 끝난 게 아니지만 이렇게 행복한 날 맞게 하시고
더 기쁜 날을 소망하게 하신 주님. 온몸에 남은 상처,
짧아진 여덟개의 손가락. 이 모든 것은 주님이 날 사랑하신 증거,
하나님이 다녀가신 흔적임에 감사합니다.

거울 보기 겁나는 얼굴. 10년후에 제가 사고 얘기를 하면 “전혀 몰랐어요.
화상당하셨었어요?
이 얼굴이?”라고 사람들이 놀랄 정도로 치유받길 소망해요.
10년후에요.
얼굴만이라도요.
덤으로 사는 인생.
처음부터 버렸던 욕심,이제 와서 주섬주섬 담고 불행해지지 않도록
기도할 거예요. 감사해요. 정말 감사해요”(2001년 3월7일)



[나의 길 나의 신앙―이지선 ⑿] 이식피부 당겨 찢어질듯한 고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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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식한 피부는
자꾸만 작아지려는 성질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처음 이식했을 때의 모습은 시간이 지날수록 없어져가고
당겨져서 완전히 다른 모습을 갖게 합니다.
퇴원하고 집에 돌아와서 살이 당기는 찢어질 듯한 고통에 아침마다
아무도 모르게 눈물을 삼켜야 했습니다.
제 스스로 ‘고달픈 나의 인생’이라고 할 정도로 집으로 돌아와서
느끼게 된 기쁨만큼이나 이겨내야 할 현실은 참으로 고달픈 것이었습니다.
이식받은 피부가 가려워서 잠도 푹 잘 수 없었습니다.
목과 턱은 완전히 당겨져 내려가서 흘러내리는 침 때문에
입에는 늘 손수건을 물고 다녀야만 했습니다.
입에 들어가는 것보다 흘리는 게 더 많아서 밥먹을 때는 수건을 깔고
먹어야 했고 당겨지는 피부를 늘이기 위해 매일 물리치료와
운동을 해야 했습니다.
운동을 하지 않으면 관절과 근육이 굳어버리기 때문에
게을리할 수 없었습니다.
늘 동생이 손을 못쓰게 될까봐 걱정하는 오빠랑 매일 싸우고 울며
달래고 애원하기를 반복하며 운동을 했습니다.

현실은 고달프고 힘들었지만
제겐 소망을 가지고 바라볼 수 있는 하나님이 계셨습니다.
애원하고 매달렸을 때 가장 좋은 것으로 응답해 주시는 하나님이 계셨습니다.

어느날 저녁 저는 안경을 끼고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습니다.
안경없이 보았던 것보다 훨씬 재미있었습니다.
그렇게 웃다가 제 눈에서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습니다.
이제는 더 이상 평범한 스물네살짜리 여대생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이전과는 다른 꿈을 꾸어야 합니다.
영화 같은 사랑 얘기에 가슴 들뜨기엔…저는 많이 달라졌습니니다.
그날 밤 저는 엄마에게 교회에 가자고 했습니다.
그리고 교회에 엎드려 울부짖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 저 어떡하실 거예요. 이제 어떡하실 거예요.
하나님 살아계시잖아요.
전지전능하시잖아요.
저 좀 도와주세요.
저 좀 도와주세요”

그 다음날 주일 예배때 저는 찬양을 하다가 속이 상했습니다.
저 무대 위 성가대 자리가 아닌 여기 이 자리에서 남에게 보일까 봐
모자를 눌러쓰고 가면을 쓰고 흐르는 침 때문에 수건을 입에 물고 앉아 있는
현실이 혹시나 꿈은 아닐까.
내가 아주 긴 악몽을 꾸는 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이 말도 안되는 영화의 주인공이 된 것이 속이 상했습니다.

찬양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동안 함께 하셨던 하나님이고 뭐고 저는 울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 제게 들려주세요. 이제 저 어쩔 건지 말씀 좀 해주세요”

찬양이 끝나고 목사님 설교가 끝났습니다.
목사님이 단상에서 내려와 제 옆자리에 앉으셨습니다.
그리고 저를 두 팔로 감싸안으시고 말씀하셨습니다.

“지선아. 내 사랑하는 딸아. 내 너를 세상 가운데 세우리라.
아프고 병든 자들에게 희망의 메시지가 되게 하리라”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입니다.
저는 상했던 마음이 풀어졌습니다.
그리고 예배가 끝나고 전에 함께 했던 그리고 앞으로도 함께 할
시온성가대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저는 종교 영화의 주인공입니다.
하나님이 시나리오를 쓰시고 감독까지 하는 기독교 영화입니다.
주인공의 실수로 조기 종영 위기를 맞았던 이 영화는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주인공이 언제까지 고난을 받을지 아직은 모릅니다.
그러나 곧 감독이신 하나님께서 그녀를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
푸른 초장에 누이실 것을 믿습니다.
분명 하나님의 메시지를 담은 영화로 사람들의 사랑을 받으며
해피엔딩으로 끝날 것을 믿습니다.



[나의 길 나의 신앙―이지선 ⒀] 이식피부서 눈썹 자라 온가족 감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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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황은 나빴지만 저는 날마다 좋아졌습니다.
기대한 것만큼 아주 빠른 속도는 아니었지만
하나님은 제가 낙심하고 울고 있을 때에도 일하시는 분이셨습니다.
다물어지지 않던 입이 다물어졌고
드디어는 입에 수건을 물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입술이 닿지 않아 ‘오빠’라는 발음을 하지 못해 늘 ‘오까’라고 불러서
생긴 오빠의 애칭은 그야말로 애칭으로 남게 되었습니다.
이식한 피부를 뚫고 눈썹이 하나 난 것을 보고
온 식구가 감격해서 울었습니다.
가려워서 먹던 약도 점점 줄게 되고
밤에 괴로워서 주무시던 아빠를 깨워 부르는 날도 적어졌습니다.
꿈쩍도 하지 않을 것 같던 손도 움직이고
단추도 채울 수 있게 되고 혼자서 옷도 입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제가 이만큼 고생했다”고 자랑하기 위함도 아니고
다른 사람들을 울리기 위해서라든가 동정을 받기 위해서 쓰는 것은
더더욱 아닙니다.
이렇게 어려운 가운데 누구도 살 수 있을 거라 말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하나님께서는 나를 이렇게 살리셨고
또 사랑하셨음을 말씀드리고 싶어서입니다.
부디 제 이야기 속에서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나게 되시길 기도합니다”

이 작고 보잘 것 없는 저를 세우시고 사랑받게 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저는 아직,여전히 많이 부족하지만
하나님은 제가 받은 은혜를 글로 쓰게 하셨고 나누게 하셨습니다.

제 글에 감동받았다고 하시는 많은 분들의 글 앞에서 저는
아주 많이 부끄러워지지만 정말 일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심을 체험하고 있습니다.
저를 통해,제 이야기를 통해,단 한명의 영혼이라도 하나님께 돌아온다면,
단 한명이라도 고통스러운 현실속에서 죽음이 아니라 삶으로
전환할 수 있게 된다면 제 아픔과 고난은 충분히 의미있고
가치있는 것이 됩니다.

“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는 위로로써
모든 환난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이시로다.
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에게 넘친것 같이 우리의 위로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넘치는도다”(고린도후서 1장 4,5절)라는 말씀처럼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제 고난이 위로가 되고 사랑이 되고
희망이 되길 원합니다.

세상의 눈으로만 보면 동정거리밖에 안되는 이야기이지만
제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위로를 통해 제 이야기가 하나님 안에서
정말 가장 값진 것으로 쓰임받으리라 믿습니다.
희망의 메시지가 되게 하시리라 믿습니다.
제 상처와 제 외모의 부족함과 짧은 손가락이
그저 장애로만 남지 않게 하시는 하나님의 법칙에 감사드립니다.



[나의 길 나의 신앙―이지선 (14·끝)] ‘험한세상의 다리’ 되신 하나님

sun.gif

땅겨진 목 피부 때문에 저는 턱도 없어졌고
등도 굽어져 척추엔 압박 골절이 생겼고
고개를 들고 앞을 보는 것조차 불가능했습니다.
그래서 2001년 7월과 8월 두차례에 걸쳐 목부분에 피부이식을 받았지만
퇴원을 하기도 전에 저는 다시 피부가 땅기는 것을 느꼈습니다.

물론 수술하기 전보다는 훨씬 좋아졌지만 고생했던 만큼
그리고 기대만큼은 아니었습니다.
이렇게 얇은 피부를 떼어서는 열 번을 수술해도 마찬가지일 것 같았습니다.
실제로 병원에서 목을 펴기 위해 수차례씩 같은 수술을 받는 분들을
보아왔습니다.

그래서 다른 방법을 찾고자 했고 미국과 일본의 병원 문을
두드리기 시작했습니다.
알아보던 중,미국측병원의 어마어마한 수술비용을 감당할 수 없기도 했지만
하나님께서는 일본에서 너무 귀한 의사 선생님을 만나게 해주셨습니다.
그래서 정말 기대하는 마음으로 일본행을 택했습니다.

저는 지금 일본 도쿄에서 생활하고 있습니다.
처음엔 치료를 위해서 온 줄 알았습니다.
미국과 일본을 놓고 제가 기도하고 선택한 것인 줄로 착각했었습니다.
그러나 이곳에서 중앙영광교회 이용규 목사님을 통해 신앙 훈련을 받으며
그 안에서 공급해주시는 영적인 축복과 은혜를 체험하고
하나님께서 저를 굳이 일본으로 보내신 크신 이유를 깨닫게 됐습니다.

요셉을 노예로 팔리게 해 애굽으로 보내셨던 것처럼
다니엘을 포로로 잡히게해 페르시아로 보내셨던 것처럼
제게 화상과 치료 그리고 수술은 그저 구실로써,1차적인 목적으로
저를 일본으로 보내시기 위한 하나님의 계획이었음을 깨닫게 됐습니다.

일본에 와서 3번의 수술을 받았고 저는
드디어 편하게 목을 들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전보다 훨씬 편해지고 좋아진 모습도
더할 수 없는 감사의 제목이지만,특히 이곳에서 더욱 깊고 풍성하게
느끼게 된 하나님과의 만남은 정말이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축복이고
기쁨입니다.

지금은 일본어학교에서 일본어를 배우고 있고
내년 10월 학기에는 심리학과 대학원에 진학할 계획을 갖고 있습니다.
상담심리학을 공부해서 아픔이 있는 분들을
예수님의 이름으로 위로하고 치료하는 것이 제 꿈입니다.
저는 저를 잃음으로 더 많은 사람을
가슴으로 안을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고난이 아니면 얻어질 수 없는 것입니다.
누구나 나름의 크고 작은 아픔을 안고 사는
이 세상에서 그런 아픔을 나누고
또 그것이 치유받아야 할 아픔이라면
치유받도록 도와주고 싶습니다.

상담자가 가져야 할 첫번째 조건은 내담자와의 ‘공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사람의 입장이 되어주는 것,
이제 저는 적어도 이제까지 머리로 하던 것들을
마음으로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진정으로 감사드릴 제목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또한 일본선교를 위해 하나님께서 저를 쓰시겠다면
기쁨으로 감사함으로 나아가고 싶습니다.

아직은 가야 할 길이 더 멀지만,여전히 수술이 필요한 부분들이 많지만
저는 기쁨으로 가려고 합니다.
지금까지 더 험할 때도 지켜주셨던 하나님께서 이제 어떤 상황이 닥치더라도
저의 모든 것을 책임져주실 분이시라는 것을 확신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지금,여기,제 안에,제 모습 속에 살아계시는 분이십니다.
그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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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植毛フォト&レビュ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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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나이브모발이식센터
    Hannaeve plastic surgery

    한나이브에서 3500모 모발이식 받고 어느덧 6개월이 지났습니다.원래 저는 전형적인 M자 탈모라기보다는 앞머리 라인이 전체적으로 조금씩 뒤로 밀리는 형태였습니다. 처음에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는데 어느 순간 사진을 보다가 이마가 원래 이렇게 넓었나 싶은 순간이 있었습니다. 예전 20대 때 사진과 비교해 보니 확실히 헤어라인이 많이 올라가 있었네요.나이가 들면서 머리숱이 줄어드는 건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생각했지만, 점점 넓어지는 이마가 신경 쓰이기 시작했고 결국 모발이식을 알아보게 되었습니다.상담은 여러 곳에서 받아봤는데 제가 원하는 헤어라인 높이와 디자인 방향이 한나이브에서 가장 잘 맞았습니다. 과하게 내리는 디자인보다는 원래 제 이마였을 것 같은 자연스러운 라인을 기준으로 디자인을 받았고, 견적은 3500모가 나왔습니다. 다른 병원에서도 대부분 3500~3800모 정도를 이야기했던 만큼 적정한 수치라고 생각했습니다.수술 방식은 절개와 비절개 사이에서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하지만 여러 상담을 받아보니 생착률이나 결과 자체는 큰 차이가 없다고 판단했고, 비용적인 부분까지 고려해 절개 방식으로 결정했습니다. 개인적으로 좋았던 점은 마취과 원장님이 상주하고 있어 수면마취를 보다 편안하게 받을 수 있었다는 점입니다. 수술 당일 긴장을 많이 했는데 생각보다 훨씬 수월하게 끝났습니다.수술 후 14일째 실밥 제거를 했고, 그때부터는 머리 감는 것도 훨씬 편해졌습니다. 이후 많은 분들이 이야기하는 암흑기가 찾아왔는데 정말 이식모가 대부분 빠지면서 다시 예전 상태로 돌아간 것 같아 조금 불안하기도 했습니다. 특히 3개월 정도까지는 이식 부위가 맨들맨들해 보여 괜히 거울을 자주 보게 되더라고요.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변화가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듬성듬성 올라오던 머리카락들이 한 달, 두 달 사이에 점점 굵어지고 밀도가 채워지면서 현재 6개월 차에는 이식 부위가 거의 대부분 덮인 상태가 되었습니다. 아직 100% 결과라고 보기는 어렵지만 이전과 비교하면 확실히 인상이 달라졌고 헤어스타일을 할 때도 훨씬 편해졌습니다.개인적으로 한나이브에서 만족했던 부분은 디자인 상담이 꼼꼼했던 점, 수술 과정이 체계적으로 진행됐던 점, 그리고 수술 후 경과 체크를 꾸준히 해주셨던 부분입니다. 모발이식은 수술도 중요하지만 1년 이상 결과를 지켜봐야 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하는데, 현재까지는 만족도가 계속 올라가고 있습니다.아직 최종 결과까지는 시간이 더 남아 있으니 1년 차가 되면 다시 후기 남겨보겠습니다.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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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다올의원
    毛多兀病院

    어렸을때부터 이마가 넓어서 나중에 머리심어야지 하던 고민을 이제야 해결했습니다병원은 세곳정도 돌고 고민 후 결정했구요 1.ㅁㄷㅇ 2ㅁㅇ 3ㅁㅈㄹ ㅁㅈ 비용은 크게 100만원까지 차이났는데 결정은 병원 수술 후기나 선생님말씀하시는 자신감이나 이런 점들 고려해서 결정했습니다모수는 3200모정도 이식했고 비용은700만원 초반 나왔습니다 절개랑 비절개랑 고민했는데 수술 예후는 비슷하고 개인차에 따라 선택하시는것 같길래 나중에 흉터 안남길려고 비절개로 해달라구 했습니다대다모에서 양유군 원장님 후기가 많길래 원장님께 수술받았는데 자신감도 넘치시고 제가 긴장을 많이 하는타입이라 이런 수술이 걱정되었는데능숙하게 잘해주셔서 수술 잘받았습니다.첫날에 빨갛게 핏덩어리 올라오길래 걱정됐는데 5일째인 지금은 하루에 한번 샴푸하다보니 다 사라지고 딱지 앉으려고 검게 변했네요시간이 더 지나봐야 생착이 잘됐는지 알겠지만 지금까지는 빠진것도 없고 피도 첫날 지나고 나지않고헤어라인하고 모발심은 곳보니 빽빽해서 만족하고 기다리고 있습니다 나중에 시간지나서 후기 더 올려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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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재성모발이식센터
    モ・ジェソン美容外科植毛センター

    植毛手術後、いつの間にか 4 か月目になりました。2カ月目から移植部位から産毛が一本二本と生え始め、現在も伸び続けている様子が見られます。まだ全体的な密度が期待したほど上がってはいませんが、手術直後と比べると明らかに変化が感じられます。特にヘアラインの部分は新しい髪が上がってきて、輪郭が少しずつ見えてきています。クリニックで3ヶ月ごとに院長が直接経過を確認してくださる点も満足です。現状と今後の進行状況を詳しく説明していただき、安心しました。まだ4ヶ月目なので、本格的な結果を評価するには早い時期だと思います。周りからも少しずつ変わってきたようだという話を聞いていて、期待感が高まっています。これから6ヶ月、9ヶ月、1年目までどれだけ密度と太さが良くなるか見守りたいと思います。次の経過、体験談も率直に残してみま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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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더함의원 모발이식센터
    モダーハム クリニック 毛髪移植センター

    モダーハム クリニック 毛髪移植センタークリニック、男性非切開植毛手術翌日体験談 ✔ふさ付きの種類(植毛or ヘアライン矯正):植毛 ✔ 病院名(イニシャル禁止):狎鴎亭本+ドハム議員 ✔薄毛タイプ : 前ライン下げ+前密度+エムザ中心 (ex. エムザ薄毛、頭頂部薄毛、前頭部薄毛、広い額、女性薄毛、ヘアライン矯正、薄毛ではない) ✔経過期間:術後の翌日 ✔本(浪)数:3196 毛 ✔植毛費用:800万ウォン台 ✔採取方法:非切開微細ハイドカット (ex. 切開毛髪移植、非切開毛髪移植、部分削髪、無削髪) ✔移植方法·医師/看護師移植可否:植毛器&医師移植 ✔経過内容及び写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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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헤어로의원 전주점
    HAIRO 毛髪移植 Jeonju

    1年経過を見て来てから2ヶ月も経ってから体験談を書いてみます。結論から言うと9ヶ月が経過した時もらった写真と今比べてみると 確かにもう少し太くなったというか、力が強くなったようです。植毛を受けて、この1年間、食習慣も変えてシャンプーも変えて 喫煙/飲酒も回数を減らしながらケアしたが、補償を受ける 気分なので気分が最高に良いです。ちょうど私が望んでいたデザインで得られて幸せですね。周りの職場の同僚たちも私の頭を見て関心を持つ 同僚が多くて推薦してくれたんですが、その中の何人かは 治療を受けて效果を見ている. 私と会う時にはいつもありがとうと コーヒーを買います 私も頭皮のケアを兼ねて 受けようかと思っているのですが、薄毛は、前もって管理しておいた方がいいと思います。急にm字ができて、落ち始めると すごく早いんです。それでは、私はこれで薄毛卒業しま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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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파모의원
    アルファモクリニック

    5/4(月)手術を行いました 今になって見るとまた思い出しますねこの手術するということで禁煙も一緒に始まって禁煙も41日目ですでも正直、よく覚えていません あそこに書いた毛包水もよく覚えていませんとにかく覚えている通りに書いてみると先に相談した時、最初にメッセージで分けた時に言ったモナンスよりもっと必要だとおっしゃっていましたそれで増毛して契約しました株採り、家政婦までしていたのでよく覚えていませんが、大体半日ちょっとしか経っていません。 私が麻酔中にすごく動いたそうです だからか途中で目が覚めました。 なのでもっと大変だったと思います 特に額が痛いあ、そして私はこれが当たり前だと思っていましたが、たまにレビューを見るとそうでもないようです ここは院長先生が添付から最後まで全部責任を持ってなさるようですよ参考にしてくださいちなみに後ろはこうです ビジョルゲです。6日が過ぎた時です 初めて血を洗い流して シャンプーも優しくしました この時は。そして今まで頭皮の感覚がありません。 でも偏頭痛が続きます とてもつらいです 感覚がないのに痛みを感じます 皮肉ですが事実です前はこうです 密度も気に入っています。私がよく分からないけど、これはきっと先生が 几帳面にしてくださったというのが感じられましたあ、そしてちょっとしたことですが、手術後に頭がすごくむくんでこめかみの方に眼鏡の跡がすっぽり入るほどです。もしやという方がいらっしゃるかもしれないのでお知らせします。 そしてあざが頭から鼻の下まで徐々に降りてきますそして、クリニックを一度訪問します。 かさぶたを取らないといけないんですこの時期になるととてもかゆいのにゴシゴシ洗えなくて苦しいのでクリニック行く日だけを待っていました。 かさぶたを取った後です ここからはちょっと快適になりますでもこの時からあの有名なショックロスが始まります。 40日目の写真です。本当にああなります シャンプーをする度にすごく抜けるんだけど 怖くて連絡したら自然な現象だとおっしゃってそのまま曇った目で暮らしています アルファモクリニック個人的におすすめします 私は患者を楽にしてくれるところが好きです ここがそういうところでしたなにとぞ結果も良くなってほしいです ありがとうございま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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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천 맘모스헤어라인의원
    インチョン マンモスヘアラインクリニック

    心配していた後頭部の痛みは、手術当日の夜だけ少し不快な程度でした。 翌日からは痛みが感じられず、日常生活に支障はありませんでした。むしろ痛みより楽に眠れない不便さが大きかったです。いよいよ生着期間が終わり、今日からは通常のシャンプーに入ります。 クリニック、院長にお会いして経過管理を確認しましたが、角質が落ちて移植毛がぎっしりと埋め込まれているのが見えます。 ラインも私が望んでいた自然なヘアラインで、やりすぎないようによくできたと思います。 後頭部の採取部位はすでに髪が伸びていて、後頭部を下ろすと目立たず、痛みもまったくありません。手術室の雰囲気が重くないようにずっとチェックしてくださった看護先生方と、手術後のケアサービスの時に気を使ってくださった管理士の先生方に感謝します。 これからショックロスがやってきますが、 メンタル管理を頑張ります。 気になる点をコメントしてくだされば、 分かる範囲でお答えしま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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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아트의원
    モアットクリニック

    こんにちは.10ヶ月ほど使う9ヶ月経過体験談です。とても満足して暮らしています。やる時もっとやればよかったと後悔することもあります。カンナムの農夫の先生、ありがとうございま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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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용닥터의원
    ヨン医師の植毛手術

    初の植毛を2011年に受け、早くも3回目の植毛です!一番目も二番目も微妙にずっと気に入らなくて最後だと思って本当に一生懸命クリニックを探してみました。そうするうちに、ユーチューブのアルゴリズムにヨンドクターが出てきて、偶然に見たら院長のユーチューブ映像を見ながら、薄毛と植毛に本気のようだという感じを受けました。ここなら最後の植毛 クリニックになりそうだという直感ですぐに相談の予約を取りました。どうしても3回目の手術だからあれこれ気になることが多くていっぱい質問を書いて行って一つ一つお聞きしましたが、面倒くさがる気配もなく、落ち着いて答えてくださって信頼ができました私が望んだのは前髪M字補強と頭頂部少量移植の2種類だったんですが院長が前髪のラインも本当にきれいに整えてくださって頭頂部も私が望むほど適切に移植してくださいました!2回目の手術後、惜しかった密度がきれいに満たされ、とても満足しています微妙に空いていた頭頂部も、手術後に適度に冷えたような感じでいいですね植毛の仕上げ旅路を素敵に仕上げてくださったキム·ヨンビン院長、お疲れ様でし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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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헤어 비절개모발이식센터
    フォーヘア植毛クリニック

    狎鴎亭(アプクジョン)フォーヘア植毛クリニックで非切開植毛を受けてからもう4ヵ月が経ちました。ショックロスのせいで最も息苦しかった時期を過ぎて、今は少しずつ変化が見える区間に入ったようで、経過を残してみます。手術前は、M字の部分がだんだん深くなり、前髪を下ろしても空いた空間が見える感じがありましたが、今は鏡を見るたびに 以前とは確かに違う印象を受けるようになります。 もちろんまだ完成段階ではありませんが、移植したものが見え始める時期という 表現がぴったり合うようですね。2~3カ月目の時は思ったより痩せる量が多くて、正直ちょっと気になりました。 特に僕はショックロスの時、 左右の差がかなりあったんですが右側より左側がもっとたくさん抜けました。 それで写真を撮ってみると片方が特に空いて見える感じもあったし ちゃんと育っているのかと思う時もありましたね。ところが、4ヶ月目に入ってから状況が少し変わりました。 抜けたところで髪の毛がまた上がり始めて 現在はむしろ右側のほうが早く伸びて、長さの差が見えるほどになりました。 最初はこれもいいのかなと思って 経過を見に行った時にお聞きしましたが、髪ごとに成長周期が違うので、片方が先に上がってきたり、長さに差がある場合が 思ったよりありふれていると聞きました。 時間が経てば自然に間に合うと説明を聞いたので、今はあまり気にしていません。個人的に今月に入って一番体感されるのは、前のラインの雰囲気の変化です。 以前はヘアバンドや髪を越えた時 M字の部分が先に見えたら、今は産毛が上がってきてラインがはるかに柔らかくなりました。 まだ密度が完全に上がっている状態は 違いますが、手術前の写真と比べると、空いたスペース自体がかなり減っているのが見えます。そしてポヘアは経過チェックをする時も単純にうまくいっています 程度で終わるのではなく、現在の状態と今後の変化過程に ついて説明をしてくれる方なので良かったです。 ショックロスの時、左右の成長速度が違って心配していた部分も直接確認してもらったら 余計なストレスが減るんですよ。 事後管理まで受けながら、なぜポヘアを訪れる方が多いのか、少し分かるようになりました。まだ4ヶ月目なので早い時期ですが、ショックロスで一番息苦しかった区間は確かに過ぎてきたと思います。 今は新しく生えてくる髪の毛がだんだん太くなる過程だと思っていて、これからは変化が生じる時期なので一生懸命管理しながら、どれだけ変わるか期待しながら見守ろうと思いま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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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압구정 맘모스헤어라인의원
    マンモスヘアラインクリニック - Apgujeong

     最後の10ヶ月目の経過を見にクリニック訪問しました。10ヶ月目になると、植えた髪がかなり長くなって、すぐ耳の後ろに移るかもしれません。 きれいに出来て管理することもないし、そのまま時間に任せればいいんですか??伸びた髪もすごく自然で、抜いた部分も目立たないので、よく見ても抜いたのかもしれませんそして前髪の方にヘアボリューム感があって ヘアラインのタトゥーをせずにヘアライン移植を受けてよかったと思うし着こなしがよくて、特にアフターケアが必要ないほどだったのに、頭皮ケアを10ヶ月目までしてくださってとても良かったです! 頭皮ケアもとてもすっきりしていて、院長、職員の皆さんもみんな親切です。そして、位置も高速バスターミナルから10分しかかからないし、地下鉄の駅からすぐ1分の距離にあるので、他の地域から行きやすいし、他の人からヘアラインを推薦してほしいと頼まれたら、必ずマンモスヘアラインクリニックを推薦しています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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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헤어로의원 동탄점
    HAIRO 毛髪移植 Dongtan

    風が吹く毎日、外出を避けたいほど前髪が見たくないので、暑くなる前に植毛を受けてみようと思いました。ちょうど友人の中に植毛をしたやつがいて、推薦を受けて東灘にあるHAIRO 毛髪移植クリニックに相談することになりました。他の友達も推薦してくれたクリニックがもう二箇所あって何箇所相談をもっと受けて見たが初めて行ったHAIRO 毛髪移植クリニック、この診断を几帳面にしてくれた姿を土台に植える母樹と移植方法まで詳しく説明してくださいました。他の病院と違ってもう少し細心なので植える髪の毛も几帳面にしてくれそうでHAIRO 毛髪移植クリニックで植毛を受けることに決めました.私の見る目が良かったのか、10日目に経過を見に行った時、生着やラインの形もきれいに撮れていましたスプレーとシャンプーをもらったことで、気をつけて管理したからかなと思って、なんだか胸がいっぱいになりました何日かちょっと管理してみたらそんなに難しくはなかったからこのまま薬だけちゃんと飲んで次の経過確認まで耐えようと思います今まではうまくいったようなので、これからも希望的だと思って期待していま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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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나라피부과의원
    モナラ皮膚科医院 / MONARA 皮膚科医院

    2週間になってすっきりと髪を洗いました。かさぶたのせいでかゆくて苦労しましたが、それでもよく耐えたし、禁煙禁酒が本当に大変でしたが、この際に切ってみようかと思います髪を洗ったらかさぶたもきれいに取れて、植えた髪がよく見えて新しくて期待が本当に高まります髪を洗うために抜けた髪もありますが、どうせ一度抜けると言ったので気にしないようにします 本当に遅い年ですが、植えられた通りに育ってくれれば申し分ないと思いますしっかり耐えて管理したいと思いま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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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나성형외과
    DANA整形外科

    去年真夏に手術したのにもう初夏ですね ショックロス来たら髪をどうしてるか心配してたんですが、二つが良かったです。1番はショックロス、運良く来なかったということ! 2番は、ショックロスが来るとしても、以前のM字時代のように前髪で適当に隠せばいいという点! だから、もしこんな心配で手術を先延ばしにする方がいたら、心配しないで進めてもいいですよ今はもう9ヶ月目ですが。 手術してから約5ヶ月間は移植毛が短くて四方に広がっていたが、今は長さがある程度伸びて落ち着いてよく沈んでいます この前にも書きましたがおかげさまで1n年ぶりに前髪を下ろすスタイリングもしてみます おでこをそっとかぶせるのが似合うと思って、前髪をちゃんと切ろうか悩んでます私はヘアラインと言えば、おでこの上だけ埋めるものだと思ったんです? ところで、女性の植毛はもみあげラインが本当に重要だと言っていました。手術当日にユ·スンヒョン院長がもみあげまでこれから自然に抜いてくれるんですが、心の中で「お、こうなったら顔が小さく見えるだろうな」と思いました。 ラインを本当にセンスよく整えてくれましたが、DANA整形外科デザインがなぜ浦項まで噂になったのか一気に理解しました。 私が思いもよらないディテールまで全て整えてくれました! 笑。本当に私よりヘアラインに本気だったユスンヒョン院長..たまに経過を見にクリニック行った時、ユ院長に会ったらすぐ私のことを覚えてますよ!! ご覧になってすぐ手術が本当にうまくいったと手術前と差が大きいのかと聞かれましたが、wwはい.. 無限の肯定の返事を残して来ました。最近、朝のドライ時間が半分に減ってとても幸せです。 適当にマジックまでしておいたから本当に手をつける必要もなく髪だけ乾かして出れば終わりですww 4400毛が少ない母数ではないので費用負担がなくはなかったが、投資したお金対比効果がとても確実で大満足中です! むしろ半日手術したことを考えると他の整形に比べて安い方ではないかと思うほど。。。悩んでいる方がいるなら悩みは本当に時間を遅らせるだけです。一日でも早く光明を探してくださ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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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프로의원
    毛プロクリニック

    植毛手術を受けてから2週目に入りました。 手術方式は非切開方式で選択し、そのおかげが分からず、日常生活や会社に通う時に楽な気持ちで通ったようです。 これから時間が経つ度にもっと良い結果を期待します。 また、クリニック訪問の度に職員の皆さんが親切に説明し案内してくださって心がより楽だったと思います:)一ヶ月目の時に体験談また残します。 <術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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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헤어로의원 대구점
    HAIRO 毛髪移植 Daegu

    21歳の時、軍入隊を控えて剃髪をしたんだけどおでこが広くなったことが分かりましたこの時は50ウォンの大きさだったんですが30代で100ウォン、30代後半で500ウォン40代には結局メダルほどの大文字のMになりました途中で薬も10年以上飲んだけど止められませんでしたそして、DAEDAMOで目を離しながら見積もりも出してみたんですが価格がほぼ700から1000まで超えていましたあまりにも負担になる価格なのであきらめて薬でも処方してもらおうとクリニックを調べるHAIRO 毛髪移植大邱店を訪れました。ところで来たついでに相談もしてみたけど見積もりも少ない上に先生も専門医に親切でとりつかれたように予約をしました移植前日までこれでいいのかなと思ったんですがやってみたら、なんで僕が悩んだんだろうと思って大満足しました気分ですが、また20代に戻ったような気がします幼い時ラインを探すのが本当に気持ちが良いですね移植過程は午前中は抜き、午後は植えましたか?麻酔中だから施術中には全然痛くなかったですただフードジャンパーを用意しなかったのが失策でした退院後、頭に包帯を巻いて行ったら少し恥ずかしかったです(ただの頭怪我人のふりをした)二日間は本当に痛かったんですが生まれ変わったラインにトイレに行くたびに笑いが出ました2週目になると髪も自然になって気にもせず元気に過ごしていますもうすぐ来るショックロスさえ耐えれば生まれ変わるラインがとても楽しみです9ヵ月後、また体験談残しま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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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디헤어플란트의원
    Modi hariplant

    男のようにヘアラインがm字なのがとてもストレスでした。 髪をあえて切らずに置いておくと、 あまり目立たない程度だったんですが 風が吹く時や頭が 予想外にさっと越えてしまうと とても困惑していつも顔が赤くなったり 熱くなったりしてました 涙涙 ヘアパンパンがなく、 しっかりしていてカチューシャもしたかったし 夏ごとに黒い汗をかくのも嫌でした··· (よりによって汗が多いタイプなので夏にハンカチは必須アイテムでしたwwww)薄毛はではなく、only 美容目的だけのヘアライン移植体験談です!!相談に行った時にもらった デザインの中で一番気に入って聞いたことだけ残して今まで持っていましたねこれはモディからもらったデザインなんですが過度に丸いヘアラインでもなく、自然に本物のヘアラインのようにデザインしてくださって気に入りましたそして、私が持っている予算に合わせて密度と母数の見積もりを出してくださいました!(価格のせいで顔色を伺ったんですが、楽に先に聞いてくださって とても良かったです (泣)何より過度な勧誘、強要がなくて相談を受ける間ずっと 心が楽で信頼ができて最終的にモディからもらうことになりました!!1年目の経過写真です 手術の過程、後を言うと移植を受ける日に長時間座っているのが大変でしたが、準備してくださったパッドがあって退屈せずに過ごせたし手術が終わった後には準備してくださったタクシーで帰宅しました!!クリニックでもらったサービスの中で一番良かったのがタクシーサービスと事後管理なんですが最初に家に一人で帰れる状態でも手術直後、人が多い公共交通機関に乗って行くのが恥ずかしいかも知れないでしょう??? このような患者の気持ちをよく考慮してくれたサービスだと思うと、完全に感動…。涙アフターケアは何か受けてから出るたびに心強かったです!!家では一人でできる様々な機械管理を通じて生着率がもっとよくなりそうな感じ···実際に感じただけじゃなくて、 1年目の写真をご覧になったように経過も良いですwwwwww!! いいから書きました良くなかったら書きもしませんでした 私wwとにかくもう思う存分、外国の人たちがたくさんしていたジェルを塗って 後ろにさっとめくる髪も挑戦してみました···でもこれは東洋人の頭の問題みたい^^僕は髪を上げてポニーテールを 一番たくさんしていますスタイリングが多様であることに感謝、頭にもう気を使わなくてもいいので感謝、ヘアパンパンを使わなくてもいいので感謝 とにかく無限の感謝ですww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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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 리즈모
    Rizmo Clinic - Busan Branch

     植毛手術を受けてからいつのまにか10ヶ月目に入りました。 私は手術当時、非切開と非削髪方式で進行したのですが、おかげで手術直後にも外観上の目立たないので、日常生活や会社に復帰する時に本当に楽で良かったです。 時間が経って10ヶ月が経った今は、ヘアラインが元の髪のようにとても自然に定着し、鏡を見るたびにとても満足しています。 これまでショックロスを経て管理してきた過程や変化についてご不明な点がございましたら、お気軽にコメントを残してください。 お互いに良い情報をたくさん共有できたらと思います。 ありがとうございま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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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원성형외과의원
    Mo.1美容外科医院

    植毛7ヶ月ほど経つと、頭頂部の窯の部分が以前より一層自然になりました。 完全にびっしりとしたレベルではありませんが、空いていた部分に髪の毛が伸び、既存の毛ともよく混ざるのが感じられます。 分け目が空いている部分にも上がっていますが、写真ではよく見えませんね。 敢えて暴かなければ大きなストレスがありません 最初は髪をあちこちしても頭皮が見えたが、今はスタイルによって頭皮の透かしがかなり減りました。どうやら体感がより大きく感じられるのは、指先に触れるボリュームや太いからだと思いますが、丈夫に育つ感じだからだと思います。頭頂部が相対的に変化を遅く体感する方々が多いという文を見て心を空にしていたが、満足そうに見守っています。 家族ももっと若く見えると言って喜びます。 まだ生え際が見えるので、残りの期間も楽しみにしながらケアしてみようと思います。 後でまた体験談残してみま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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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앤블레스모발이식
    Mo&Bless Hair Clinic

    ついに一年目を撮りました!!!AGA治療薬、食べてから2年くらい経ったし植毛も1年経ったのを見ると時間が本当に早いですね。依然としてAGA治療薬もよく食べているし植毛一部分も問題なく、もう完全に私の髪みたいです。もちろん元々私の髪だったんですけどねとにかく本当に鏡を見るたびにモアンブレスで移植してよかったと思います (´;ω;`)周りに切開した知人も何人か見たけど傷跡は見えないけど、みんなよくできてましたねクリニックは違うけどでも私は非切開にいい値段で結果もいいので私が勝者のようで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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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 그로우의원
    釜山グロウクリニック

    植毛してからもうすぐ1年目になりますね 1年も経ったなんて時間が本当に早いですね 植毛の前は手術する時に痛くないかそれが一番の心配だったが今はその少しの苦痛を忘れて久しいので記憶もあやふやですね植える前に写真を見ると私がこうだったのかなと思ったり、今はすごく満足度が高いです。植えていなかったら大きな後悔になったような気もしますし、もっと早く植えておけばよかったという後悔もありますが、満足度が高いので今は満足しながら過ごしています美容室に行っても見た人の中で一番よかったと思うそういう言葉に満足して過ごしています回復過程は私はすごく早い方だと院長がおっしゃってました 手術当日の次の日はむくむので少し大変でしたが、時間が経つほど大したことではなかったです 今は安心して歩き回ることができてとても嬉しいで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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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블라인의원
    The Nobleline Center for Alopecia Care

     4ヶ月になったのに、頭が出る速度や面積などは他の方々と似たように見える時もあれば、より良く見える時もあります。 私はもう日常なので、何も考えずに生きていますが、周りの人たちが私よりむしろ驚いたりします。 ただ、とても不思議なのは後頭部から本当に大量の髪の毛を採取したのに、言わないと誰も本をするほど目立たないということです。 この部分は本当に見るたびに院長の医術に感心しています。 頭頂部の部分は、最初からあまり植えないのでよく分からなかったのですが、前の部分に髪の毛が上がってくると、比較的に少し空いて見える感じがなくはないですが、まだ4ヶ月なのでもう少し待ってみます。 前が埋まると後ろが空いて見えるアイロニーがあります。 この部分は大量移植をするなら、むしろ事前に知っていた方がいいと思います。 現在までとても満足しており、さらに毛量が満たされれば、これからますます満足できると思いま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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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바른의원
    モバルンクリニック

    モパルン医院で1年前に毛髪移植した男性です。おでこが先天的に広いし、M字脱毛が進行中みたいクリニックを探していて、テレビや様々なメディアでお会いしたハンサンボ院長を訪ねて、植毛を受けることになりました。 相談してくださる方々と院長、看護師の方々も本当に親切で、本当に几帳面にチェックしてくれます。 今ちょうど1年が過ぎた時点ですが、私の髪がひどいくせげにもかかわらず、生着率も本当に良くて結果が本当によく出て満足しています。 ありがとうございまし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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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뉴헤어모발성형외과의원
    ニューヘアー

     <手術前> <術後>植毛手術後7日目の体験談です。普段、上髪薄毛がどんどんひどくなるのが気になって、植毛を決めました。 手術当日には若干の痛みと額の腫れがありましたが、思ったよりひどくなく、処方された薬を服用しながら案内された注意事項をよく守りました。手術後2~3日間は移植部位に触れないように気をつけ、寝る時も頭が押されないように気を使いました。 現在7日目ですが、腫れはほとんど治まり、痛みもほとんどありません。 まだかさぶたが残っていますが、生着に重要な時期だということで、丁寧にケアしています。まだ結果を判断するには早いですが、現在までは大きな不便なく回復中であり、満足しています。経過を見守りながら、時々体験談残してみま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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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우림의원
    Mowoolim Clinic

    狎鴎亭駅毛髪移植モウリム医院体験談です。 手術前に おでこが広くてM字がありました。知人の推薦でモウリム医院で相談を受け、ハン·ジヨン室長に相談を受けました相談も親切にしてくださり、イ·スンア院長を推薦していただき、院長に相談した後、母数を1700匹にすることになりました私は怖がりで緊張する方ですが、職員の皆さんと院長先生が皆親切でよかったです 手術当日は麻酔で痛みはなかったです その後も調剤薬を飲んだので痛みは大丈夫でしたが、私は切開で手術をしたせいか、寝る時に切開部位が触れるとかなり痛みがありました????人間の欲は果てしないと、もっとたくさん植えればよかったとも思いましたが、一応この植毛もよく生着したということなので、よく維持されるといいです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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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모의원 부산점
    Momo Clinic

    こんにちは、移植して1年最終体験談残してみます。前にも手術して何回か体験談を残しましたが、途中でもっと残そうとしましたが、面倒でもあり、髪がよく伸びるのが見えて、そのまま忘れて 過ごしてから最終体験談は共有した方がいいと思う。 残してみます。私は薄毛がとても古いですし、10年前に頭皮注射治療も何回かしましたし、途中でアボダトも 少し食べてから食べるのが簡単ではないこともあり、中断して放置していましたが、昨年、植毛を決心しました。放置したら、薄毛は、もっとひどくなりました。蔚山に住んでいるのですが、調べてみたら蔚山脱毛病院は特になくて釜山の方に調べてみて、DAEDAMO 体験談を見ながら、植毛 クリニックが多くて釜山に相談を受けて、コ·サンジン院長の相談が一番良くて、クリニックも大きくて良かったので、ここで移植を受けました。私が非切開でもらったんですが、移植して一日休んで仕事をしたんですが、回復が本当に早くて良かったです。初期に何日かかゆいことがあって私もビニール手袋をはめて寝るべきか悩みましたが、長くは続かなかったし、二、三日くらいがそうだったようですねショックロスは2ヶ月ぐらい来て移植して 6ヶ月目ぐらいになった時には髪の毛が本当にたくさん伸びました.今1年経って、普通髪の完成が1年くらいかかると聞きましたが、私の基準では10ヶ月くらい経った時に髪がほぼ完成していました。この前にアップした写真と今回の1年目の写真と比較写真をアップしてみます。皆さん、得帽してくださ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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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우다의원
    MOUDA CLINIC

    MOUDA CLINIC女性院長の美感と几帳面さを信じて選択しました。相談も院長先生とだけ行い、気になる点をすっきりとおっしゃってくださったので、すぐに決めました。手術してから3週間になりました「これまでシャンプーがうまくできないことを除いて、大きく痛くもかゆくもなく、不便でもなく元気に過ごしてきました。生着もよくできたと言うから安心です。特に自然に空いた部分だけを満たすことを望んでいたのですが、産毛まで生かせるように移植していただいて、さらに気に入っています。2週目には後頭部に薬もかけてくださってレーザー管理も受けました。これからがとても楽しみです。まだ頭皮は少し赤いですが、時間が経てばよくなるでしょう。あまり心配にはなりませ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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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 맘모스헤어라인의원
    釜山マンモスヘアラインクリニック

    植毛をしてもう 9 か月になりました。 時間が本当に早く過ぎたようです。術後のケアは特に何もなく、クリニックで案内された通りに薬を着実に服用して管理してきました。 序盤は心配もありましたが、時間が経つにつれてどんどん変化が見え、今はかなり満足しています。やはり、マンモスヘアラインクリニックを選んでよかったと思います。 経過を見に来る度に几帳面に状態を確認してくださって親切に応対してくださっていつも感謝しています。現在も満足のいく状態ですが、普通の植毛は1年から長くは1年6ヶ月までも変化があり得るということですので、これからの姿も楽しみにしています。手術をお悩みの方に、私の経験が少しでも役に立つといいですね。 これまで親切に管理し、気を使ってくださったマンモスヘアラインクリニック医療スタッフの皆様に感謝いたしま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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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움찬의원
    ウムチャン毛髪移植クリニック

    植毛を悩んだ末に訪れたのですが、相談からとても親切に進めていただいて安心しました。 院長が直接相談から手術まで全過程を几帳面に進行してくださり、途中で気になる点も詳しく説明してくださいました。 手術当日も楽に受けられるように、細心の注意を払っていただきましたし、結果も満足です。 植毛をお悩みの方におすすめしたいと思いま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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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세모벨르의원 인천점
    Yonsei Mobelle Clinic - Incheon Branch

    非切開植毛で3000本移植しました。現在まで2週間目ですあちこちたくさん調べてクリニック選択しました院長、相談してくださるデザイナーが理解できるように詳しく 教えてくださってありがとうございましたちょうど額の手術を考えていたのですが、うつ伏せになって手術をするので 額の施術は移植をした方がいいということで 移植先  しました 私が顔の施術に興味があるからです..^^麻酔は部分麻酔でしました。手術は比較的簡単でした クリニックでおっしゃったとおり手術してから管理も頑張りました。髪の毛も薄く、毛量もないのでうまくいくかという心配はありました現在2週目なので、まだよく分かりませんが、元々は髪の毛がなかった部分が あるのを見ると院長がよくしてくださったようです この髪の毛がすくすく育つと思うと楽しみです。次の四箇月の経過の時  また写真をアップしま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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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세모벨르의원 종로본점
    延世モーベル医院鍾路本店

    数年前からM字の部位がどんどん上がって、ヘアラインが後退するのが目立っていたのですが、最近の写真を見ると、思ったより進行が進んでいるようで、植毛の相談を受けてみました。クリニック診療の結果、現在ヘアライン薄毛が進行中の状態であり、特に両方のM字部位と前頭部の密度が減少したと診断されました。 まだ頭頂部の状態は比較的大丈夫ですが、今後の進行可能性も考慮すべきだと説明を受けました···相談時に私の後頭部の状態を確認した後、非切開方式で約3000本程度移植すれば、現在のヘアラインを補完し、M字の部位を自然に矯正できるという意見を受けました。 無理に低いヘアラインを作るよりは、年齢や顔型に合った自然なデザインを勧められ、全体的に共感して手術を決めました。手術前に最も悩んだ部分は生着率と今後の薄毛進行でしたが、移植後も薬物治療を並行しながら既存の毛髪管理が重要だという説明を聞きました。結局、非切開3000本の移植で進行することに決定し、1週間経過から3ヶ月、今日6ヶ月経過診療を見ましたが、院長にも申し上げましたが、現在のスタイル作りがとても楽になりました。薬物治療も悩んでいる状態です。 これから経過写真と一緒に体験談残してみます。同じ年齢でヘアラインやM字でお悩みの方の参考になればと思って、みんなで脱毛することを願いま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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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든모의원
    Modeunmo Clinic

    こんにちは。10年前くらいに切開で植毛を受けてまた密度が落ちる気がして再移植を行いました ^^非切開で行っただけに傷跡もなく、以前よりずっと満足しましたショックロスは前にも経験しましたが、まだ適応できませんね。これからが始まりだと思って もっと頑張って管理して、いい結果をお見せしま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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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천 마이모 모발이식의원
    MYMO 毛髪移植 Incheon

     かさぶたを取った後です。まだ移植した部分に赤みが残っている状態です。そして、髪の毛を採取した後頭部も少し痛みがあり、たまに痒いです。 回復段階にある正常なことだと言いました。これから約1カ月間、移植した髪が抜けるそうなので、しっかりケアしま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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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엠의원
    モエム医院

    [カウンセリング当日][手術当日][2週間後]写真はまだ2週目までしかありませんが、時間が経って非切開手術4週目に入りましたね。最初の相談の時から親切な相談スタッフの方と愉快な院長のおかげで気楽に予約をしてきたようです。手術当日もおやつとお粥を用意してくださる繊細さも、モエム医院は大きな長所ではないかと思います。実際には3700モを予想して予約をしましたが、手術中に必要だと思ったのか手術が終わってみたら3800モをしてくれましたこの場を借りてもう一度感謝します2週間後、写真を撮ってから8日が経った後に書く文ですが、今はあの写真より髪の毛もたくさん伸びていて、かさぶたも切れてとても楽に日常生活を送っています。 周りでも言わなきゃ分からないくらい自然に出来てとても気持ちがいいですねまだ悩んでいる方がございましたら、モエム医院、チョン·ジフン院長に一度相談してみることをお勧めします!院長の肯定的なエネルギーを感じ、良い結果が出ることを願っていま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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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플러스성형외과
    MoPlus Plastic Surgery

    薬は相変わらずよく飲んでいます。(ミノキシジルを半分に切って飲んでいます)ショックロスの時に抜けた髪の毛は、もう出ようとしているのかざらざらと触れます。抜けなかった髪はそのまま伸びましたなので長さは少し違いますね肯定回路を回して最大限ストレスを受けずにケアだけに集中しました今日もクリニックに行って 注射を打ってきたんです。注射を打ってもらった後に写真も一度撮ってみました髪をめくって歩いても自然に見えるので、あえて別に隠したりはしません今のペースで育ってくれれば、モプラス整形外科の先輩たちのように私も卒業できるのではないかと思いま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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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세모벨르의원 대구점
    Yonsei Mobelle Clinic - Daegu Branch

    実は私は10年くらい前に切開で植毛を一度受けたことがあります。 当時はそれなりに満足しましたが、時間が経つにつれて薄毛も少しずつ進行し、 特に真ん中の分け目は部分密度がかなり空いているように見えました。 鏡を見るたびに気になって結局再手術を調べるようになりました。再手術クリニックを探しながら、私が重要視したのは2つだけでした。1番目は非切開、植毛、経験の多い所であること。 正直に申し上げますと、1回目の切開手術で とても大変だった記憶があって 今回は絶対に非切開にしようと思いました。2つ目は手術の開始から最後まで、お医者さんが直接執刀するところであること。 相談してみたらスリットは医師がして、実際の移植は 他の方々が進行する所もありました。 私はそのような部分が少しかかりました。 費用は別として再手術なので最初から最後まで 院長が直接してくれる所を望んでいました。色んな所で相談を受けていて、 延世モーベルで相談を受けたんですが 説明をとても詳しくしてくださいました。 特に私のように再手術する場合は、以前移植した部位が硬くなっていて 植毛機だけ使うと、髪の毛が飛び出すポッピング現象が起こることがあるそうです。そこで、生着率を高めるためにスリットと植毛機を一緒に使う方法を勧められました。 無駄に一つの方法にこだわるんじゃなくて 現在の頭皮の状態に合わせて進行するという点が信頼できました。何より良かったのは、スリット過程も医師が直接行うという部分でした。 このような点が、クリニックを決定する上で最も大きな理由になったようです。まだ手術して間もないですが、現在までの経過は満足のいくものです。 移植部位も思ったよりすっきりしていて、 相談の時に聞いた説明と実際の手術過程が大きく違いませんでした。もちろん最終結果は何ヶ月か経ってみないと分かりませんが 今の感じではうまく定着しそうだという期待ができます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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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P성형외과
    JP 毛髪移植病院

    昔、植毛を計画したんですが 失敗に終わって最近また相談に行って2週間前に植毛もらいました。代わりに今回は眉毛移植の相談も受けて一緒に移植を進めましたね写真のように移植部位に植えられた髪が全体的に定着しています赤みとかさぶたもほとんどなくなりました眉毛は手術前の写真を見れば分かると思いますが空いている部分には最初から育たなかったですそれで170毛ほど少量で移植を受けました形がずっと自然になった気がして、私はいいんですが、どうなのか…···最初はおでこも少し腫れたけど、 一週間ちょっと経ったら自然に回復したし今は日常生活を楽に過ごしています後頭部の採取部位も髪の毛が伸びるので、思ったより目立たないし確かに雨切りがいい感じですねショックロス、できたら毛髪が脱落するそうですがちょっと心配ですが、このまま育ってほしいで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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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주 압구정모비앙의원
    光州狎鴎亭モビアンクリニック

    周辺の方の施術後の姿を見て訪れるようになったモビアン。チェ·ヒョンヨン院長に施術を受けた方の姿がとても素敵に見えて、私もチェ·ヒョンヨン院長に移植を受けました。 睡眠麻酔が苦手な私は、2回もしなければならない状況にとても緊張していましたが、隣にいた看護の先生、院長先生がずっと話しかけてくれて楽にしてくれて、緊張が解けて楽に移植を受けることができました。 院長が移植ラインを本当に自然に整えてくれて、私の元のラインのように見えて、日常生活に気を使わずに生活しているのでとても嬉しいです。 周りからもヘアラインが生きていて見栄えがいいと言われたので、これからが楽しみで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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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모의원 수원점
    モモクリニッククリニック水原店

    こんにちは~やはり移植が答えだ。 私も移植して時間が経つにつれて結果が出て、その言葉を直接体感しているところです。 前から植毛したくて相談も受けていたのですが、時間を作るのも大変で、何か迷っていて、去年やっと移植手術を受けたのですが、本当に結果は驚きですね。深かったm字がまんまと消えました。 ヘアスタイルするのがとても自由なようです 私が髪をまた伸ばそうという気持ちで、2ヶ月前くらいに全体的にスポーツヘア? 半四角に近くで髪を切ったんですが 全体的にまた伸びているところですが、髪が完全に伸びたら前はm字のせいでできなかった髪に挑戦してみようと思います私が前から手術を調べる時、ソウルの方にあるクリニックも相談を受けてみて、モモ水原店ができたのを見て調べて手術を受けたのですが、ムン·ヒョソプ院長がおすすめです。以前、体験談も探してみて、クリニックに聞いてみたりもしましたが、院長は植毛の経歴が20年以上で、手術件数も5000件を超えるベテランでした。 やはり植毛は医師の経歴と技術が一番重要だと思います。私はよくあるm字でしたが、院長が難しい手術もたくさんしている方だと説明を聞きましたが、確かにクラスが違う感じです。私の体験談をご覧になっている水原の皆さん、ソウルまで行かずに私が手術したモモクリニック水原店、いいですね。院長の経歴は確実で、モモクリニックはソウルでも有名なクリニックだと信じています。私は10ヶ月ですが結果が全部出たようで次にまた体験談を残すかは分かりませんね皆さん、m字を終えて 得慕してください フフ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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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헤어로의원 부산점
    HAIRO 毛髪移植 Busan

    脱毛ケアをうまくできなかった結果前髪がおでこだけ抜けてた私の髪が だんだん広くなったのは越えて頭頂部まで上り始めましたもっとひどくなったらかつらをかぶらないといけないと思う薄毛クリニック多い西面の方に何ヶ所か相談に行きました。相談に行ったところ全部植える母数が多いと聞いてその中でたくさん植えなければならないなら経歴が長い方が上手だと思う釜山のHAIRO 毛髪移植で植毛を受けました。坊主にしてもらいました手術時間がちょっと長くかかったが不便なことはずっとチェックしてくださって楽に手術を受けた記憶があります経過も確認しましたが、今までは状態が大丈夫だという返事を聞いて鏡や写真でラインや髪の毛の密度まで見ると 僕が見ても大丈夫そう実力の確かな院長に受けたという感じがします処方も一緒に受けて、 管理事項も説明してもらったんですがこれからは教わった通りに管理を頑張らないといけませ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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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로웰의원
    グロウェル医院

    非切開3000本で移植を受けて6ヶ月目です。 手術前にデザインを終えて撮った写真を見れば分かると思いますが 額のラインも汚くてアンバランスで、かなり見苦しい状態でした。 それで相談の時、院長に ヘアライン矯正をしながら 前髪をきれいにして歩きたいと お話しました 僕の顔の比率に合わせて ラインを自然に作ってくださいました ショックロスの時は、植えておいた髪が かなり抜けて気苦労をしたんですが その次の月から不思議にすくすく育ってて 今はそれでも見栄えがいいくらいになりました。 まだ6ヶ月目だから髪の毛が100%伸びたわけでもないし 密度がもっと上がらないといけないとは言うんですが 正直、今の状態だけでも十分満足ですね 鼻切開で後頭部を採取したところもすぐに回復し 日常生活に大きな不便もありませんでした。 何よりヘアラインがキレイになって印象自体も良くなった感じです。 後で1年目になって密度がもっといっぱいになったら また体験談残しに来ま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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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모성형외과의원
    モモクリニック

    こんにちは、移植後最後の体験談を書いてみます。移植を受けて何回か体験談を残しましたが、結果が完全に出て残す体験談だから妙な気分ですね。私に植毛を推薦してくれた先輩の結果を見たり、DAEDAMOを通じて他の方々の体験談をたくさん見ましたが、私がこんなに良い結果を得るとは感慨深いです。M字で生きて残った頭を守るために薬を始め、会社の先輩の勧めと自慢で 私もクリニックを紹介されて 夏休みを 使って 去年 手術を 受けました。江南に植毛 クリニックが多いですが、すでに他のところより先輩が検証したクリニックがモモ整形外科なので他のところには行かず、すぐにここで相談を受けて手術まで受けました。DAEDAMOに情報も多いので、皆さん詳しいと思いますが、私が経験した過程を少し紹介してみます。まず、M字で2500毛の見積もりを受けて手術を受けましたが、切開と非切開の両方が可能な状態なので 悩んだ末に費用を少し節約しようと切開を選択し、切開で後ろ髪の剃髪がなく、手術後の後ろ髪も目立たないので、このような部分ではむしろ良かったです2週間経って縫い目の除去と指紋シャンプーを始めたのですが、2週間の間、髪を洗う時にちょっと不便で気になっていました。ショックロスという時間が、本当に植毛をするとほとんどの人が経験する必須過程ではあるのですが、実際に直面すると何か苦々しくもあり、少し心配にもなるそんな時間でした。移植してぎっしりと植えられていた頭が、ある瞬間、すべて消え去り、再び禿山になった姿をひたすら見守りながら待っていた時間でした。3ヶ月ほどショックロスが維持されました。そして折り返し地点を回る頃、本格的に空いていた部分に再び頭が伸び始めましたが、この時からは思いっきり疾走するように頭が豊かに上がってくるので本当に感動です。医療技術の驚きを自ら体感しました。昔、子供の頃を思い出してみると、ハゲで暮らしたり、生半可なかつらをかぶっている方々の記憶がありましたが、今は植毛でなくなっていた髪も戻す時代ですね。毛髪移植費用もちゃんともらって手術したし、結果もとても満足ですね。色々とモモクリニック、ありがとうございます。皆さん、植毛で私のように良い結果が得られることを願ってま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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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모의원 대구점
    Momo Clinic

    こんにちは、移植記録を残します。僕はすぐに植毛するとは 思わなかったんですがM字は前からあって、この前から妻が言うには頭頂部の方もちょっと抜けているらしいんですよ。植毛をすぐにするつもりはなかったが、薄毛、植毛関連の携帯電話から見たせいか…。アルゴリズムが怖いくらいに私に植毛関連したコンテンツを持ってきてくれました。強制的に見ていると気になるし、費用がどのくらいかかるのかも大体調べたくて経験として何ヶ所か相談を受けてみたが、あるところは費用が本当に高かったり、今すぐ手術しろと言うところもあったし、病院ごとに相談が少しずつ差があったんですよあるところは手術すれば良いが決定は私がすることだとおっしゃったし手術前後の写真とこれから予想される薄毛進行など全般的な説明もしてくださって良かったが説明も聞いて他の方々の手術写真も見てみたらすぐ手術する気がなかったが何か見物生心のようにずっと頭の中に植毛に対する考えが離れないんですよ。元々、生きてきてこんなに何かを早く決めるタイプではないのに、ずっと思い出して妻も手術するように勧めたりもして、相談が総合的に良くて費用もよくしてくれたカン·ドンウ院長に手術を受けることに決めて3500毛の手術を終えました。 M字3000本、頭頂部に500本移植してもらいました。カン·ドンウ院長関連のコンテンツを初めて見て、何かジェントルで好感が持てる感じでしたが、実際に相談を受けた時も肯定的に考えました。 何より上で言ったように私の立場で説明してくださり、これからどうなるのかなど総合的な相談をしてくださることに感動しました。M字と頭頂部まで一度に手術して、薬も処方されて飲み始めました。私の基準では、うっかり手術まで済ませましたが、手術を受けたので良い結果まで期待しています。他の方々はどうなのか気になりま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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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제림성형외과의원
    MOJELIM Hair Transplant

    いつの間にか植毛と1年になりました。カエルのオタマジャクシ的に考えられないって.. 今とても自然になって薄毛があったのかさえ.. 迷ってますねこれが手術前でした  こう見ると本当にひどかったですね..本当に風が吹いたらM字が恥ずかしくて隠してた時代でした。そして手術して1日目 本当に密度がありましたねこれが全部私の頭になってほしいと思って、本当に嬉しかった記憶があります。そして6ヶ月目 この時は少し心配でした。とにかく頭がもっとびっしりなるということが分かったが、もう上がっていた時期だったんですよ。そしてこれが最後の1年目の私の髪ですね 本当によく育ちましたよね?今は本当に自信を持って通っています風が吹こうが吹こうが吹こうが吹こうが吹こうが吹こうが吹こうが笑笑20代が豊かだった前髪を再び取り戻せて、とても幸せなこの頃です。これはすべてチェドンウク院長が とてもよくしてくださったおかげです ありがとうございまし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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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람부는날에도 성형외과의원
    パラミクリニック

    髪が細くて毛量も少ない方なので、最初は植毛の相談で訪問したのですが、相談後の私の状態には額の縮小がより適しているということで、進行することになりました。 パク·スホ院長が手術方法や回復過程、使用される純正品のエンドタインまで本当に詳しく説明してくださって信頼できました。 手術前後にプライベートな回復空間が別にあって、保護者と一緒に緊張もたくさんほぐせ、全体的な動線やケアも楽でした。 傷跡は全くないわけではありませんが、髪の毛のすぐ下のラインなので、思ったより本当に目立たないし、周りの人たちも全く知りませんでした。 幼い頃から広い額がいつもストレスだったが、今は髪を結ぶのも自信ができて、一生悩んでいた部分が解決された感じでとても満足していま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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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전 리즈모 모발이식 센터
    Rizmo Clinic - Daejeon Branch

     薄毛はおよそ5年前から徐々に進行し、最初は大したことなくやり過ごしたのですが、ある瞬間、鏡を見るたびに気になっていました。 薬も飲んでみて管理もしてみましたが、目立った変化はなくて、結局植毛を悩むようになりました。 様々な薄毛コミュニティを探しながら情報を集めていたところ、大田植毛の方を調べていたら、自然に大田Rizmo Clinicを知るようになりました。私が住んでいる論山から大田までクリニックを調べるのが面倒だったかもしれませんが、レビューを見てみると大田Rizmo Clinicに対する信頼がますます積もりました。 単純に広告の感じではなく、実際の経験談が多く、結果も自然だという話が多くて心が傾きました。結局、直接相談を受けてみることにし、論山から大田まで移動する手間より結果がもっと重要だと判断しました。相談を受けてみると、なぜ多くの方が大田Rizmo Clinicを選択するのか理解できました。相談過程がとても几帳面で、現在の状態に合うデザインと移植方向を細かく説明してくださって信頼できました。私は計4554個を非切開方式で進めることになり、過度に勧誘する感じなしに必要な部分だけを正確に指摘してくれる点が印象的でした。大田植毛 クリニックの中でもこんな細かい相談は珍しいと感じました。手術当日は思ったより緊張しましたが、過程自体は比較的楽に進みました。非切開方式なので回復への負担も少なかったですし、途中で状態をチェックしていただいて安心しました。 何より医療スタッフの熟練度が感じられて、進行速度や集中度がかなり高いという感じを受けました。大田(テジョン)Rizmo Clinicを選んでよかったという思いがこの時一番大きく浮かびました。まだ時間があまり経っていませんが、今のところは全般的に満足度が高い状態です。 これから経過を見守る必要がありますが、第一ボタンをうまくはめたという感じが大きいです。 大田まで移動するのが悩みの方でしたら、私のように結果を優先して考えてみてもいいと思います。 大田植毛悩み中であれば、大田Rizmo Clinicは十分考慮に値する選択肢だと思いま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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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먼트의원
    Moment Clinic

    手術していつのまにか6ヶ月目になりましたね。 名節連休もあったし、ちょっと忙しく過ごしていたら5ヶ月目にはクリニックに行けず、先日6ヶ月経過を見に行ってきました。 初めて手術した時は、いつ頭が上がってくるか待つ気持ちが大きかったのですが、今は鏡を見るたびに少しずつ変わっていく姿が見えて不思議です。3~4ヶ月目くらいから産毛が生えてくるのが見えて、5ヶ月目になると生えてくる髪の数がぐんと増えた感じでした。 以前は頭頂部や前方が光に照らされると頭皮がより目立って見えましたが、最近は同じ照明でも以前よりはるかに空いていないように見えます。 今はほぼ6ヶ月目ですが、確かに違います。 一番大きな違いは髪の太さです。 6ヶ月入ってきて、既存の髪のように太くなる子たちが目にたくさん見えます。 ラインも最初のデザインのまま自然に整ってきており、今では鏡を見る時も以前のようにストレスを受ける感じはほとんどありません。 もちろん、まだ完成ではないようです。 密度はこれからもっと上がりそうで、真ん中の方はもう少し埋まる余地がありそうです。 院長が今がちょうど中間過程だとおっしゃいましたが、これから6ヶ月ほど経つとさらに太くなり密度も上がるというので期待しています。 これまでの経過は満足のいくものですし、これからどれだけ良くなるか待ってみようと思います。次の体験談の時は、もう少し豊かになった姿で 残してみま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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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션모발이식의원
    モーション醫院

    20代前半にM字薄毛の矯正と額の高さを下げるために植毛を決心し、初めて病院を訪れた時、医師と看護師の両方が信頼感を持って説明してくれて、すぐに手術を進めることになりました。 その後、2週目にかさぶたを除去し、他の病院とは違ってお酒とタバコを始めてもいいと案内され、1ヶ月目からは移植毛髪が抜け始め、現在はほとんど毛髪がない状態で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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