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다모

모발이식은 최종 결과가 1년 후에나 최종 확인이 되기때문에 심고나서 관리가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수술 후 자신의 상태를 회원들에게 진단받고 수술 후 관리나 사례별 생착, 추가 보완 방법을 카운셀링 받는 공간입니다.


모발이식 관련 의사들도 케이스를 공부하기 위해 방문 하는 이곳, 전세계에서 가장많은 임상자료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수술을 준비중인 누군가에겐 가치를 표현할 수 없는 의미있는 기록을 남겨주신 모든 선배님들께 감사드립니다.


수술 후 포토자료를 남기는것은 '환자 힘'이기도하며 향후 예상할 수 없는 수술결과에 대한 강력한 보험입니다.

[re] 좋은글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냉무)

  • 2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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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술방식 -
  • 이식량 -모
  • 수술경과 -
  • 연령대 비공개

>대다모에서 동병상련의 고통을 느끼며 동지들 에게 나의 탈모에서 이식수술에 이르러 지금에까지
>함께 고민하는 동지들에게 조금이나마 보답이 되고자  솔직하게  나의생각을 몇자 적어본다.
>
>처음 머리숱이 없다는 것은 고등학교 다닐때 였던것 같다 지금으로10 몇년전 자존심 강하고,누구한테
>지기싫어하는 나에게  친구녀석이 "너 나중에 대머리 되겠다'라는 말을 처음 들었던것 같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대학에 들어가면서 부터 머리숱은 급속도로 줄어들었고,아버님의 머리모습을 보고 시원한 머리스타일 을 운명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 되어버렸다
>대학을 다니다 중간에사병으로 군대입대하게 되었는데  군대에선 나의 별명 "이마반'이라며 놀리던 고참 들의 놀림에  정말힘들었었다. 그때 휴가나갔다 부대 근처 약국에서"머리나는약 주세요'라고 하니 약을 한통 알약을 줬는데 '그때까지만 해도 머리나는 약이 있는줄 알았던 난 지금생각하면,참 순진했었다.그때 사가지고 들어와몰래몰래 먹었던 약 흰알약이 무슨약이었는지 지금도 궁금하다
>전역을 얼마 앞두고 대머리 약은 없다는 것을 알았고, 그때,신문반면에  심는가발이라고,나오는가발을  심각하게 생각해본적도 있었다.
>그렇게 난 전역을 한후 학교에 다시 복학을 하게 되었는데 원래 여자애들이 많은 과 였기때문에  걱정을 많이 했었다  원래 성격이 밝고 리더하기 좋아하는 성격상 난 과 총무로서 활발하게 대인 관계를 했었다. 세 네살 적은 여자애들은 날 대머리 아저씨라고 놀리는 애들을 보고난 쓴웃음으로 넘겼던것 같다 그렇게 나의 머리상태는 점점더 악화되었고, 빠져나가는 머리칼만큼이나 나의 자신감도
>빠져나갔고 더더욱 소심해 지면서 혈기넘치는 20대중반 나에게서 이성도,자신감도,웃음도,기회도,모든것들을 탈모와 함께 조금씩 빼앗아갔다.
>그러던중 난 메스컴에서 "김정철'교수님을 알게 되었고,모발이식도 알게되었다.99년초에대다모에서 여러정보를 얻으면서,병원,프카.등등 많은것을 알게되었다-동병상련의 고통을 나눌수있었고, 참으로 감사하게 생각한다. 그때 난 처음으로 모발수술을 받아야 되겠다고 생각했다 1년 정도프카를 쪼개 먹으면서, 나의 머리상태는 몰라보게 호전되었다.근데 앞머리쪽으론 여전히 효과가 떨어졌고,
>정수리 부분쪽엔 효과를 많이 보았다  그렇게 난 2000년 초 경북대병원를 찾아갔고,거기에서  얼굴이 까만김정철교수님도, 그때  둥근얼글에 안경낀 황성주 선생님도,함께 있었던것으로 기억한다,
>이식수술중에 잠시나오셔서, 내 머리상태를 보시고 조금더 지나고 보자고,하셨고, 프카의 효능을 알수있었다.당시  병원을 나오면선 기분이 참좋았다. 사망선고에서 해방된 느낌.....?
> 직접수술을 받으려면,2년을 기다려야하고,제자분께 받으면1달정도 기다려야한다말과 함께 난 병원문을 나섰다
>병원문을 나오면서, 내 또래와 비슷한 연배의 한분이 다가왔다. 머리때문에 병원을 찾아왔냐고물었다. 그렇다고, 자기도 머리때문에 김 교수님을 뵈로가는 중이라고,하면서 우린 몇분간 얘기를 나눴다.
>그분은 머리가 보기에 멀쩡했다. 자기는 인공모를 심었다고, 부작용이 엄청심하다고,절때 하지마라고, 자기도 재수술해야한다면서, 인공모의 부작용을 내게 말해주었다. 그분도 대다모에 들어오시나? 궁금하다.
>난 프카 그리고 검증되지않은 많은 약들과 대다모에서 얻은 정보와 함께 치료를 하면서 유전적으로
>계속 진행되는 대머리는 결국 이식수술 밖에 대안이 없다는 것으로 판단하고, 내생에 큰 결정 이식수술을 받아야겠다고, 마음먹고, 여러 병원의 정보를 수집하고, 집이 경북이라, 경북대병원에서 하면,가장 좋은것이었고, 또 믿음이 가장컸다.그런데 너무기다려야 했다.그래서 난 다시 울산 황정욱 선생님과 도 상담을 했었다.  수술날짜는 잡지 않았고,망설였다.참친절하게 대해주셨고, 김박사님의'모발이식 이야기"책도,주셔서 한번 읽어보았다.그러던중 경북대병원에서 수술날짜가 잡혔단 연락이 왔다.
>
>
>
>*수술이야기
>
>수술이라곤 고1때 포경수술이후 이식수술를 받게 된다면 두번째다.
>머리를 칼로 반쯤자르고, 또살들을 떼내서 나누고,또 바늘에 곶아서 수백수천방을 찔러 심는수술
>망설여졌다.또한 비용또한 부담이 큰수술 또 시술에대한 불안감.한사람만이 잘해서도 되지않는 수술
>모든것들은 다시찾을 내 인생을 꿈꾸며, 중요한 선택을 했다. 더이상 누구도 내머리를 돌려주지 않기때문......
> 수술대에 누웠다.아침10시쯤 도착해 , 병원1층 에서 수술비 560만원을결제하고,건물 오르내리면서 혈액검사.등등 받고,검사결과서 를  이식팀 간호사가 가져오라해서 점심을 병원 주변 식당에서 간단히 해결하고, 오후1시쯤 들어갔다
>정확히 오후 1시30분쯤 시작해서 5시에 수술은 끝이 났다.
>뒷머리를 마취하고,마취할때 두피로 마취액이 들어오는 느낌 많이아팠다. 중간중간 날 안정시키기 위해서 김정철 교수님은  말을 계속하시면서,  고향이 어디냐 ?뭐하느냐 ? 등등 얘기중 김정철 교수님 과 고향이 같다는 것을 알았고, 마음도 따라서 조금은 안정이 된 느낌이었다.
>그러면서 뭔가 떨어져 나간다는 느낌과 함께 뒷머리를 떼어가지고 가셨다. 동시에 다른 선생님 한분 어떤분인진 모르겠다.뒷머리 봉합수술을  보조 간호사 와  여유롭게 봉합 했다.
>뒷머리 꿰메고, 붕대 붙이고, 누워있는데  내 엄지손에 붙은 심장뛰는 소리와 함께 누워있는기분. 내자신이 ..뭐라고할까...수술하신분은 아실것이다.
>또다시 이식할부위에 마취가 시작되고, 이식수술을 시작했다. 의대학생들 2명이 줄곧 수술장면을 지켜보았고, 교수님과의 실습수업도 평행된듯했다.교보재가 된듯한 느낌을 받았지만.옆에는간호사한명이 이식기에머리칼를 끼워넣는모양이었다. 딸깍딸깍 소리가 나는것이 카운트 하는 소리였던것같다.그렇게 김교수님이 1시간 넘게 이식하며 고향얘기,내 학교전공얘기 등등 하면서,수술 을 해나갔다.그리고, 그리고 다른 선생이 이어 계속 수술을 해나가는데 속도가 조금 느리다는느낌을 받았고,나머지 마무리도 김정철 교수님이 해주셨다. 중간에 마취가 한번씩 풀렸었고 마취하면서 수술은 계속되었다.
>통증은 느낄수없었고, 바늘이 들어왔다 빠지는 정도,물론 마취풀린곳은 아팠지만,,
>그렇게 수술은 끝이나고,이식모의 갯수는 2300개 많이 심켜졌다. 교수님도 친절히 해주셔고,
>간호사들도 성심것 해줬던것같다. 다시한번 감사드린다.머릿쪽으로 몇시간동안피가머리로몰려 잠시 정신이 어지러웠다.
>그리고 거울을 보았다. 피로 얼룩진  머리사이 심켜진 짧은 머리들이 보였다.  웃으야 할찌 울어야할찌 당시엔수년간 가슴에 맺혀있던것이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나오며 인사를 하고, 약은 점심때 처방 받아놓았었고, 간호사가 준 주의사항 쪽지를 들고, 모자를 쓰고, 차를 몰아 집으로 왔다.
>
>*수술후 관리
>
>집에 돌아와 거울을 보니  시원 섭섭한 그기분. ................
>머리는 손바닥 보다 넓은 면적을 2300이란 갯수로 가리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3월 말수술했어니까 4개월 이 조금 넘었다.
>지금 뭐라 말하는것은 이르지만, 대체로 만족하는 편이다.
>앞머리 라인이 살아나고, 앞머리도 힘이 있어 머리스타일이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느낌이다.
>머리가 많이 났다. 이렇다 저렇다 하지 않겠다. 조만간 이식전후 사진을 올리도록하겠다.
>수술을 하고, 난 집에서 푹쉬었다. 난 대학원생으로 시간을 내가 조정할수있었다.
>술은 잘하지않고, 담배를 좀 많이 피는데 하루1갑 2일정도 피지않고, 3일째부턴 그냥피웠다.
>술은 3주째 처음 먹었던것 같다.
>1달쯤지나니 이식모가 많이 빠졌다. 나의 경우 빠지지않고 상당수가 그냥 살아붙은것같다.
>2-3달쯤 조금은 무신경하게 지내다 보면, 이식모가 다시 자라기 시작한다는 걸 느낄수있었다.
>중간 중간 모낭염같은 것이 드문드문 났고, 손으로 짜면, 피고름과 함께 이식모도 빠졌다.
>걱정이 많이 되었지만 대부분 다시나는것 같았다.
>그리고,난 가르마를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타는데 지금은 가르마를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머리를 넘긴다. 후에 이식수술받으시는 분은 이런부분도 꼭꼭 얘기하기를 바란다. 사진을 보니 김교수님도 왼쪽에서 오른쪽 가르마로 머리를 넘기시는것같다.
>뒷머리 실밥은 일주일만에 풀었고, 소독을 하루에 2.3번씩했고,10일뒤 난 머리를 이발소에서 스포츠로 짧게 잘랐다. 흉터는 대각선으로 선명하게 10cm넘게 보이지만 지금은 머리를 들추어 자세히 보면,보이고, 삭발을 하면보일것같지만, 큰문제는 되지않는다.
>
>* 나의 생각
>외모의 80%를 차지하는 헤어스타일 머리털이 없다는 것은 정말 불행한 일이다.
>자신감상실과,대인기피증,무기력한삶,때문에 자신도 모르게 찾아온
>인생의 기회를 놓치고있지는 않는가?
>인생의 황금기인 20대 탈모란 것은 사형선고를 받은거나 다름이 없다고생각한다.
>뚜렷한 치료법이 있는것도 아니고 몇몇약들은 예방차원일뿐,가장근본적인 대안이 수술인데 또한 20대 의 경제력으론 큰무리가 따른다. 어떻게 해야하나?공감하신분들도 많으리라 생각한다.  조금씩
> 마음이 병들어가 세상과 격리되어 살아간다는건 너무 가혹하다고 생각한다.
>근본적으로 치료될수있는 이식수술의 폭을 넓히는것이 가장바람직하다고,생각한다.형평성에 어긋나겠지만,20대의 더이상진행되지 않는 대머리환자 만이라도 수술받을수있게 폭이 넓혀지기를 바란다.
>인생의 황금기에 탈모란것은 일반사람이 생각하는 것보다 엄청나게 큰것이라는 강조하여
>밝히고싶다.
>30살에 이식수술을 받았지만 지난 10년간 힘든날들이었음을  말하고싶었다.
>두서없이 글이 길어진것같다,탈모인에게 조금의 도움이 되기바라고,탈모없는 좋은세상,누구나외모때문에 차별당하지않는 세상 빨리오기를 바라며...............
>
 
[이 게시물은 최고관리자님에 의해 2006-06-22 04:32:55 모발이식에서 복사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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