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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의 환호

  • 24년 전

  • 853
0
월드 시리즈가 열리고 있는데 도저히 수업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교실수업이라는 소리를 듣고 의아해 하는 아이들한테 텔레비젼을 켜 주니 이해를 하더군요.
혹시나 교장이나 교감샘이 지나가다 볼까봐 야구에 아무 관심도 없는 놈 하나를 망보게 하고 눈에 불을 켜고 중계를 봤습니다.
축구 한일전 할때 정도로 열심히 본 것 같습니다.
공 하나하나에 집중하면서..
어느샌가 김병현의 팬이 된 거죠.
점심시간이 되어선 다른 샘들과 숙직실에 내려가서 보는데 다들 열광이더군요.
마치 아리조나가 우리나라의 팀이나 되는 것처럼..
사람들은 박찬호나 박세리보다는 김병현이나 김미현한테 더 환호를 보낸답니다.
저도 박찬호를 좋아하지만 박찬호는 기분 안좋으면 인텨뷰도 안하고 연습중 자기 사진을 찍는 기자한테 화도 낸다는군요.
반면에 김병현은 그렇게 게임을 말아먹고도 기자가 묻는 말에 일일이 다 대답하고..
잘한다고 우쭐대는 선수보다 겸손할줄 아는 선수를 대중은 더 좋아한다는 얘기겠지요.
그래서 그런지 저도 제발 아리조나가 이기길 하고 엄청 바랬답니다.
극적으로 역전승을 하고 환호하는 아리조나의 선수들을 보니 저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지더군요.
예전 월드컵 예전때 도쿄에서 이민성이 역전골 넣을 때만큼 소릴 질렀나 봅니다.
밤에 MBC 스포츠 뉴스를 보았습니다.
게임이 끝나고 열열히 환호하는 팬들 사이로 한 팬이 들고있는 피켓이 보이더군요.
"This win is for KIM"
굳이 해석까지 할 필요는 없겠죠?
조금 후 다른 피켓도 보였습니다.
"We still love KIM"
비록 두 게임이나 날렸지만 그래도 마무리로서 김병현을 원한다는 아리조나의 팬들..
커트 실링, 랜디 존슨과 포옹하는 모습, 관중들한테 손을 흔드는 모습 등을 보며 저역시 가슴이 뭉클해짐을 느꼈습니다.
메이져리그 100년 역사가 말해주듯 미국 야구팬들의 선수사랑은 정말 대단한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같으면 어땠을까요?
물론 예전보다 관전태도가 많이 좋아졌지만 자기가 응원하는 팀의 마무리 투수가 나와서 두 게임이나 날렸다면 (그것도 한국 시리즈에서) 별의별 욕을 다 했을겁니다.
운동장으로 병을 안던지면 다행이겠지요.
반면에 그들은 22살의 어린선수의 좌절을 마음아파하며 용기를 북돋아준 겁니다.
프로 스포츠는 관중이 만들어 가는 것 같습니다.
훌륭한 경기는 훌륭한 관중이 만든다는 얘기지요.
체육을 전공한 사람으로서 그런 훌륭한 경기를 볼 수 있는 미국 사람들이 부러웠고, 또한 그런 관중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경기를 할 수 있는 선수들이 부러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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