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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째 가발쓰고 사는 24살입니다.
저는 친할머니를 닮아 심한 곱슬머리예요.
태어났을 때부터 너무 머리숫이 많아서 몇번이고 이발소에 데려가
밀어주었다고하네요. 그런데 몇차레 반복하다 어느 순간 머리가 안나더래요.
저는 머리카락이 빠지는 탈모도 아니고 머리카락이 없는 대머리도 아니예요.
곱슬곱슬 아주 가늘게 아기머리처럼 나있는 상태예요. 근데 너무 약해서
힘없이 빠지게 되는거죠. 자라기는 다시 자랍니다. 그래봤자 너무 가늘어서
전체두피가 훤희 보이구요 어쩌면 아예 없는 사람보다 더 지저분해보이고
징그러워 보일 수도 있겠네요. 저희 집도 저때문에 병원에 무지무지 돈 많이 들었어요. 서울에 큰병원이라는 곳은 다 다녀봤구요. 유명한 원장님 찾아서 주말마다 엄마 아빠가 고생이셨죠. 병명도 원인도 없었어요.
심한 지성피부에 아빠 닮아 여드름도 나고 두피는 피지로 가득-
그렇게 간단한 피부과 치료밖에 받을 수가 없었어요. 좋아지는 것도 모르는데 약먹고 약바르고 그것만 몇년 ... 차라리 원인이라도 알았다면 희망을 갖고 열심히 치료했을텐데 저같은 케이스는 몇명 있지만 원인불명이라네요.
초등학교 때까지는 모자를 쓰고 등교했어요.
물론 어렸을 때는 모자를 벗겨가며 놀리는 친구들이 많았지만 지지않았어요.
울기도 많이 울었지만 성격자체가 워낙 쎄서 더 당당하게 다녔어요.
초등학교 졸업을 앞두고 중학교에 가려는데 너무 고민이 되더라구요.
교복을 입어야하는데 모자를 쓰고 치마를 입을 수도 없고 벗은채로
다닐 수도 없고... 어쩔 수없이 그 때 처음으로 가발을 쓰기 시작했어요.
처음 써봤을 때는 너무너무 신기하고 좋았요. 어린마음에.
근데 가발을 쓰고 첫 등교한 날은 정말 아직도 잊을 수가 없네요.
그 날은 정면을 보고 걷지 못했다고해야하나 ... 양쪽에 친구들 팔짱을 끼고
땅바닥만 쳐다보며 몇일을 학교들 다녔어요. 그렇게 당당하고 강한 제가
한없이 작아지더군요. 가발하나로 무너져버렸어요. 하지만, 제 곁에는 저를 지켜주는 좋은 친구들이 있었기에 조금씩 조금씩 적응해 나갈 수가 있었어요. 항상 모자쓰던 저였으니 제가 당연히 가발을 쓴다는건 누가봐도 다 아는 사실이었거든요. 놀리는 애들, 뒤에서 수근대는 애들 무지무지 많았어요.
그럴때마다 저는 울고 친구들은 몰래가서 때려주었어요. 그 덕분에 제 기도
많이 살았는지도 몰라요. 친구들 덕분에 다시 밝고 당당한 제가 되었다고해도 과언이 아니예요. 은근히 남자친구들이 이해를 많이 해주었답니다. 친구니깐요 ^^ 조금씩 가발에 익숙해지고 고등학교에 가고 제가 하고싶은 것도 혼자 찾아서 할 수 있는 힘이 생겼어요.
고정도 안되는 전체가발을 쓰고 무용한다고 몇년을 억지부리다가 힘겹게 무용과에도 진학했지만 역시나 한계는 있었습니다. 앞머리가 있으면 안된다고해서 면헤어밴드에 앞머리를 애써 구겨넣고 무용하는 애처럼 하고다닌다고 등교하는 제모습이 그렇게 쪽팔릴수가 없더라구요. 헤어밴드 착용도 한계가 있었고, 온갖 신경이 머리에 쏠려있는 상태로는 자연스러운 동작은 나올 수가 없었습니다. 예쁜 무용복도 한복도 헤어밴드와 부자연스러운 가발을 쓰고 있던 저에게는 정말 어울리지 않았어요.
결국 자퇴를 했고, 되도록이면 연관되지 않는 방면으로 미래를 설계해보려고했습니다. 워낙 예체능 쪽을 좋아해서 그 어느것도 머리를 피해 갈 수 는 없었어요. 그래서 선택한 것이 유학이었습니다. 그냥 공부해서 대학가려구요.
21살에 혼자 가발을 몇개 짊어지고 일본으로 왔습니다. 방학 때마다 새로운 가발을 한국에서 사들고왔구요. 이젠 일본생활도 어느덫 3년이 되어가네요.
결국 그래서 공부 열심히 하고있냐구요? 아니요 ...
역시 가발쓴다고해서 책상에 앉아 공부만하고있는건 제 스타일이 아니더라구요. 제 자신을 먼저 꾸미고 발전시키기 위해 지금은 메이크업을 배우고있어요. 물론, 제 머리와는 부딪칠 일이 없다고 생각했어요. 아 근데 이것도 안부딪칠 수가 없더라구요. 이젠 일본애들이 물어봐도 누가 물어봐도 당당히 먼저 가발이라고 얘기합니다. 그냥 머리가 짧아서 가발쓴다고. 이젠 애들 눈치보고 한가발만 쓰고다니지않아요. 가짜티 나는 패션가발도 많이 쓰구다니구요. 일본이라 그런지 설마 머리가 하나도 없어서 쓸거라고 생각은 안하더라구요. 전 사람들과 친해지기 위해서 제 솔직한 모습을 되도록이면 다 들어내려구해요. 친한친구들은 가발벗은 제 모습에도 익숙하구요. 아 근데 남자친구들한테는 보여준적이 없네요 ^^;
자신이 마음만 연다면 이해해주는 사람들은 얼마든지 생겨요. 제가 나중에 제 머리 얘기를 하면 새롭게 알게된 사람들은 무척 놀라해요. 전혀 몰랐다고. 원래 그런 사정으로 가발을 쓰는 사람들보면 대부분 기가 죽어있고, 어두운 성격일거라고 생각을 하더라구요. 여러분들도 그냥 당당하게 다가가세요. 어느 나라든 이해해주는 친구들은 얼마든지 많거든요.
이렇게 잘 지내고 있다가도 몇번씩 찾아오는 고비에 저도 힘이들긴 하네요.
친구들 사귀듯이 날 다보여주고 다 얘기하는걸로는 절대 남자는 만날 수 없다는 것.
진짜 사랑을 할 수 없다는게 무척 마음이 아픕니다. 이건 또 예외더라구요. 오늘 가입하고 여러가지 글을 읽어봤어요. 제가 아직 어리다고 하시겠지만.
정말 같은 마음, 같은 생각이시더군요. 남자를 생각하는 맘. 결혼, 아이까지.
너무 신기해서 저도 조금이나마 힘을 얻을 수 있을까해서 이렇게 제 얘기를
길게 주절주절 늘어뜨려봤어요. 지금 몇년에 한번씩 찾아오는 슬럼프가 왔거든요. 거울의 제 모습만 봐도 눈물이나고 답답하고 가발은 오늘따라 티가 많이 나는것같고 이상해보이는지 ... 이럴 때 마다 당장 병원 찾아가고 싶네요.
제가 병원을 안가게 된 건 고등학교 때 이렇게 혼자 느껴서 병원을 몇년만에 가본적이있는데 저희 엄마 머리를 보시구선 의사선생님께서 " 설마 머리가 길게 자란다고해도 어머님처럼, 보통 여자분들처럼은 되기 힘드실꺼예요" 라고 지나가는 말씀으로 하시더라구요.
그 한마디에 병원은 포기했습니다. 그냥 가발쓰고 평생 이대로 혼자 살거라는 마음먹고 뛰쳐나왔어요.
짝사랑 할 때마다 혼자 상처받고, 좋아하는 남자한테는 당당해 질 수 없는 마음에 여태 제대로 된 연애한번 못해보고, 시작하기도전에 끝나버리곤했죠. 그냥 친구들은 이왕 경험쌓는다고 생각하고 숨기고 당당히 만나면서 즐기라고하네요. 근데 그것도 한계가 있잖아요. 이렇게 훌쩍 10년이 지났는데 서른이 다가오고 친구들 다 시집장가 가버리면 ...
진짜 제 모습을 보고 사랑해주고 평생 책임져줄 남자는 이세상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처음은 다 이해해주는 척하지만 은글슬쩍 피해버리는게 제가 겪어봤던 남자예요.
근데 이번에 정말 다 필요없다는 마음으로 처음부터 죄책감같은거 안느끼고 당당하게 만나온 남자가 있는데 24년만에 저한테 제대로 된 연애감정을 느끼게 해주네요.
이런식으로 깊어질거라 생각못했는데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죄책감만 밀려와요 ㅜㅜ 그 남자 제가 가발이라는거 알면서도 모른척을 하는건지는 모르겠지만 머리가 없어서 쓰고있다고는 전혀 생각하고 있지 않을꺼예요. 알면 바로 떠나겠죠.
요즘 젊은 남자들 가뜩이나 여자능력 본다는데 여자의 생명인 머리가 없다는건 말이 안되는거겠죠. 아 여태까지는 스트레스 안받고 잘 지내왔는데, 사랑이란 벽에 부딪치면 여자분들은 남자분들보다 더 힘들어지는 것 같아요.
그냥 마음편해지려면 깊어지기 전에 벽을 치고있는게 좋은걸까요.
남자는 뒤늦게 이 사실을 알게되면 엄청 배신감을 느끼겠죠? 휴 ...
숨기는 입장으로써 결혼은 아무래도 무리겠죠 ... 짧게 삭발한 사람처럼만 보여도 벗어버리겠어요 ㅡㅡ 이렇게도 저렇게도 전체가발이 아니면 밖에 나갈 수가 없는 ... 아 부모님 생각해서 머리때문에 스트레스 안받으려구했는데
오늘은 정말 억울하고 슬프네요.
저는 나아질 방법을 찾지 않고, 지금 이대로 어떻게 더 잘살아살 수 있을까를 고민하려구요. 가발쓰면서도 충분히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
저 오늘 처음 가입에서 글 남긴건데 여러가지 조언들 좀 해주세요.
여러분들도 힘내시구요. 가발을 쓴다는건 부끄러운일이 아니예요.
자신을 꾸미는 한가지라고 생각해주세요. 예쁘게 화장하고 나가듯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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