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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자로 풀어본 가발 이야기
그동안 가발 쓰는 분들의 얘기와 제 경험을 토대로 잡설을 한번 적어봤습니다.
내용이 좀 기니까 한가하실 때 재미로 그냥 읽어 주세요.
생떽쥐베리가 쓴 동화 <어린왕자>에 보면 이런 말이 나오죠. "어른들은 숫자를 좋아한다."
확실히 하루종일 인터넷 뉴스에서 읽는 기사들과 사람들과 나누는 얘기를 다시 곰곰이 생각해 보면
주가,회계,집값,제품가격 같은 거의 수치화된 자료에 더 관심이 가고 그래야 이해가 잘 되는 것 같습니다.
진짜 머리처럼 자연스러운 가발과 티가 나는 가발을 숫자로 표현해 본다면??
정확한 수치 표현은 의미가 없죠. 어차피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기 때문에 대충 공감할 수 있는 선에서
숫자를 통해 감을 잡아보자는 거예요. 요즘 잘 나가는 유행어로, 가발을 써본 우리끼린 '느낌 아니까...'
제 생각에 진짜 머리를 1이라 한다면 커팅이 되지 않은 가발 자체는 0입니다.
심한 탈모로 고민 중인 A라는 사람이 고심에 고심을 거듭하다가 마침내 큰맘 먹고 용기를 내어
한 업체를 찾아가 가발을 맞췄습니다.
0의 상태의 가발을 가발업체에서 경력 있고 실력을 갖춘 디자이너님이 고객의 두상과 취향에 맞게
능숙한 솜씨로 커트해 주셨습니다. 스타일링 전 단계까지의 상태는 0.5 정도 된다고 합시다. 마치 탈모가
없는 일반인들이 아침에 잠자리에서 일어나 부스스한 머리로 머리 감기 직전과 비슷한 상황이랄까요.
머리꼴은 갖췄는데 0.5의 상태 그대로는 당장 밖으로 나가기 어렵습니다.
디자이너님이 커트 후 머리털을 털어내고 드라이어로 말린 후 스타일링 제품으로 손질을 해 주고나니
제법 그럴듯한 모습의 또다른 내 모습이 거울에 비칩니다. 좋거나 나쁘다는 생각보다는 낯설고 묘한
기분이 앞섭니다. 이 단계가 숫자로 치면 0.8 정도, 백분율로 따진 만족도는 80% 정도라 할 수 있겠죠.
커트 상태와 스타일이 마음에 안 들어 불만이 가득한 사람은 오히려 0.5 밑으로 떨어질 수도 있습니다.
집에 가서 봤더니 도저히 못 쓰고 다니겠다 내팽개치고 장롱 속에 처박아두는 유형은 0.2나 0.3이겠죠.
0.6 이상은 돼야 쓰고 다닐 용기가 생깁니다. 어쨌든 A는 가발이 생각보다 잘 나와서 0.8에 만족하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가발을 한 당일은 그럭저럭 기분이 좋았는데 며칠 써 보고 혼자서 손질해 보니까
생각만큼 손질이 안 되고 스타일도 안 나오는 겁니다. 만족도가 오히려 0.7로 떨어졌습니다.
주변에 가발 쓰는 사람도 없고 물어볼 곳은 인터넷뿐이라 대다모에 접속합니다. 열심히 다른 가발러들이
올린 글과 사진을 보면서 이것저것 정보를 알아보고 필요한 도구와 제품을 구해서 알려준대로 열심히
연습을 했습니다. 몇 주 동안 시행착오를 반복하고 반복한 끝에 마침내 자기만의 스타일이 완성됩니다.
0.9까지 끌어올린 사람들이 가발로 멋을 내고 자신 있게 사회 생활을 해 나가고 있는 사람들이라 봅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문제... 과연 진짜 머리처럼 자연스러운 가발과 누가 봐도 티 나는 가발은 어느 정도일까?
그동안 가발 게시판에서 가발 티와 관련해서 많은 논란이 있었습니다. 5년여 동안 가발을 착용해 본 제가 지금
이 시점에서 생각한 가발 티에 대한 지론은 이렇습니다. 우선 일반인들의 가발 인지와 가발러들의 가발 인지를
나눠서 살펴봐야 합니다. 다시 숫자로 풀어 보겠습니다.
눈썰미 좋고 예리한 사람들은 논외로 치고, 가발을 접해 본 적 없고 무관심한 일반인들에게 가발러가 노출될
때 못 알아볼 정도의 수치는 0.7 ~0.8 정도면 무난합니다. 이 구간에 해당하는 가발러들은 같은 가발러들에겐
3초면 금방 알아차릴 수 있을 정도지만 일반인들은 끝내 모르거나 그냥 멍하니 쳐다보다가 알아보게 되죠.
보통 빨리 눈치 챈다고 해도 1분 정도 걸립니다. 0.6은 지하철이나 거리에서 흔히 보는 50~60대의 장년, 노년
가발러들로 나이에 비해 빽빽한 머리숱과 어색한 앞머리, 각 잡힌 가르마 선, 단정하게 빗어내린 뒷머리...
그냥 봐도 한눈에 가발임을 알아볼 수 있죠. 알아보는데 걸리는 시간은 척 보면 딱, 0.5초면 충분합니다.
그러면 앞서 말했던 0.9에 해당하는 가발러들은 어느 수준일까? 일반인들은 거의 못 알아보고 눈치 챈다고 해도
같이 지내는 경우에는 며칠 내지 몇 주 정도 걸립니다. 같은 가발러끼리는 10초 정도면 가발 특유의 느낌을
알아챌 수 있습니다. 손질된 머릿결, 가모와 본모의 질감 및 모색 차이, 머리 전체 윤곽 등을 통해서 직감으로
눈치 채게 되죠. 완벽하다고 하기에는 아직 스타일링 실력이 모자란 감이 없지 않다는 거죠. 제품 자체의 한계
때문이기도 하구요.
그럼 정말 티 안 나고 자연스러운 가발 고수는 어느 정도일까요? 제 생각에는 0.95 이상은 돼야 한다고 봅니다.
일반인은 가발이라는 걸 전혀 상상도 못하는 수준이고, 서로 전혀 모르는 2명의 가발러가 버스나 지하철에서
같은 시간과 같은 공간에 있게 됐을 때 얘깁니다. 처음에는 가발 고수의 머리를 보고 전혀 아무 생각이 없다가
역시 직감으로 가발 고수를 응시하게 되는데 진짜 머리 같기도 하고 가발 같기도 하고 의심스럽다는 생각이
드는 정도의 수준이 바로 0.95라는 것이죠. 그냥 거리나 복도에서 잠깐 사이에 스치고 지나간다면 예리한 눈매를
가진 가발러라 할지라도 전혀 알아보지 못하고 지나치게 될 겁니다.
가발 게시판을 방문하는 우리가 지향해야 할 목표는 바로 이 0.95 이상에 도전하는 것이죠. 가발러도 못 알아보는
가발 쓰기의 달인이 0.95 이상의 가발러입니다. 우리가 매일 보던 그 사람이 사실은 가발러일지도 모른다는 거죠.
끝으로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이것입니다.
가발에 너무 큰 기대를 할 필요는 없지만 정말 좋은 업체, 좋은 디자이너를 만나고 노하우를 터득한다면
분명히 진짜 머리와 착각할 정도로 0.95 이상의 가발 고수가 될 수 있다는 겁니다.
하지만 가발은 아무리 감쪽 같아도 진짜 머리가 될 수 없습니다. 0.999는 1이 아닌 것과 마찬가지죠.
지루하게 긴 글 읽느라 수고하셨습니다.
실없는 글이라 비웃으셔도 좋으니까 다양한 의견 남겨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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